《아는동네 아는강남》 미리보기 #3

오늘날 바에 관한 네 가지 키워드

김준민|

영화 <007 시리즈>에 늘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명품으로 멋지게 차려입은 제임스 본드가 계단을 따라 내려간 뒤 바텐더에게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고 주문할 때, 그 순간 펼쳐지는 환상적인 바의 이미지는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하이엔드 바가 꾸준히 등장하는 요즘, 강남 바 문화의 흐름과 개성 넘치는 공간을 소개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주로 맛보다는 시각적 경험에 중점을 두었다. 물론 이전에도 호텔 등을 중심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바가 있었지만, 일반 이용객이 적어 널리 인식하지 못했다. 이후, 강남 압구정에 현란한 셰이킹과 화려한 불쇼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플레어 바’와 서부 영화 세트 같은 분위기의 ‘웨스턴 바’가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레퍼토리를 답습하며 신선함이 사라지자 이런 바들은 어느새 종적을 감췄고, 덩달아 압구정의 바 씬도 침체했다. 반전의 주역은 2010년대에 붐을 이룬 파인 다이닝의 확장과 소셜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에 발맞춰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싱글몰트 위스키의 인기가 올라갔고 쇼맨십과 역량을 갖춘 스타 바텐더도 등장하면서 압구정의 바들은 쇄신과 발전을 거듭했다.

2007년 청담동에 문을 연 커피바케이(Coffee Bar K)의 경우 100여 종이 넘는 엄청난 종류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구비하며 한국 바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20년 1월 기준, 전국 각지에 400여 개에 달하는 바 업장이 성업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클래식 바만 해도 서울에 300여 개나 된다. 그중 강남구에만 80개가 넘는 바가 있으며, 청담과 압구정 인근은 고급화 전략을 내세워 해외에서 유행한 스픽이지(speakeasy) 스타일과 일본의 긴자 스타일의 바가 많다.



ⓒ 앨리스 청담

style 1. Speakeasy Bar(스픽이지 바)
미국의 금주법 시기에 경찰의 단속을 피해 등장한 스픽이지 바는 2010년 초부터 다시금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조용히 말하라’는 스픽이지(Speak Easy)에서 알 수 있듯이 비밀스러운 입구를 찾아 들어서면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와 차분한 무드의 바를 경험할 수 있다. 청담의 대표적인 스픽이지 바라면 단연 앨리스 청담을 꼽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모티프.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내려간 다음 꽃집 뒷문으로 나가면, 마치 토끼굴로 떨어진 앨리스가 된 것처럼 새로운 세상이 기다린다. JW메리어트와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경력을 쌓은 김용주 바텐더가 2015년 오픈한 곳으로 국내 최고의 바를 선정할 때 늘 순위권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고의 바를 꼽는 ‘Asia’s 50 Best Bars(영국 기반의 비즈니스 매거진 및 디지털 미디어 기업인 William Reed Business Media가 해마다 선정하는 국제적인 행사)’에도 거의 해마다 이름을 올릴 만큼 유명하다.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 칵테일과 각종 시그니처 드링크를 즐길 수 있다.




style 2. Ginza Bar Influences(긴자 바 인플루언스)
한국 바 문화의 중심에 강남이 있다면 일본 바 문화의 중심에는 도쿄 긴자(銀座)가 있다. 일본 최초의 서양식 바인 루팡(Lupin)부터 한국에도 분점을 낸 텐더바(Tender Bar)까지, 200여 개가 넘는 바가 있다고 알려진 긴자에 형성된 일본의 바 문화는 특유의 장인 정신에 기반한 정확한 제조 실력과 정중한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곳 바 대부분은 공간이 협소한 탓에 10명 내외가 겨우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만 있는데, 이 점이 일종의 서비스 형태로 재해석되면서 전 세계의 바텐더에 의해 다채롭게 적용되고 있다. 긴자의 바 문화와 서비스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한국에는 의외로 많은 일본인 바텐더가 활동하고 있다. 2017년 청담동에 오픈한 폴스타에는 수상 경력이 화려한 일본인 헤드 바텐더가 칵테일 레시피와 메이킹에 영향을 끼쳤다. 청담의 또 다른 바인 더라이온스덴 청담은 일본 긴자에 있는 더라이온스덴의 분점으로, 서교점에 이어 두 번째로 오픈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깊이 있는 칵테일을 마실 수 있으며, 바텐더의 친절한 응대 덕분에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다.





style 3. Mixologist Bar(믹솔로지스트의 바)
2010년대 국내의 바 씬이 꿈틀거릴 무렵, 해외에서는 파인 다이닝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이 시도됐다. 분자 요리에 사용되는 기법을 활용해 독특한 식감이 특징인 분자 칵테일을 비롯해 고급 요리에 사용되는 식자재를 활용하는 칵테일까지, 믹솔로지스트(Mixologist)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소비자들에게 다가선 것. 이를 위해 바텐더는 새로운 맛을 탐구하며 인퓨징과 발효, 증류까지 직접 시도한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있는 파인앤코는 르챔버(Le Chamber) 출신이자 월드클래스를 자랑하는 홍두의와 박범석 바텐더가 2020년 초에 오픈한 바다. 1980년대 어느 서울 골목길을 연상시키는 입구가 인상적인 이곳에는 소나무 잎을 넣어 증류한 한국적 진부터 발우공양(鉢盂供養)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템플스테이’, 여러 종류의 누룩을 활용해 발효한 ‘누룩’과 동치미와 미나리를 활용한 ‘김치’까지, 한국적인 요소를 활용한 재미있는 시도들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 제이앤제이슨

style 4. Tap Cocktail Bar(탭 칵테일 바)
바텐더의 최고 과제는 일관된 맛이다. 재료를 정량으로 투입해도 흔들고 섞는 ‘셰이킹’과 ‘스터링’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이는 어쩔 수 없는 요소. 이를 특색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레시피대로 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바텐더들은 맥주 케그(Keg)에 미리 만든 칵테일을 넣어 생맥주처럼 간단하게 탭에서 뽑는 탭 칵테일을 개발했고 이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트렌드가 됐다. 최근 압구정 로데오에서 가장 핫한 스폿 제이앤제이슨은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로 변하는 공간으로 국내 최초로 탭 칵테일 시스템을 시도했다. 청담 르챔버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제조한 칵테일을 비어 탭처럼 통에 각각 저장해두고 주문 시 레버로 내려 제공한다. 덕분에 샘플링이 자유롭고, 가격대도 클래식 바와 비교해 저렴하다. 바에 앉아서 무엇을 마실지 모르겠을 때에는 무턱대고 바텐더에게 추천해 달라고 하기보다는 럼, 진, 보드카, 데킬라나 위스키와 같이 본인이 좋아하는 술의 종류와 함께 허브 향이나 시트러스 향, 상큼하고 가볍거나 묵직한 맛 등 좋아하는 취향을 이야기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강남》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김준민

정리정돈에 민감한 리뷰 수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