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먹고사는 젊은이들

치킨보이, 성내탭룸 그리고 섬

김준민|


강풀만화거리로 많은 이에게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성내동 골목길에 자리를 잡고 터를 닦은 젊은이들이 있다. 2년 전, 별 볼 일 없던 골목에 우두커니 문을 연 치킨집 치킨보이. 이곳에서 치킨보이 사장 천태우, 맥(麥보리 맥)가이버 황지윤, 동서울터미널 장율범은 의기투합하여 동네 펍 성내탭룸을 선보였다. 골목에서 먹고살길 꿈꾸는 청년 그룹, ‘섬’이다.


성내탭룸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대로164길 19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천태우(이하 천): 치킨보이 천태우이다. 2년 전에 이 골목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고 치킨보이와 성내탭룸을 운영한다.

장율범(이하 장): 동서울터미널이라는 이름으로 홍대에서 공연기획을 했다. 강동에서 오래 살아왔고 공연을 총괄하고 있다.

황지윤(이하 황): 맥주 만드는 황지윤이다. 대학교에서 식품공학과를 전공하며 맥주를 만들어왔는데, 졸업하고 브루어리에서 일하다가 성내탭룸 오픈을 함께하게 됐다.


어떻게 같이 일하게 됐나.

장: 2년 전에 처음 치킨보이 개업할 때부터 알았다. 히말라야를 다녀와서 치킨집을 하는 청년으로 소개를 받았다. 이야기하다 보니 태우 씨가 용산에서 전자살롱이라는 공연장에도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서인지 공연에 관해서 말이 잘 통하더라. 그래서 손님으로 처음 만났다가 성내탭룸을 개업하는 과정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황: 졸업하고 곧장 울산에 위치한 브루어리에서 일 년 정도 일하다가 이번에 성내탭룸 오픈을 준비하면서 스카우트 돼 합류했다. 재미있게도 우리 셋 다 강동구에서 오랜 기간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내동에 자리를 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천: 원래 홍대에서 치킨보이를 운영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청년 사업을 했고. 하지만  대형 상권이 들어서면서 자본에 의해 밀려나게 됐는데, 이때 대규모 자본에 의해 이용만 당하는 청년들을 목격했고, 그러한 모순에 질려서 해외로 나갔다. 9개월 동안 히말라야, 그리스, 불가리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가진 기술을 이용하여 다시 시작해보자고 생각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치킨 튀기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쌓아왔던 기술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리금이나 월세 문제와 같이 외부적인 것은 잊고, 내 기술만 믿어 보자고 생각했다. 무에서 유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애착이 있는 성내동 구석에 저렴한 권리금과 월세를 가진 공간이 있어 바로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벽화는 있었지만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아서 유명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1년 좀 넘게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마음이 맞으면서도 같은 목표를 지닌 사람들과 골목길에서 함께 먹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맥주를 좋아하기도 했고.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을 모아 제대로 된 맥주를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을 오픈했는데, 바로 성내탭룸이다.



성내탭룸에서 접할 수 있는 맥주 이름이 상당히 독특하다. 성내동 Hoppy Lager, 천호동 Imperial Stout 같이 동네 이름을 맥주에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황: 원래 일했던 브루어리에서 운영하는 시음장이 있었는데, 울산 언양읍이라고 좀 시골에 있어서 어르신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런데 아무래도 영어 이름에 익숙하지 않으셔서 그런지, 이름이 아닌 맥주에 붙어 있는 스티커 색으로 구분하더라. 성내탭룸은 동네 주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성내동 어르신들에게 더욱 쉽게 접근하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동네 이름을 붙이게 됐다.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하며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는 편하고 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강동구 동네들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각기 다른데, 그런 주관적인 느낌을 맥주에 대입해서 동네 주민들이 동네가 가진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한국 수제맥주만 판매한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황: 일단 한국에서 맥주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친숙하다. 또한, 동네 이름을 제외한 나머지 이름은 양조장에서 판매하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맥주를 소개하면서 양조장의 간단한 역사나 그 양조장에서 판매하는 다른 맥주들도 소개하고 있다. 당장 저희의 매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가게에서 처음으로 수제 맥주를 접하신 분들이 다른 매장에서도 편하게 수제 맥주를 찾아 드시게 된다면 결국은 맥주 시장 전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제 맥주 업계는 식품 제조업보다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수제 맥주가 지닌 맛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를 하기보다 이미지나 마케팅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수입 맥주보다 국산 맥주가 경쟁력이 부족해서 아쉽다. 성내탭룸의 맥주를 선보이는 과정이 곧 국내 수제 맥주를 소개하는 창구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 중이다.




공간 운영에 공연 콘텐츠를 접목하고 있다.

천: 처음 여기서 가게를 운영할 때는 문화적인 요소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치킨보이를 하면서 율범씨를 만나게 됐고, 같이 홍대 인디씬이나 라이브클럽에 관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그러다가 이 골목에서 치킨보이 1주년을 기념하며 처음으로 공연을 선보였다.

장: 각자 주력으로 삼는 영역에 대해서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이 공간을 같이 운영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맥주는 지윤 씨가, 인테리어나 전반적인 운영 방향은 태우 씨가, 저는 공연을 기획한다. 공연을 꾸준히 진행하려면 공연 내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나는 같이 일하면서 발생하는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에 공연을 운영해보겠다는 조건으로 합류했다.

예전에 홍대에서 공연기획을 하면서도 ‘꼭 홍대에서만 공연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홍대에서 공연한 후 막차 타고 다 같이 천호에서 내리는 경험을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반복다. 그래서 처음에는 천호동의 한 카페에서 반년 정도 공연을 했는데 생각보다 관객을 많이 모으지 못해서 그만두고 강동을 떠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치킨보이가 그런 공연을 공간에서 선보이고 싶다고 하더라. 그 전에 치킨보이 1주년 파티를 하며 굉장히 즐겁게 했던 기억이 있었다. 뜻이 잘 맞기 때문에 함께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뜻을 모았다.

이전에 천호동에서 반년 동안 공연을 하면서 아쉬운 점을 되짚어보면 아무래도 주민들이 부담스러워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며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하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펴보고, 좋아하는 장르나 형식을 포착하게 되면 그에 맞춰 공연을 만들며 강동에 맞는 공연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방문하는 관객들의 연령대는 보통 어떤가.

장: 대학교가 없는 동네라서 그런지 가족 단위로 많이 온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도 오고.

천: 강동에 살면서 통학하는 대학생들이나, 가족 단위로, 혹은 어르신들이 많이 온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라는 것이다.

장: 홍대는 나이에 따라서 주로 가는 곳이 나누어져 있다. 심지어 20대 사이에서도 나이에 따라서 가는 클럽이 나뉘는데 여기는 동네 주민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것이 참 재미있다.




" 동네 안에서 성장하는 길 "


‘섬’이라는 그룹이 가진 목표와 방향성이 궁금하다.

천: 일단 ‘골목길에서 먹고 살자’는 것인데 아직도 저희 셋이서 계속 합을 맞춰 가는 중이다. 골목을 상권화시키겠다는 생각은 아니고요, 정말 골목에서 오래, 기존에 터를 잡고 계셨던 입주자들과 공존하며 재밌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섬’이라는 단어는 ‘Stop’과 ‘Island’라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골목에서 20년, 30년 넘게 장사를 해오신 어르신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청년들끼리 잘 해보자’ 이런 생각은 지양하는 편이다. 일단 제가 자본에 의해서 밀려난 경험이 있어서, 제가 누군가를 또 밀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뭔가 다른 이유로 빈 가게가 나오면 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게 아닌 인위적인 행동에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함께 골목에서 오래 살기 위해서는 더욱이 동네 사람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며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홍보도 따로 안 했다. 요즘 SNS 홍보 많이 하지 않나. 그런 홍보는 일시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10년 넘게 치킨을 만들어왔고, 기술에 대한 자신감도 있기 때문에 골목에서 먹고살 자신이 있다. 다른 사업을 하는 청년들에게도 저희가 골목에서 먹고 사는 모습 자체가 자연스러운 일종의 메시지로 다가갈 수 있진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천: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5년 시한부 인생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건물주가 돼서 장사하고 싶은 청년들이 자유롭게, 공간과 자본의 제약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의 기술을 가지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가져가는 공간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 이 공간, 이 동네에 맞는 공연을 하고 싶다. 힙스터 문화와 같은 트렌디한 문화에 동네의 때가 묻었으면 좋겠다. 문화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강요하고 싶지는 않고, 단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주변 다른 분들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공연이 좀 더 현지화되었으면 좋겠다.

황: 이 동네에 맞는 맥주를 만들고 싶다. 수요만 충분하다면 저희가 직접 주문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고. 궁극적으로는 양조장을 차리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양조장을 차려서 맥주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며 지속 가능한 양조를 하고 싶다.

같은 공간에서, 각기 다른 콘텐츠로, 다른 꿈을 꾸는 세 사람. 그러나 이들의 동상이몽은 모두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오랜 기간 터전을 지켜온 동네와 함께 공존하고 싶다는 섬, 그들이 이끌어갈 동네 문화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김준민

정리정돈에 민감한 리뷰 수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