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콘서트 여름 시즌

2. 실험적인(人)

양혜은|

실험한다면 이들처럼, 실험적인(人)


무더운 여름날, 실험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있는 우사단 작업실로 향했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핫플레이스 이태원. 하지만 이태원 소방서 뒤편 가파른 언덕길에는 마치 80년대로 타임슬립 한 것 같은 오래된 동네 우사단길이 숨어있다. 재개발 예정지인 우사단길 일대에는 아직 떠나지 못한 원주민들과 외국인 이주민들, 그리고 잠시 둥지를 튼 청년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우사단작업실’은 이들의 사랑방이자 공유 사무공간이다.



사회자 고소미 님의 인사로 인문 360도의 두 번째 골목콘서트, 실험적인(人)이 시작을 알렸다. 관객들이 조그마한 공간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앉으니, 첫번째 실험자가 앞으로 나왔다. 연애 스토리텔러 염유진 씨였다.


“나는 당신의 과거입니다.”




그녀의 나긋한 목소리를 따라서 관객들은 연애 실험의 가설을 세우고 답변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했다. 그녀는 자꾸 물음을 던졌다.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뚜렷한 기준점이 있는지, 그 기준을 충족시키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우린 정말 행복할지.’ 그녀의 말처럼 연애는 계속 실패하는 실험이다. 다시 가설을 세우고 꼼꼼히 실험 계획을 따르더라도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계속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자아를 탐구하며,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 모든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보다 먼저, 유기체처럼 다변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을 맺었다. 그 말에 관객들은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변하는 존재이기에 연애든 사랑이든 무언가를 계속할 수 있다.



뒤이어 공간을 실험하는 실험적인(人) 정이삭 건축가가 시간을 채웠다. 그는 건축을 하는 사람이자 무엇보다 모든 사건과 사람의 근원, 속 이야기를 좇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그에게 있어 건축은 외면의 집짓기 이전에 내면의 집짓기부터 일궈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작품보다는 작업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그가 진행했던 프로젝트 대부분은 많은 사람과 협업을 바탕으로 하여 이뤄졌다. <연평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수차례 워크샵을 개최해 군인들이 원하는 공간이 무엇인지 목소리를 듣고 도서관을 만들었다. 군대라는 수직적인 조직의 특성을 중화할 수 있도록 군인들의 문화 공간이자, 쉼터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또한, <노란 평상>은 슈퍼마켓 앞에 자리한 평상을 개조하는 프로젝트로, 오직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네 어르신들만을 위해서 진행되었다. 그의 관심은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 이웃 주민을 향해 있었는데, 프로젝트마다 주변인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정이삭 건축가는 건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설계 디자인을 넘어서 사용자와 소통하면서 얻어낸 철학의 단단함이 곧 단단한 건축물을 만든다고 말이다. 그의 작업물 안에 얼마나 많은 이의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잠시 생각해본다. 선한 의도가 만들어낸 작고 위대한 실험이 이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마지막 실험은 사비나앤드론즈의 공연이었다. ‘오늘의 실험은 여러분들의 눈물빼기입니다.’ 라는 말이 실현되어, 우리는 그들의 노래에 울고 웃는 실험대상이 되었다.


“혼자인 걸 두려워하지 말아요. 언젠가 우리가 혼자가 되었을 때, 더 잘하게 될 기회가 오거든요. 지금은 눈물 흘리지만 다음엔 더 단단해지길.”


말해줘요. 그 모든 이유를 향기로운 꽃이

그토록 외로이 피어야 할

또 말해줘요.

많은 사람 속에 혼자인 것 같은 이유를

노래 <Where Are You> 중



관객석 여기저기서 조용히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 또한 노래 가사와 연주에 왠지 모를 외로움과 쓸쓸함이 밀려와 눈물이 났다. 노랫말과 연주로 사람을 울릴 수 있는 건 스스로 울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아마 음악을 하기 위해 걸었던 그녀의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리라.



결국, 실험자로 무대에 선 이들의 시선 끝에 자리하고 있는 건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스토리로, 누군가는 건축물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각자 모양과 방식이 달랐을 뿐, 사람을 향한 애정을 기반으로 시작된 이들의 연구에 위로가 뒤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좁은 골목 속, 작은 공간에서 함께했던 모든 사람이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웃고 웃으며 위안을 받았다. 공간 밖으로 숨이 막힐 듯 내리쬐는 햇빛과는 다른 따뜻함이었다.

앞으로 우사단 작업실에서 이뤄질, 또 무대에 선 실험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룰 실험들을 응원한다.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내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계속될 그들의 작업을 통해 누군가가 삶의 용기를 얻기를, 또 일상이 조금이나마 아름다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이곳, 이 자리에 있었던 바로 우리들처럼 말이다.







'골목콘서트 여름 시즌' 연재글 리스트

1. 그림책 속으로 탱고가 흐른다.
2. 실험적인(人) (현재글)
3. 둥이네 베란다
4. 지금의 살롱

에디터

* 편집자: 박혜주

양혜은

heyang@urbanpl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