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콘서트 여름 시즌

1. 그림책 속으로 탱고가 흐른다

박혜주|

우리의 만남은 우연일지라도, 그림책 속으로 탱고가 흐른다


옆 사람의 부채질로 만들어진 바람이 나에게까지 솔솔 불어온다. 친구와 속닥거리며 나누는 수다, 타닥타닥 핸드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까지 가깝게 느껴진다. 자그마한 책방은 옆 사람과의 공간을 내어줄 여유가 없었다. 바투 붙어 있는 사람 사이에 자리 잡고 앉아 ‘사람이 많이 왔네’, 등의 단순한 감상을 몇 번이나 했을까, 진행자가 이야기를 꺼내며 시작을 알렸다.

‘저는 ‘조우하다’라는 말을 좋아해요. 우연히 만나다. 저도 여러분들도 오늘 이곳에서 서로 우연히 만났어요.’




대전 유일 반도네오니스트와 미래를 고민하는 사진작가, 그리고 그림책을 공부하는 연구원. 전혀 인연이 닿을 일이 없을 것만 같은,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던 사람들이 만났다. 우연이란 말 외에는 그들의 만남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의 인연을 우연에서 끝마치지 않았다. 인연의 끈을 잇고 이어 ‘그림책 속으로 탱고가 흐른다’란 이름으로 또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이번 계기를 통해 또 새로운 인연을 조우하고 싶었다고.



그런 소박한 바람을 담은 ‘그림책 속으로 탱고가 흐른다’는 인문360과 어반플레이가 함께하는 골목콘서트의 일환이다. 일상적인 공간이 무대가 되어 동네 사람들과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기획되었다. 그 기획에 맞게 골목 끄트머리에 자리한 작은 그림책 전문 책방, 구름책방엔 대전에 터를 둔 많은 이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자리를 찾아가 앉느라, 사진작가의 사진을 구경하느라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조용해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림책 연구가 이은정 연구원의 소개를 시작으로 곧 반도네온의 선율이 공간에 흘렀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분주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이내 모든 신경을 그녀의 연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최지연 반도네오니스트는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료한 일상 속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반도네온을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은 그녀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좋아하는 반도네오니스트에게 음악을 배우고 싶어 무작정 한국을 떠나 낯선 곳에 자리 잡기까지 했다는 그녀의 열정이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연주에서 느껴졌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은 한국 그림책과 그림책 작가를 연구하는 이은정 연구가도 마찬가지였다. 반도네온 연주가 끝나고, 그림책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이억배 작가와 작품을 풀이하고 해석하는 그녀의 얼굴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관객이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관객들은 정유미 작가의 <먼지 아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에 대한 감상과 떠오르는 일상의 조각을 포스트잇에 적어 함께 읽었다. 이내 각기 다른 주제의 대화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똑같은 애니메이션에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이처럼 다른 생각과 감상을 나눌 수 있다니. 새삼 지금 여기 모여 앉은 이들이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는다. 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것을 좋아하며 살아가는 이들. 그들과 내가, 우리가 공유하는 거라곤 이곳에서 함께한 이 두 시간뿐이라는 생각이 닿자, 괜히 순간순간이 더욱 소중해진다. 서로 붙어 앉아 약간은 불편하게 느껴졌던 자리도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앞서 이은정 연구원이 말했던, 우연한 만남이 주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일까 싶다.



행사 내내 반도네온의 탱고가 공간에 흘렀다. 사실, 반도네온은 탱고를 위해 만들어진 악기가 아니라고 한다. 독일 서민들의 애환을 풀어주던 악기인 반도네온이 우연히 스페인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탱고와 만났고, 탱고를 연주하는 대표적인 악기로 자리 잡았다.

우리 앞으로 수많은 사람과 순간이 우연이란 이름으로 스쳐 지나간다. 이번 행사를 주도한 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만났던 것도, 서로를 알게 돼 함께 행사를 진행한 것도, 반도네온이 탱고를 연주하는 악기가 된 것도 모두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앞으로 지나간 우연들이 어떤 인연을, 또 어떤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구름책방에서의 만남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삶에 있어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새로운 인연을 조우하기 원했던 주최자들의 바람이 이뤄졌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할 수 있는 건, 골목 끝 자그마한 공간에서 나눴던 두 시간이, 우리의 일상에 있어 좋은 자극과 활기가 되어주었다는 거다. 그거 하나면 우선은 충분한 결과이지 않을까.






'골목콘서트 여름 시즌' 연재글 리스트

1. 그림책 속으로 탱고가 흐른다. (현재글)
2. 실험적인(人)
3. 둥이네 베란다
4. 지금의 살롱

에디터

박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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