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F&B 스토어 1주년의 기록

연남방앗간 Directing Note

강필호, 조윤|

혹자는 뉴트로 트렌드를 대표하는 명소로 이곳을 꼽는다. 혹자는 참새를 자처하며 이곳을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혹자는 연남동 인스타그램 성지 순례 중 이곳을 들른다. 혹자는 그 모든 복잡한 수식어를 거부하며 ‘핫플’이라는 단어로 간결하게 이곳을 정의한다.

2019년 4월, 정식 오픈 1주년을 맞이한 연남방앗간에 대한 세간의 정의는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문득 궁금했다. 우리는 대체 이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느껴야 할까? 연남방앗간을 설계한 어반플레이 임동길 디렉터는 일면만을 바라보는 세간의 평가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종합하여야 이 공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신이 생각하는 연남방앗간은 그곳에 없다.





양옥집을 리뉴얼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나.

처음으로 자체 브랜딩한 공간이다 보니 콘텐츠로 승부를 보자는 생각이 강했고, 그래서 입지보다는 공간이 원래부터 갖춘 물리적 요소에 집중하여 매물을 알아보았던 것 같다. 지금 연남방앗간이 들어선 양옥은 경의선 숲길과 맞닿아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층을 포함하여 3층 규모의 주택 건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왜냐면 벽을 따라 분할된 공간을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인테리어의 톤 앤 매너를 잘 살려서 매만지면 최신 트렌드인 ‘뉴트로’ 코드와도 잘 어울리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주변 건물들의 임대료 시세가 워낙 비싼 편인데, 우리가 들어간 건물은 주거용 주택이라서 상대적으로 많이 저렴했다는 점 역시도 매력적이었다.




일명 ‘연트럴파크’ 앞에 자리 잡았다. 이러한 입지가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연남동은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터줏대감 어르신들은 공원을 산책하다가 참기름을 구매하러 오시고, 주변에서 자취하는 20~30대 고객들은 개인적인 작업을 하거나 공원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방문한다. 외부 방문객들에게 연남방앗간은 공원을 포함한 연남동의 라이프스타일을 함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는 것 같다. 즉, 동네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다양한 만큼, 공원을 앞에 둔 이 공간을 이용하고 소비하는 형태도 다양하다. 

그뿐만 아니라, 연남방앗간 바로 앞에 위치한 경의선 숲길은 연남동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도시에서 살다 보면 일상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녹지를 접할 기회가 드물지 않나. 이런 경의선 숲길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공간에 비일상적인 느낌을 더해주어 공간 경험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방문객의 연령대와 성별, 그리고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 등이 궁금하다.

아무래도 경의선숲길에 사람이 몰리는 봄, 가을에 손님이 가장 많다. 방문객의 주된 연령대는 20대인데, 자체적으로 설정한 연령 타깃은 2030이다. 왜냐면 기존에 어반플레이의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관심을 보이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보통 20대 후반부터 30대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남방앗간이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로 인식되면서 방문객 연령대가 예상보다 조금 더 낮아졌다. 현재 연남방앗간의 운영 시간은 평일 정오부터 오후 9시, 주말 정오부터 오후 10시까지로, 주변의 카페에 비해 늦게 열고 일찍 닫는 편이다. 앞으로는 외부에서 연남동에 놀러 온 분들도 편히 방문할 수 있도록 운영 시간을 조금 더 늘릴 예정이다.




上: 양옥집에 원래부터 붙어 있던 펭귄 무늬 벽지

下: 집주인이 원래 사용하던 자개장을 양도 받아 진열대 겸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했다.


기존의 공간 요소 중에서 그대로 남겨둔 것은 무엇이고 바꾼 것은 무엇인가.

기존에 공간에 남아있던 요소들은 거주하던 이들의 스토리를 담은, 일종의 유산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그대로 두었다. 방 안에 있는 자개장이나 에어컨, 전화기 등은 원래 살던 분들이 두고 간 것인데, 공간 연출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해 남겨두었다. ‘누군가의 책방’에서 인테리어 포인트가 되어주는 펭귄 무늬 벽지 또한 원래 붙어 있던 것이다. 기존에 있던 내부 벽지가 많이 낡아 지저분한 상태였고, 이를 보수하기 위해 뜯었더니 안에 있던 펭귄 무늬 벽지가 나오더라. 이처럼 내부 마감이나 소품 등은 기존 요소를 최대한 살리는 기조를 유지하되, 우리가 가진 콘텐츠를 공간 안에 최대한 효과적으로 입힐 수 있도록 이동 동선에 변화를 주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주 출입구를 통해 들어서자마자 참기름이 진열된 장을 마주치게 되는데, 그곳이 원래는 주 출입구였다. 진열장을 활용하여 출입구를 의도적으로 한 번 막고, 이를 통해 공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각 요소를 제시하는 동시에 동선의 단조로움을 해소하고자 했다.


간판이 크지 않은 데다가 입구에 조성된 풀숲이 출입문을 가리고 있어 위치를 찾기가 쉽진 않다. 이 역시도 의도된 것인가?

그렇다. 공간 자체가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기보다는 이 공간이 지닌 콘텐츠를 사람들이 인지하고, 그것에 끌려 찾아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공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부분적으로 감춰두었을 때 조금 더 극적인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간판이나 출입구가 눈에 띄지 않도록 다듬었다.



방앗간미식회01: 네이처오다


‘방앗간’이란 컨셉은 일반적인 F&B 공간과는 차별화되는 개성을 부여하는 요소다. 이러한 컨셉을 공간에 녹이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방앗간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우리는 참기름이나 곡물을 단순하게 가공하고 매매하는 1차원적인 성격보다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방앗간이 지닌 특성에 주목했다. 오래된 전통시장에 가보면, 다른 상점들은 사라져도 방앗간은 끈질기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방앗간이 물건을 사고파는 상점일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도 저 나름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방앗간의 문화적 원형을 그대로 도입하여 방문객이 경험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연남방앗간에서는 바로 그 대상이 바로 ‘식음료 콘텐츠’인데, 이러한 콘텐츠를 원활하게 시연할 수 있도록 공간 곳곳에 책장이나 진열장을 배치했다. 또한, 1층 역시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좌석을 가능한 한 많이 두는 일반적인 카페와 달리 사람들이 자유로이 대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비워 두었다.





상단부터 '누군가의 작업실 2', '누군가의 작업실 3', '누군가의 책방'


‘누군가의 작업실’, ‘누군가의 책방’ 등 다양한 팝업 이벤트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개별 공간에 컨셉을 부여한 점이 흥미롭다. 이러한 공간들의 취지와 특징, 공간에서 선보인 대표 콘텐츠 사례 등을 소개해달라.

연남방앗간을 구성하는 공간으로는 누군가의 책방과 누군가의 작업실 1, 2, 3이 있는데, 각각의 컨셉이 공간의 물리적인 형상을 통해서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누군가의 책방은 출판물을 제작하는 분들이나 책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지닌 콘텐츠를 책장을 활용해서 소개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공간이다. 누군가의 작업실 1에는 집주인께서 남겨두신 자개장을 개조하여 제작한 전시대가 있어 다양한 팝업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누군가의 작업실 2는 비교적 크기가 큰 디자이너의 작품이나 가구 등을 선보이는 쇼룸 개념의 공간인데, 자유로이 사진을 촬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커다란 거울을 설치했다. 작품이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일종의 포토존을 마련해둔 셈이다. 작업실 3은 소규모 세미나를 진행하거나 창작자의 콘텐츠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했다. 양쪽 벽면에 부착한 유리판은 칠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진행되었던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해 누군가의 책방에서 열렸던 조향사 오하니 님의 팝업 전시다. 당시 2주간 아는동네 매거진에서 다뤄졌던 연남동, 을지로, 이태원 지역의 특성을 표현한 리빙 퍼퓸과 평소에 영감을 주는 책들을 함께 전시했다. 책장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콘텐츠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어반플레이 쉐어빌리지 공간의 키 비주얼이라 할 수 있는 금색 계산대(上)와 샹들리에(下)


금색으로 장식한 계산대와 샹들리에 등은 어반플레이가 운영하는 다른 쉐어빌리지 공간에서도 만날 수 있는 일종의 키 비주얼이다. 해당 요소를 기획한 과정과 의도가 궁금하다.

연남방앗간은 기존 가옥을 구성하는 소재가 개성이 강했기 때문에 그와 잘 어울리는 소재를 선택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 기존에는 자연적 성질을 지닌 나무가 주된 소재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 더할 소재로는 인공적 물성을 지닌 유리와 철을 선택했다. 예를 들어, 거실 공간의 바닥과 부엌에 있는 커다란 바 테이블의 경우 금빛 철을 사용했고, 조명과 창에 유리를 사용했다.

그리고 입구 우측 상단을 보면 동쪽을 향해 난 삼각형 모양 창을 통해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데, 이 빛이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로로 길면서도 크리스털로 만들어져 빛을 반사할 수 있는 샹들리에를 천장에 단 것이다. 덕분에 오전에는 조명을 따로 켜지 않아도 공간에 햇살이 가득 든다. 현재 연남방앗간에 있는 이 샹들리에는 가격 대비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서 앞으로 만드는 공간에서도 계속해서 활용할 예정이다.


연남방앗간 기획 과정에서 영감을 얻은 공간이 있나.

인테리어 디자인 과정에서 특정 공간을 레퍼런스로 삼지는 않았다. 다만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엔트러사이트 서교점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른 카페와 달리 노래를 틀지 않고, 공간을 경험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인상 깊었다. 공간에 담긴 콘텐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의도가 잘 와 닿았고, 우리 공간에는 그와 같은 의도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연남방앗간의 대표 메뉴인 '연남참기름'과 '참깨라떼'


참깨, 잎, 원두, 오미자 등 재료를 앞세워 구성한 메뉴가 눈에 띈다. 메뉴 기획 과정에서는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썼나.

연남방앗간에서 첫 번째로 진행한 전시는 참기름을 조명했다. 이에 발맞춰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참깨나 참기름을 재료로 활용하여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탄생한 참깨라떼는 라떼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은 미숫가루에서 착안한 음료다. 참깨를 포함한 15가지 곡물 베이스가 들어간 음료 위에 크림을 얹고, 참기름을 마무리 삼아 그 위에 뿌려 만든다. 여기에 더해 메뉴에는 강원도 영월의 찻잎과 경북 문경의 오미자 등 음료나 디저트에 활용한 주요 재료의 원산지를 표기해 두었다. 우리가 내어놓는 식음료 또한 나름의 스토리를 지닌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맥락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도록 이와 같은 방식을 택했다.




운영하는 공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물리적으로 어떻게 구현했나.

우리는 ‘공간도 하나의 미디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공간 사업을 진행한다. 즉, 직접 운영하는 공간은 우리가 지닌 콘텐츠나 지향하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수단이다. 예를 들어, 수입산 참깨로 만든 참기름은 품질이 좋지 않다는 보편적인 편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수입산과 국내산을 막론하고, 참기름의 품질에 있어 중요한 것은 참깨 품종에 따른 올바른 착유법이다. 이처럼 식음료 분야에서 대중적인 인식에 오류가 있거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정확한 정보가 존재하는데, 우리는 이를 정리하고 전달하는 매체로써 공간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참새가 그려진 로고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보통 참새는 곡식을 먹어 치우는 해로운 새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참새는 곡물에 기생하는 해충을 잡아먹는 고마운 새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남방앗간이 사람들이 기존에 지닌 편견을 바꾸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로고에 참새를 넣었다. 물론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라는 속담과도 잘 맞아떨어지기도 했고, 입구에 있는 나무에 열매가 열릴 때면 실제로 참새가 많이 날아들어 오기 때문에 여러모로 연남방앗간과 잘 어울리는 로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 밖에도 방문객들이 눈여겨봐 주었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사실 가치 있는 로컬 F&B 콘텐츠를 소개하겠다는 기획 의도와는 달리 연남방앗간은 독특한 컨셉의 카페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자 지하 공간에서 한층 더 다양한 식음료 관련 창작 콘텐츠를 보여주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방문객분들이 이 공간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주면 좋겠다. 이곳에서는 시각적 경험에서 한발 더 나아가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는 등 식음료와 관련하여 조금 더 직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지하 첫 번째 방은 팝업스토어를 위한 공간이며, 지금은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와 함께 기획한 <간장의 재발견> 전시를 진행 중이다. 두 번째 공간은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바 테이블과 책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가 다양한 음료를 팔고 있긴 하지만, 그에 관한 스토리를 직접적으로 상세히 전달하고 있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장 안쪽 공간은 차나 커피, 술 등 다양한 음료와 관련된 스토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좌석 역시도 누구나 빙 둘러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구도로 배치해 두었다. 지상 공간에 방마다 나름의 컨셉이 있듯이, 지하 공간 역시도 나름의 목적과 테마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앞으로 더욱 활발히 이용되었으면 좋겠다.




연남방앗간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29길 34

평일 : 12:00-21:00(월 휴무) / 주말 : 12:00-22:00

070 - 4200 - 2200

https://yeonnambangagan.com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강필호

stopkang1086@gmail.com

조윤

yjo@urbanpl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