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근대 건축물 사용법

인천아트플랫폼

이지현|

과거는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은 언젠가 과거의 흔적이 된다. 인천 원도심의 개항장 일대를 걷다 보면 이를 여실히 체감할 수 있다. 이 지역에는 개항이 이뤄진 19세기 말엽부터 건립된 근대 건축물이 다수 남아 있다. 낙후한 탓에 방치된 건물의 앞날을 두고 사람들은 첨예하게 맞붙었다. 혹자는 재개발만이 지역 회생을 도모할 해법이라 주장했으나, 건물 또는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한순간에 지워버리는 재개발은 온전한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맹목적으로 복원을 주장한 이들 역시 건설적인 미래를 그려내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인천아트플랫폼은 개항장 일대의 옛 건물들을 오늘날의 쓸모에 맞게 성공적으로 재생한 선례다. 과거의 유산인 근대 건축물과 슬기롭게 공존하며 내일로 나아가는 방법을 이곳에서 엿볼 수 있다.



ⓒ강필호


과거의 것을 오늘의 것으로

인천 원도심 안에서도 개항장 문화지구는 유독 풍경이 생경한 구역이다. 하늘에 닿을 듯한 마천루가 뉴욕의 전체적인 인상을 규정하듯, 오래된 근대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는 이곳의 이국적인 모습은 인천 원도심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개항장’이란 근대 이후 외국인의 왕래와 외국과의 무역을 위해 개방했던 항구 주변의 제한 지역을 의미한다. 옛 사진을 살펴보면 이 지역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어 배가 오가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부산보다 7년 늦은 1883년, 비로소 인천이 개항했다. 개항과 동시에 많은 외국인이 이곳으로 유입되자 주거 공간과 상업 시설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청일 조계지(租界地, 개항장 주변의 외국인 치외법권 구역) 계단을 기준으로, 일본인 집단 거주 지역인 오른편에는 일본식 목조 건물이, 왼편에는 청나라 양식의 건물이 들어섰다. 계단을 기준점으로 상반된 형태의 건물이 좌우에 빼곡히 들어선 모양새가 무척 흥미롭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개항장 일대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갔고, 빈자리는 다시 조선인이 채웠다. 일본인이 남기고 떠난 근대 건축물 역시 조선인의 생업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됐다. 당대의 최신 건축 사조를 반영해 지은 건물들이 하루하루 낡아 쓸모를 잃을 때쯤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열강이 이 땅에 남긴 낙후한 건축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 인천아트플랫폼

해안동 일대의 낡은 창고와 근대 건축물은 문화예술 앵커 시설이라 할 수 있는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재탄생했다



이때 근대 건축물의 보존 및 활용 방안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나선 이가 건축가 황순우였다. 공공 기관을 설득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노력 끝에, 그는 개항장 일대 도시재생 사업의 총책임자가 됐다. 황 건축가는 근대 건축물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용도에 맞춰 개・보수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1999년에 시작한 인천아트플랫폼 조성 사업은 도시 계획부터 건물 완공까지 장장 10년에 걸쳐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사업을 담당하는 기관의 국장이 1년마다 바뀌는가 하면 실무 담당자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다행히 2004년에 MA(Master Architect) 제도가 도입돼 해당 사업은 황 건축가의 일관된 지휘와 관리하에 진행할 수 있었다.


1930~1940년대 인천은 국내 최대의 쌀 집산지이자 미곡 유출의 중심지였다. 그렇다 보니 배가 드나들던 해안동 일대에는 물건을 보관할 창고들과 거대한 규모의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 건물들의 넉넉한 설계 형태는 오늘날 용도에 따라 다양한 콘텐츠를 도입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2003년 마침내 인천시가 근대 건축물 복원 작업에 착수하면서 본격적인 문화예술 공간 조성 사업이 시작됐다. 그 결과 1888년에 완공된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등록문화재 제248호)을 비롯해 대한통운 창고, 대진상사, 삼우인쇄소 등 열세 채의 근대 건축물이 인천아트플랫폼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건물들은 창작 스튜디오, 전시장,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 각각의 쓰임새를 새롭게 부여받았다. 낙후한 분위기의 개항장 일대는 한때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지만, 인천아트플랫폼이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정착하면서 지금은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지방자치단체 관계자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변화를 향한 한 걸음

인천아트플랫폼은 부지면적 8,450.3m²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방문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개항기에 형성된 가로구획과 역사적인 경관은 유지했다. 근대 건축물의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 선택적인 복원・리모델링・증축 등 개・보수 작업이 이뤄졌으며, 대다수의 건물은 외벽을 유지한 채 내부를 현대적으로 개조했다. 붉은 벽돌과 박공지붕을 활용해 전체 열세 개 동의 외관에 통일감을 가미했다. 이와 대비되는 철제 프레임과 신축 유리 건물은 건축물에 현대적인 감각을 적절히 덧입혔다.


공사 과정에서 특정 건물이 철거되며 생긴 빈 공간에는 회랑을 짓거나 프레임을 세워 균형을 유지했다. 주 진입로 양쪽에 늘어선 건물을 종횡으로 잇는 철제 공중 보행로 두 개는 인천아트플랫폼 전체를 순환하며 관람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또한 건물 양쪽에 보행 약자를 고려한 엘리베이터 설치도 잊지 않았다. 섬세한 배려가 돋보이는 공간 설계를 통해 이곳은 “문화예술이란 특정 집단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편 황 건축가는 지역 변화의 열쇠를 예술가가 쥐고 있다고 판단해, 예술가들이 자연스레 모여드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앵커 시설 안에 거주와 창작 공간이 결합된 레지던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창작 활동에 필요한 공간과 지원을 좇아 이곳으로 이주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라 그의 제안이 유효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 일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는 약 150명이다. 이제 개항장은 국내외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개성과 목소리를 마음껏 표출하는 창작 공간이자, 시민들이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열린 광장으로 변모했다. 


“더 나은 지원을 바라는 예술가들과의 갈등, 지역 사회와 관계 맺기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세월 동안 인천아트플랫폼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300명이 넘는 작가의 창작을 지원했다. (중략) 다각적인 기획전과 국제 교류전을 개최하고, 인천의 역사와 환경, 인물 등 지역 관련 콘텐츠를 발굴하는 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도약과 변화: 인천아트플랫폼 10주년’ <SPACE> 2019년 9월호


인천아트플랫폼은 쇠락한 원도심을 재생하고  지역 내 문화예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거점 공간으로 단단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현시점에서 인천아트플랫폼의 성과를 둘러싼 평가는 분분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 지역을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았다면 많은 부분이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마 개항장 일대에 남아 있던 근대 건축물은 무관심 속에 헐린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테고, 이곳은 그저 그런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거나 인근 관광지의 편의성을 고려한 대형 주차장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황 건축가는 도시재생을 위한 ‘10+10’ 개념을 강조한다. 도시를 정비하고 가꾸는 데 10년이 소요되며, 이후 새로운 도시 운영 방식이 정착하는 데 10년쯤 더 걸린다는 뜻이다. 낙후돼 인적이 드물었던 인천 원도심은 인천아트플랫폼 개관 이후 유동 인구가 점차 증가했다. 이는 문화예술 앵커 시설로 조성된 이 공간이 지역에 어떤 방식으로든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듯 변화는 천천히 이뤄지고 있다. 지금은 당장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채근하기보다 좀 더 긴 호흡으로 개항장의 내일을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상징하듯 붉은 벽돌과 철제 프레임이 어우러진 인천아트플랫폼의 외관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인천 1》 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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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