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꾸이가 뭔지 아나?

동래시장 & 진양호식당

김선주|


동래를 대표하는 동래시장은 동국문헌비고에 의하면 조선시대부터 유구한 역사를 축적해왔다. 사실 직접 동래시장을 방문하기 전에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시장이라는 편견 때문인지 그저 여느 전통시장과 비슷한 그런 이미지를 예상했다. 

그런데 동래시장에 도착한 순간 내가 진정 맞게 찾아온 것인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동래시장의 외관은 쇼핑몰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멀끔했기 때문이다. 그저 명성과 전통에 의존하지 않고 꾸준히 현대화를 추진해온 결과 동래시장은 쾌적한 냉난방시설에 대형주차장까지 갖춘 현대적인 시장으로 거듭났다. 2015년에는 건물 외벽에 조선 시대 벽화를 그려 넣고, 지역명물인 동래파전과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동래시장은 ‘퓨전 파전 만들기 대회’와 ‘동래읍성 축제’ 등을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으며 나아가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2층 규모 건물에 자리 잡은 동래시장 1층에서는 농수산물, 음식, 생활용품 등을 만나볼 수 있고, 2층에서는 포목, 의류, 분식 등을 주로 판매한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동래시장에 들르는 주민도 많지만, 본디 동래시장은 싸고 맛있는 밥집 덕에 입소문이 자자하다. 1층에는 보리밥이나 가정식 백반을 뷔페식으로 판매하는 식당이 많아 오천 원 정도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간단한 안주에 막걸리를 시켜 낮술을 즐기는 어르신이 종종 보인다.



나 역시도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고, 낮술이 어색하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다는 소문에 이끌려 동래시장을 찾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식당가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진양호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저녁은 뭐로 드릴까?"



주인아주머니 말씀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냥 밥이요”라고 대답했다. 가정식 백반은 나물 반찬을 조금씩 담은 뒤 구운 생선과 시래깃국을 차린다. 밥이 더 필요하면 더 주겠다고 하시길래 지금도 밥을 너무 많이 주셔서 양이 넘친다고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리고 밥 위에 나물을 올려놓고는 양념간장 한 숟가락을 뿌린 후 젓가락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내가 밥 비비는 걸 보시던 옆자리에 앉은 어머님께서는 “니는 밥을 왜 이렇게 못 비비노. 저거 봐라.”하면서 말을 걸었다. 그리곤 “니 도꾸이라는 말 아나?”라는 질문을 덧붙이셨다.


"경상도에서 도꾸이라는 말은 단골이라는 말이다. 거의 50대 이상 돼야 알아듣는 말이제. 부산은 일본말이 많이 섞여 있어서 아직까지도 사용한데이. 나는 여기 한 5년 되었나. 사장님 나 몇 년 되었나? 4년 되었다고? 근데 도꾸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2~30년 되어야 도꾸이라고 쓴다. 저쪽에 계신 할아버지도 항상 저렇게 술 한잔 자시고 가신다. 요즘 다들 불경기라 힘들어서 그러는 기다. 동래시장에 니 같은 젊은 사람이 많이 와야 하는데 걱정이다."




동래식당의 밥집 공간은 대부분 주인아주머니를 중심으로 빙 두른 ㄴ(니은)자 형태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다. 덕분에 혼자 온 사람은 어색하지 않게 식사를 하고, 처음 만난 옆 사람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다. “어머니요, 뭐 만들어 주이소”라고 말하면 메뉴에 없는 요리도 만들어 주는 그런 식당이다.

분위기도, 맛도, 한창 화제를 모았던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주인아주머니도 드라마 속 마스터처럼 차분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신다.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던 어머님은 내게도 한잔 따라주시더니 댁으로 간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대화가 즐거웠다고, 동래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게 입소문을 내 달라고 당부하시면서. 모르는 사람과 잔을 부딪쳤고 잠시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공간이 참으로 정겹다. 집과 동래시장이 가까웠다면 나도 ‘도꾸이’가 되지 않았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