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물러 있는 공간

카페 고택

김선주|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인연이 있는 건 아니다. 사람과 물건 사이에도 깊은 인연은 존재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물건이 보이지 않는데, 내 눈에는 턱 하니 보일 때, ‘내가 물건의 주인이 될 인연이었나보다. 물건이 나를 선택했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동래구 버스정거장. 번잡한 도로변에서 벗어난 곳에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고택이 있다. ‘고택’이라고 적혀 있는 군더더기 없는 간판을 보면 잠시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고택 카페를 꾸려 나가는 사람은 분명 연세가 어느 정도 있는 분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고택에서 나온 이는 누가 보기에도 젊어 보인다.



오랜 기간 요식업에 종사해온 권재성 대표는 ‘고택’으로 첫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다른 지역에서 한옥 공간을 활용하여 카페를 운영하는 모습을 종종 봐왔고, 권 대표 역시도 그런 공간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혹시 부산에도 기와집이 있을까 싶어 수소문하다가 정말 우연히 방문한 골목에서 한 폐가(지금의 고택)를 발견하였다. 그렇게 3년 동안 폐가였던 기와집은 카페 겸 펍으로 새로이 탄생했다. “골목 앞쪽으로 큰 도로가 있는데 어떻게 3년이나 비어 있었을까요.”라고 질문했더니 그는 “제 가게가 되려고 그랬나 봐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건물은 1939년에 지어진 고택이다. 대들보에는 ‘1939’라 적혀 있고, 고택을 다녀간 손님 중 한 분은 블로그에 이곳이 할머니 집이었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서까래를 그대로 사용하려면 1939라고 쓰인 부분을 갈아야 했고, 그 상징적인 연도를 기억하고자 1939라는 로고를 넣어 냅킨을 제작했다.

공사 기간은 40일을 예상했지만,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일일이 손을 봐야 했다. 배관 공사 및 마당 보수를 하고 지붕을 얹기까지 걸린 시간은 두 달 반. 주변 어르신들은 위치가 좋지 않은데 누가 오겠냐며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개업 이후 한 달 만에 손님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사실 처음에는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는 아지트 정도로 여유롭게 운영하려고 했거든요."




가볍게 생각하고 소박하게 시작한 가게였는데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입장을 위해서는 대기를 해야 할 정도로, 동래구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 오픈할 때 가졌던 마음과는 달리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 직원이 예닐곱 명 정도 되는데요, 그 친구들이랑 오래도록 같이 일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지요? (웃음) 장진우 씨가 식당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저는 그게 정말 부럽더라고요. 나중에 저도 직원들이랑 사진을 남기고 싶어요. 제 꿈은요, 요식업과 펜션 리조트, 여행 어플을 만드는 것인데요. 직원들에게는 프리패스를 만들어서 제 사업장을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오픈할 때 함께 일했던 직원이 결혼 후 호주에 이민을 갔는데요, 그 직원과 모두 함께 단체 사진을 남겼어야 했는데 그게 항상 아쉬워요. "



손님들에게 추억을 선사하고 더욱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고자 하는 그는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메뉴 개발에 신경을 쓰면서도 국내외 소문난 카페를 직접 방문하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아직 제가 어려서요, 배우면서 해야 할 일도 많아요."


권재성 대표는 겸손하게 말을 덧붙였다. 고택 앞에서 직원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예감이 든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