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도시에서 우리가 사는 공간은 소비재이자 투자 가치를 가진다. 특히 서울 시민에게 높은 지가의 부동산에 대한 불확실성은 큰 스트레스 중 하나이며, 그 지수가 매우 높은 동네 중 하나가 바로 연남동이다. 스마트폰 어플 하나로 살 집을 구하고 검색 포털에서 부동산 매매가도 확인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웹과 앱의 기술로는 절대 풀 수 없는 시시콜콜한 동네 부동산 이야기는 발품을 꼭 팔아야 한다. 연남동에서 생활한 지난 5년 동안 동네 부동산을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리며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변화할 연남동과 우리가 그리는 연남동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주워듣기 하나. “저 집이 얼마에 팔렸다고?”
시세 차익을 중심으로 한 자극적인 부동산 이야기는 동네 술집과 카페에서 가장 적절한 안줏감이다. 연남동처럼 부동산의 가치가 급상승한 지역은 뒷이야기로서 그 효용 가치가 더욱 크다. 누구네 집이 얼마에 팔렸다는 소문은 동네 부동산을 허브 삼아 순식간에 온 동네에 퍼진다. 연남동처럼 공급에 비해 수요가 높은 지역에서는 평당 최고가가 경신되는 시점부터 그 가격이 곧 동네의 시세가 된다.
연남동의 부동산이 뜨거워진 것은 공항철도가 들어선 2010년 이후부터이고, 본격적으로는 경의선숲길공사가 시작된 2013년경이다. 동진시장 주변 다가구주택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2013년 약 평당 1,200만원 내외에서 형성된 매매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주식 오르듯 올랐고 이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2017년 여름 4,000만원 내외를 형성했다. 그사이 많은 원주민이 집을 팔고 나갔고 대신 게스트하우스, 카페, 펍, 식당이 치고 들어오면서 임대료도 함께 폭등했다. 연트럴파크 근처는 매매가가 평당 1억이라는 소문은 이제 동네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시설비를 많이 들이지 못해 겨울에는 난방도 잘 되지 않던 카페는 더 매력적으로 정돈된 카페들 사이에서 박물관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고, 동네 사람들이 자주 찾던 대표적인 태국 음식점은 줄을 서지 않고는 먹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다. 최근 몇 년간의 변화에 당황한 동네 주민은 오히려 관찰자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동네의 추억에 기댄 불평보다 좀 더 이성적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그 변화 사이에서 우리만의 동네를 성장시켜 나가는 연습이 필요한 시기다.
주워듣기 둘. “그래서 연남동에서 뭘 할건데?”
2013년 겨울, 동진시장 골목 ‘히메지’에서 카레를 먹고 나오던 차였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내렸고 익숙한 동네에서 낯선 설렘이 느껴졌다. 골목이 주는 이런 뜻밖의 생동감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연남동 골목을 찾는 원동력이다. 사람들은 차별화된 콘텐츠를 많이 접할 수 있을 때 그 동네의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동네에 새로운 무언가가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항상 경계하고, 동네가 활성화되길 바라면서도 상업화로 인해 그 색을 잃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임대료가 오르면 동네가 담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수수한 모습의 공방, 책방, 대안 공간, 조그만 카페 등 이 동네만의 색깔을 드러내던 가게들이 화려한 술집과 카페들 사이에 묻혀가는 형국이다. 하지만 과거의 추억에 얽매여 안타까움만 표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변화를 이성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당신이 연남동에서 창업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판다 해도 예전보다 2배는 더 팔아야 하고, 평범한 콘셉트는 주목을 끌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임대료만 오른 것이 아니라 많은 비용 또한 동반 상승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연남동 메인 골목을 한바퀴 돌면 1.4km정도이다. 도보로 22분 정도 걸리는 이 거리에 카페만 31곳이 있다. 45m에 한 번씩 나오는 카페 사이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유동인구가 증가한 만큼 카페가 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소비 인구까지 확연히 늘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늘어난 유동인구 대부분은 외부인이라 주말에 집중적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공간의 순환율’, 즉 효율성이 떨어진다. 평일에도 재방문율을 높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연남동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경의선숲길공원에 몰려드는 인구다. 주말이면 정말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지만, 그들은 되레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하기 때문에 편의점이나 테이크아웃 전문점 외에는 생각보다 주변 가게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결국 구름떼 같은 유동인구도 착시 효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착시 효과가 임대료와 권리금과 같은 부동산 가치 산정에 상당 부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실재하지 않는 가치에 돈을 지불하는 실수는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 동네가 빠르게 변한다는 것은 그 안에 많은 가치가 혼동되고 있을 확률이 매우 크다. 특히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할 때 수요자는 조급한 마음에 이성적 판단을 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주워듣기 셋. “연남동은 이제 끝물이다?”
그렇다면 연남동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자살행위인가? 많은 이의 고민이다. 어느 순간 임대료가 오르면 리스크가 큰 실험적인 콘텐츠는 모습을 감추고 우리에게 익숙해진 콘텐츠가 자리 잡을 확률이 높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동네는 어느새 다시 평범해진다.
올해 봄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전반적인 시세를 확인했다. 연남동 골목 임대료는 상업지구 기준으로 평당 15만 원 내외, 단독주택은 대지 50평 정도 기준으로 평균 800만 원 내외였다. 매매가는 평당 4,000만 원이다.
건물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약 20억 원을 들여 건물을 매입하고 세금과 수리비 2억 원 정도를 들인다면 약 800만원 정도의 임대료 수익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계산하면 연 수익률 4.3% 정도가 나오나 부동산 중개료 및 관리비 등을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니 실제로는 연 4% 내외가 맞다. 이 역시 공실이 없다는 전제하에만 나올 수 있는 수익률이다. 우리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하지만 사실 건물주도 수익률로만 보면 상상처럼 신선놀음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특히 대출이나 투자금이 섞여 있을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럼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결국 매매자 입장에서 급변동 구간이 지난 동네에 거액의 돈을 묶어두고 수익률만 바라보기에는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징후는 연남동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다. 새로 단장한 건물들은 무리하게 임대료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결국 예전에 없던 공실이 늘고 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최소 얼마 이상 받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기에 웬만해선 임대료를 내리지 않고 차라리 공간을 비워둔다. 한편 매출이 시원찮은 임차인의 경우에도 최소한의 권리금이라도 받고 ‘탈출’하려 하지만, 권리금 없는 신축도 비어있는 마당이니 이 역시 쉽지 않다.
물론 지금 자신만의 콘텐츠를 확실히 가진 사람이라면 새롭게 둥지를 틀기에 나쁘지 않은 시기다. 우선 공실이 있기에 건물주와 협상이 가능하다. 최근 공간 기획을 통해 소규모 사업자가 모이는 사례가 늘고 있는 이유는 공동 마케팅과 안정된 임대 기간 때문이다. 건물주도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더는 임대료 올리는 데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인 시선으로 ‘공간 기획자’의 감각을 키워야 한다. 좋은 콘텐츠가 모여 안정적으로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건물은 세입자에게 분명 매력적이고, 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올라갈 것이다. 세입자는 자신의 콘텐츠에 집중하고, 건물주는 그 콘텐츠로 살아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제공해 건물의 가치를 올리는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답하자면 지금의 연남동은 끝물이 아니라 오히려 이 동네만의 색깔을 선명하게 가질 수 있는 기회의 단계에 있다. 그 키Key는 건물주와 임대인의 협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임대차 계약서를 넘어선 새로운 특약 조항이 필요하다. 나아가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쓰라린 상처 위에 쓰여진 시세 차익의 ‘영웅담’이 아닌 다양한 부동산 공유 모델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