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각골 농부 이야기

햇빛농원

아는여행|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중 하나가 농부다. 농부는 땅과 하늘의 유기를 알고 계절의 순환을 가장 먼저 손끝으로 만져보는 사람이다. 햇빛농원 김청호 대표는 ― 대부분의 전문가가 그러하듯이 ― 특별할 것 없다는 표정으로 30년간 이어온 농사 세계에 대해 말했다. 나는 30년 동안 흙을 만지고 나무를 가꾸는 건 어떤 일일까 상상했는데 얼마 안 되어 관뒀다. 사과 한 알만 먹어보면 그만일 일이었다.


ⓒ인시즌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요각골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쭉 살고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군대를 다녀온 이후다. 지금 나이가 쉰둘이니까, 한 30년 이상 했다. 


부모님께서도 사과 농사를 지으신 것인가.

충주가 사과로 유명하지만 원래 요각골엔 사과 농원이 일부만 있었다. 보통 고추, 참깨, 토마토 농사를 지었는데 경사가 심하다 보니까 그런 농사는 타산이 잘 안 맞더라. 그래서 사과 농사를 짓게 됐다. 동네 주민들도 하나둘씩 과수원을 시작했다 농사짓기는 힘들어도 맛은 좋으니 사과로 바꾼 것이다.


‘요각골’이라는 마을 이름은 정말 생소하다.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잘 나오지 않더라. 

우리 동네는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이다. 고개를 하나 넘으면 시골 풍경이 펼쳐지고 또 고개를 살짝 넘으면 충주 시내와 가깝다. 번화가와 가까우면서도 시골 풍경이 여전히 존재하는 곳이다.


이곳 사과가 특별히 맛있는 이유가 있나.

지역적 특성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여름에 충주 시내에 있다가 여기로 올라오면 확 시원한 느낌이 든다. 해발 300m 정도 되니까 일교차도 큰 편이다. 경사가 가파른 덕에 배수도 잘되고,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물이 잘 빠지니까 사과에 큰 해를 주지 않아서 당도도 잘 나오고 단단하다.



인시즌 김현정 대표가 조카다. 햇빛농원의 사과를 재가공한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맛은 보았나.

예, 뭐. 우리가 1차 가공한 것을 가져가서 재가공했는데 맛은 상당히 좋았다. 그런데 지금 조카가 듣고 있어서.(웃음) 오미자하고 사과하고 배였나? 농축해서 물에 타 먹을 수 있는 시럽을 먹어봤다. 


그럼 조카분이 먼저 제안한 건가.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보내달라고 하니까 보내줬다.(웃음) 


아주 근본적인 게 궁금한다. 사과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수확할 수 있나?

뭐, 품종마다 기간이 다른데, 겨울에 가지치기했으니까 곧 꽃눈이 나올 것이다.  꽃눈이 나오면 4월 중순에 꽃이 피고, 7월 중순부터 수확하는 품종이 있다. 10월 말에서 11월 초까지 수확하는 품종도 있고.



보통 과일 고를 때 당도를 되게 중요시한다. 일반 소비자가 당도 말고도 주의 깊게 볼 부분이 있을까?

그전에는 색깔을 많이 봤다. 요즘엔 당도나 단단한 세기를 본다. 사과 표면을 두드렸을 때 탱탱 소리가 나면 맛있는 사과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과와 비교했을 때 햇빛농원 사과 맛은 어떤 것 같나. 

나는 우리 집 사과만 먹으니까 다른 집 사과 맛은 잘 몰른다.(웃음) 그런데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저희 사과는 향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향이 깊다. 


대표님의 일과가 궁금하다. 

요즘에는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뭐, 보통 4월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꽃을 따고, 꽃이 질 때면 ‘적과’라고 사과를 솎아주는 일을 한다.  


농부는 몸이 부지런하되 마음은 느긋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해에 수확이 안 될 경우도 있고, 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에 기다릴 때도 많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농부는 어떤 사람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제가 볼 때 농부는 매일 속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봄이 오면 ‘이번에는 농사 좀 되겠지?’ 이런 마음인데, 가을이 오면 다시 ‘아, 생각보다 안 될 수도 있겠구나’ 이런다. 매번 자책하지만 매번 희망을 놓지 않는 것도 농부다.



그럼 언제 농사가 가장 잘됐나.

5~6년 전에 유독 잘됐다. 그때는 시기적으로도, 자연적으로도 조건이 잘 맞았다. 다른 저지대 농원은 인공적으로 간수를 하니까 괜찮은데, 우리는 그렇게 물을 줄 수 없으니까 자연에 많이 의지하며 산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고, 지켜내고자 하는 일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든 공판장을 거쳐 거래하든 신뢰가 필요하다. 공판장에 있는 사람들도 다 주민이다. 그분들하고도 신뢰가 필요하다.


요각골을 떠나본 적이 없다. 충주는 어떤 도시인가.

충주는 적당히 발전하고 적당히 멈춰 있는 농촌형 도시다. 특별히 자랑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살기에 좋다. 공기도 맑고 풍광도 좋고. 


햇빛농원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음… 목표라고 하면, 내가 생산하는 사과가 소비자한테 널리 홍보되고, 맛있다는 소리 듣는 거다. 



정말이지 진부한 표현이라서 쓰긴 싫지만 햇빛농원의 사과는 참 맛있었다. 사과를 좋아하는 편이 아님에도 김청호 대표가 챙겨준 사과를 생각날 때마다 아작 베어 물었다. 채소만 신선하다고 생각해봤지 과일의 신선함은 그때 처음 느꼈다. 그 사과 한 알에 그의 30년 농사 인생을 가늠했다고 하면 무리이려나? 하지만 과수원 농부가 과실로 말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표현하겠는가. 비록 글이 아니면 달리 표현하지 못할 에디터가 ‘맛있다’는 진부한 표현을 쓰고 있지만.



그런데 김청호 대표가 그랬다. 농부에게는 맛있다는 소리가 제일이라고. 어쩌면 사람들은 진부한 표현을 듣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잘했어, 멋있어, 최고야 같은 유치한 말들을 듣기 위해. 앞으로도 김청호 대표가 그런 진부한 말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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