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을 보여주는 네 가지 얼굴

날 찾아와요

이지현|

다양한 문화가 섞이며 형성된 이태원은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 따라 동네의 얼굴이 달라진다.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몇몇 랜드마크를 기점으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늠한다.이 동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호텔, 담벼락을 따라 옹기가 한가득 쌓여 있는 가게 등 이태원을 탐방할 때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장소 네 곳을 꼽아보았다.




이태원의 첫 얼굴

해밀톤 호텔

이태원역에서 어느 출구로 나가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선 벽돌 외양의 건물, 해밀톤 호텔이다. 1973년에 개관한 이 호텔은 4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거대한 위용을 뽐내왔고, 사람들이 이태원역 삼거리를 ‘해밀톤 호텔 삼거리’라고 부를 만큼 강한 존재감을 지녀왔다. 이태원로가 동네를 길게 가로지르는 특성상 ‘해밀톤 호텔 쪽’ 혹은 ‘해밀톤 호텔 건너편’과 같은 방식으로 찾아갈 방향을 크게 구분 짓는 기점이다. 특히 호텔 뒤편으로 즐비한 클럽 이나 세계 음식점 을 방문할 때 적당한 약속 장소이기도 하다. 금요일이나 주말 저녁이면 한껏 멋을 부린 사람들이 호텔 앞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서 약속한 일행을 줄지어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리모델링이 끝난 쇼핑센터 외관이 기존의 고풍스러운 호텔 건물과 겉돌아 보이는 건 다소 아쉽지만, 이곳은 여전히 이 일대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다.






가장 이태원다운

이슬람 성원

우사단로를 따라 걷는 동안 화려하게만 보였던 이태원의 풍경이 점차 투박하고 소박해진다. 작은 집들이 빽빽이 맞붙어 있는 이곳은 이태원에서도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계를 필두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과 왕왕 마주친다. 길을 따라 할랄 레스토랑과 식료품 가게가 늘어서 있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에 뿌리내린 이슬람 문화의 중심에는 이슬람 성원이 있다. 산동네인 우사단로에서도 높은 언덕 지대에 1976년 문을 연 성원은 새하얀 외관과 파란 타일로 이루어진 아치형 대문부터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태원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한데 품으며 지금의 모습을 이뤘다는 점에서 어쩌면 가장 이태원다운, 혹은 이태원이기에 가능한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성원 바로 뒤편으로 게이힐과 후커힐이 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로운 대목이다.






경계의 지점

제일기획 본사

이태원로를 따라 한강진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삼거리에 우뚝 솟은 제일기획 본사가 보인다. 이곳은 이태원 권역과 바로 옆 한남동 권역의 경계 지점이다. 주변에 대사관이 모여 있는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반듯하게 구획되어 고급 주택이 많이 들어서 있다. 덕분에 길이 꼬불꼬불 복잡하게 뒤얽힌 이태원의 여타 지역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차 문제로 골치 아픈 이태원역 주변과 달리, 이 근방을 방문할 때는 맘 편히 자가용을 끌고 오는 경우가 많다. 제일기획 사옥 근방에 24시간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이 있는 데다 한남동 지역과 근접한 다수의 가게에서 발레파킹이 가능한 덕분이다. 지난해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포켓몬 고 Pokemon GO’에서는 일반적으로 조형물・미술품 등의 랜드마크가 아이템이 많이 나오는 포켓스톱으로 활용되곤 했는데, 당시 제일기획 본사가 포켓스톱 명당 중 한 곳으로 알려지며 수많은 방문객이 몰리기도 했다.






진짜 랜드마크

경리단과 한신옹기

경리단길의 경우 앞서 설명한 지역에 비해 규모가 크거나 특색 있는 건물이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다. 2012년 국군재정관리단으로 통합된 육군중앙경리단에서 길 이름이 유래되었지만, 많은 이가 경리단길은 알아도 길 초입에 자리한 경리단의 존재는 모른다. 어릴 때부터 직접 보아온 동네 주민들은 경리단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으나 그 장소를 특별히 랜드마크로 여기진 않는 듯했다. 오히려 한 청년 상인의 이름을 딴 장진우 거리가 회나무길이라는 본래 이름 대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새롭게 랜드마크의 기능을 하고 있다.

건너편 해방촌에서는 1959년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한신옹기가 동네만의 특별한 랜드마크가 되어주고 있다. 담벼락에 한가득 쌓인 옹기가 방문객들에게 이곳이 해방촌 초입임을 한눈에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1980년대에 군부대에서 기존 담벼락을 허물고 새롭게 담을 쌓자 이곳 사장이 가게 옆 남는 공간에옹기를 사다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옹기가 흔히 김장독으로 쓰여 미군들 사이에선 이곳이 ‘김치 박스 게이트’라 불린다고. 서울에서 “담벼락에 옹기 많이 쌓인 곳 가주세요”라고 하면 모든 택시 기사가 이곳으로 데려다줄 정도라니 그야말로 ‘진짜’ 랜드마크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이태원》 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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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