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콘텐츠 범람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

경험을 소비하는 공간의 시대

정창윤|

단순히 제품만 소비하던 시대가 가고 경험을 소비하는 시대가 왔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공간 기반 콘텐츠이다. 최근 이런 추세에 따라 여러 공간이 등장하거나 유명세를 얻고 있지만, 자세히 비교해봐도 눈에 띄는 차별점을 찾기 힘들다. 주로 인테리어나 플레이팅 등 시각적 요소에만 집중해 차별화를 꾀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각적 요소는 이용자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만큼 마음을 쉽게 사로잡는다. 하지만 트렌드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금세 경쟁에 밀릴 위험이 있다.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는 이른 나이부터 SNS를 통해 비주얼 콘텐츠를 접했기에 시각적 요소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그렇기 때문에 엇비슷한 이미지만으로는 이들의 방문을 유도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들은 핫하다고 소문난 공간이 멀리 있다면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찾아가지 않는다. 충분히 집과 일터 주변에서 차별화된 공간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소비자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지역이 있는 공간: 하이퍼 로컬

첫째, 하이퍼 로컬 Hyper-Local이 있다. ‘아주 좁은 범위의 특정 지역에 맞춘’이란 뜻으로 특정 지역, 동네 자체를 경험하고 소비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관광하듯 한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고유한 역사, 문화, 예술, 환경 등을 기반으로 지역색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최근 이러한 경향은 ‘여행’을 통해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 교토를 꼽을 수 있다. 왜 도쿄가 아니고 교 토일까? 도쿄는 콘텐츠가 풍부하지만, 크고 높은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도시 풍경’이 익숙한 이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그에 반해 교토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전통 문화를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이를 현대의 브랜드와 다양하게 결합시켜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2018년에는 애플스토어와 블루보틀이 교토에 문을 열었고, 2019 년에는 일본 최초로 에이스호텔이 진출하는 등 전세계 디벨로퍼들이 앞다투어 자리 잡고 있다. 교토시는 이들을 단순히 유치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색과 문화를 공간에 담아낼 수 있도록 일본 로컬 건축가와의 협업을 지원하거나 지역 가이드를 제안한다. 같은 브랜드라도 교토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욱 찾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애플스토어 교토점은 3층으로 구성된 공간으로 전통적인 요소가 곳곳에 배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본식 등불의 모습을 차용해 만든 외관이다. 일반적으로 상업 공간은 소비자들이 방문하는 매장 내부에 집중해 색깔을 담기 마련인데, 건물 외관 자체를 전통의 멋을 드러내는 요소로 활용한 것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주변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뿐만 아니라,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랜드마크를 만들어냈다.


위: 일본 전통 창호와 등불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교토 애플스토어 외관

아래: 교마치야 건물을 그대로 활용해 리노베이션한 블루보틀 교토점



블루보틀은 리노베이션 당시 100년이 넘는 교마치야(京町家) 건물의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기둥과 대들보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 덕분에 소비자들은 100년이 넘는 목조 건물을 보고 만질 수 있으며, 나아가 ‘고풍스럽고 옛스러운 분위기’를 현대 로스터리 브랜드의 커피와 함께 즐길 수 있다.


전통적 특색에 글로벌 브랜드가 녹아들면서 교토는 크리에이티 브한 이미지를 얻은 것은 물론 로컬과 글로벌이 교차하는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도 교토와 같이 분명한 지역색을 활용하는 곳이 늘어나야 한다. 성수동과 을지로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두 지역 의 공간들은 공장 건물을 유지하거나 재생해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지게 하여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큰 빌딩과 대형 상업 시설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강남과 명동이면 충분하다. 그 외 지역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지역 문화(하이퍼 로컬 문화 Hyper-Local Culture)를 끌어내고 그만의 색을 갖고 운영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과 지역 상업 시설, 관공서 등이 함께 방향을 계획하고 움직여야 한다. 여러 주체가 함께 가꿔낸 지역은 소비자의 발길을 끌 것이고, 이는 자연스레 로컬 매장의 제품 및 콘텐츠 소비로 이어질 것이다. 지역색을 통해 차별화를 꾀하는 ‘로컬 여행・관광 경쟁’ 시대가 왔다. 



나만이 있는 공간: 럭셔리 콘텐츠

두 번째 전략으로는 ‘럭셔리 콘텐츠’가 있다. 이때 ‘럭셔리’는 명품이나 고가 브랜드가 아니라, 온전히 이용객에게 집중한,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이러한 콘텐츠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두에서 언급했듯, 공간 기반 콘텐츠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 ‘다름’에 대한 경험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금세 경쟁에서 뒤처져 사라지는 공간과 콘텐츠가 허다하다. 심지어 집과 일터 근처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 생겨나면서 소비자들은 굳이 이동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기에 이제는 ‘더 섬세한 운영과 서비스’를 제공해 공간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호텔 등 고급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던 서비스를 벤치마킹해 대중화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코스메틱 브랜드 이솝 Aesop이 있다. 이솝은 고객을 일대일로 응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는 직원과 이야기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또한 모든 직원이 화장품, 뷰티, 피부 관리 등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어서 자세히 컨설팅을 받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렇듯 섬세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이솝은 직원 채용에도 공을 들인다. 단순히 판매를 위한 목적이라면 아르바이트 인력을 뽑으면 되지만, 고객 응대 경험과 뷰티 관련 전문 지식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솝의 서비스는 어떤 지점을 방문해도 동일하다. 이솝을 방문했던 사람들에게 어땠느냐고 물어보면 각자 가봤던 지점이 다르더라도 같은 서비스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마치 손꼽히는 레스토랑에서 일정한 퀄리티의 요리를 흐트러짐 없이 제공하는 모습과도 같다. 여기서 이솝이 각 지점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공간 운영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숙지시킨다는 점을 읽어낼 수 있다. 


또한 이솝은 다른 코스메틱 브랜드처럼 각 매장을 동일한 모양으로 꾸미지 않는다. 입점 지역 혹은 거리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지역의 특색을 잘 녹여낼 수 있는 로컬 인테리어 혹은 건축 회사와 협업해 공간 디자인을 진행한다. 이후 디자인이 완료될 즈음 본사의 디렉터가 직접 방문해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지역색을 포함하고 있는지 등을 하나하나 꼼꼼히 검토한 후 매장을 오픈한다.


위: 일본 나카메구로 지점 외관

아래: 영국 런던 소호 지점 외관
이솝은 각 매장을 입점한 지역의 풍경에 녹아들도록 디자인한다



이솝은 최근 한남동에 국내 최초 ‘페이셜 어포인트먼트’를 오픈 했다. 자사의 제품을 활용한 피부 관리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 국가 중 호주, 독일, 한국 등 아홉 개 나라에서 진행하며, 해당 국가에서도 선별된 매장에서만 시행한다. 트리트먼트 종류는 총 여섯 가지로 나뉘며 고객과 일대일 상담을 진행한 뒤 가장 적합한 것을 결정한다. 공간의 음악과 향, 조도, 디자인까지 섬세하게 구성해 감정적인 부분까지 관리받을 수 있도록 했다. 매장에서 일대일 응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브랜드를 더 개인적인 측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이솝뿐만 아니라 록시땅, 러쉬 등 다른 코스메틱 브랜드도 스파 및 트리트먼트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고객의 감정과 매장의 섬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이해력과 경험, 지식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이러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챙길 수 있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 ‘어떤 사람’을 채용할 것인지, 채용 후에는 담당자가 어떻게 공간을 운영하고 고객을 대할 것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앞으로의 공간과 지속가능성 

누구나 공간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까다로워지는 소비자의 눈높이와 앞서 언급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거리, 동네, 도시를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요즘 소비자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이끌리는지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주력하는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고객을 응대하는 능력 또한 높아야 한다. 공간이 입점할 동네를 까다롭게 선정하고, 고객의 행동과 경험을 치밀하게 설계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도시 01: 로컬전성시대》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자세히 보기

에디터

정창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