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 발견한 서점업의 본질

동아서점

강필호|

출판업, 서점업의 위기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인당 평균 독서량은 매년 최저점을 경신하고 있고, 유수의 서점과 유통사가 도산하며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독립 출판, 책방 문화는 서점업의 새로운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 홍대, 해방촌 일대에 정착해 지역 활성화를 이끌기도 했다. 유행의 숨 가쁜 오르내림과는 거리가 먼 지방 도시 속초에 있는 동아서점은 얼핏 보기에 이런 흐름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오늘도 이 서점을 찾는 젊은 여행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동해안 소도시에 있는 서점은 어떤 매력으로 밀레니얼의 취향을 사로잡은 것일까? 부친과 함께 서점을 운영하는 김영건 매니저는 담백하면서도 꾸밈없는 문장으로 속초와 서점업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김영건 매니저


2015년, 60년 동안 운영하던 서점을 이전 오픈했다. 리뉴얼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약 10년 동안 동아서점은 침체기를 겪었다. 당시 우리 서점은 허름하면서도 손님이 없는 전형적인 낡은 책방이었다. 아버지의 권유를 받고 서점을 돕기 위해 속초로 돌아왔을 때, 생계 유지를 위해 운영하던 서점이 역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운영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도 서점을 포기할 수는 없어 리뉴얼했다. 당시에는 하루 열 명에서 스무 명 정도 꾸준하게 손님이 드나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리뉴얼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미디어에서는 새로 단장한 서점의 인테리어나 공간적인 특성에 주목했다. 그러나 사실 인테리어는 리뉴얼의 핵심이 아니다. 인테리어는 유행을 탈 수밖에 없고, 예쁜 공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만 간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주목한 것은 책 그 자체였다. 보통 지역에 있는 소형, 중형 서점은 도매상을 통해 자동으로 배본받은 책을 매대에 올리는데, 이는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간을 소화해내기 위해 부득이하게 택하는 일반적인 유통 방식이다. 리뉴얼 과정에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바로 그런 납품 시스템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자동 배본을 받지 않는 대신 서점에 들어오는 모든 책을 전부 직접 주문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공간 안에는 3만여 권의 책이 있는데 분야별로 직접 선별해 들여놓았고 지금도 그렇게 책을 주문한다.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손님 중에서는 책이 모두 적절한 위치에 꽂혀 있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있다. 아마도 배본받은 책을 일반적인 서적 분류대로 진열한 서점에 비해 각각의 책이 눈에 잘 들어온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리뉴얼 과정에서 의도했던 것은 물론이고, 방문객에게 좋은 책을 엄선해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벽면 서가에는 주로 구색을 갖추기 위한 서적이 있고, 중앙부 잘 보이는 곳에는 우리만의 시선이나 기획을 담아 소개하는 책이 있다. 요즘은 작은 서점들이 시중의 모든 책을 소화하기보다 장르, 작가 등을 기준으로 책을 선별해 생존을 모색하지 않나. 우리 서점의 고유한 배치 방식이나 큐레이션 역시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매력적인 주제와 책 선정이 돋보이는 동아서점의 큐레이션 서가


미디어에서는 대체로 ‘3대’란 키워드를 강조한다. 실제로 리뉴얼 과정에서 전승된 운영 노하우가 있다면?

아버지의 모습을 곁에서 보며 깨달은 것이 있는데, 서점을 운영하는 것 역시 본질적으로는 자영업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덕목이다. 그런 덕목을 중시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매일 매장을 깨끗이 관리한다는 원칙을 지켜오셨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청소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점업이 겉보기에는 낭만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다. 60대 후반인 아버지는 지금도 책이 50권가량 든 상자를 들고, 풀고, 묶는 일을 직접 한다. 책을 예쁘게 진열하고 판매하는 겉모습의 이면에 그런 고충이 있다는 점 역시 어렸을 때부터 서점을 드나들며 직간접적으로 배웠다.


최근 출판 시장은 여러 의미에서 주목받고 있다. 신간의 숫자가 날로 늘어나는 반면, 1인당 도서 구매량은 정체와 감소를 반복한다. 그리고 대형 서점, 총판을 통한 유통 시스템이 그대로 남아 있는 와중에, 일부 소비자는 독립 출판물, 장르 책방 등 새로운 콘텐츠와 유통 방식에 매력을 느낀다.

서적 소비 형태가 변화하고 있지만,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큰 흐름은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예를 들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드는 책이 다양해졌다고 해도 기획 구성과 내용상 큰 변화는 없다. 물론 1인 출판과 같은 대안적인 제작, 마케팅 방식을 활용한 베스트셀러가 등장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언어의 온도』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그조차도 마음에 위로를 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라는 점에서 기존 소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서점업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개 서점의 입장에서 거창한 주제를 논하는 것이 쉽진 않다. 나는 서점이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명확히 전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간혹 서점을 문화 공간으로 정의하거나, 공익적인 취지로 서점을 열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것이 과연 건강한 지향점인지 의구심이 든다. 일반적으로 서점을 운영한다면 책을 판매해서 그 수익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만약 목표를 생계 유지가 아닌 다른 가치에 둔다면, 결국 그 서점은 서적 판매를 부가적인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이는 서점업에 임하는 자세와도 연결되는 문제라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가게의 입장에서는 그런 자세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어떤 슬로건을 가지고 무엇을 표방하든, 상점이 운영하는 사람의 생계 수단일 때 가장 건강한 형태를 취한다고 본다.


지역 서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지방을 여행하는 젊은 여행자들이 서점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서점을 맡은 지 1~2년 정도 되었을 때도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여행 중에 들르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모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여행지에서 구매한 책은 무거운 짐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도 여행 중에는 그런 불편함 때문에 되도록 책을 사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도 여행을 와서 서점을 방문한다는 것은 속초에 그만큼 갈 곳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속초를 방문하는 젊은 여행객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대부분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사진 촬영 명소를 방문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런 뒤에 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마땅히 즐길 만한 콘텐츠가 없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서점이 주목받게 됐다고 생각한다.



동아서점과 마찬가지로 대를 이어 운영하는 칠성조선소


최근 속초에서 주목받는 공간인 칠성조선소, 문우당서림, 동아서점 등은 대를 이어 운영하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속초에 유독 이와 같은 사례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에서 언급된 현상은 관광 도시라는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삼척, 동해, 속초 등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그 지역을 떠나는 것을 일반적인 인생 경로로 여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사는 것을 소위 ‘출세’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적한 어촌이었던 속초가 관광지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지역 내에서도 무언가 해볼 기회가 늘어난 느낌이다. 수도권과 왕래가 잦아진 것은 물론이고 물리적인 거리도 가까운 편이어서, 최근에는 대도시와 문화적, 산업적으로 다양하게 연계되고 있다. 그 결과 속초 출신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합리적인 선택지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주민이자 지역 서점의 운영자로서 관광 도시 속초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쉬운 점이 먼저 떠오르는데, 세간의 관심에 비해 도시를 채우고 있는 콘텐츠가 알차지 못한 것 같다. 20여 년 전, 큰불로 전소된 속초중앙시장을 관광형 시장인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새롭게 꾸민 것을 계기 삼아 속초는 관광 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또한 같은 시기에 만석닭강정과 같은 먹거리가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면서 속초를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 잡았으나, 그 기반은 굉장히 빈약한 편이다. 먹거리 한두 개 정도를 콘텐츠로 삼았다고 할 수 있는데, 잘 되는 닭강정 가게 주변으로 닭강정 가게가 여럿 생기고, 유명한 순댓집 주변으로 순대를 파는 식당만 여럿 생기는 식이다.

터미널에서 수산시장을 거쳐 동아서점까지 이어지는 길을 살펴보면, 속초 중심가에 있는 가게들은 대체로 관광객의 기호에 맞춰 운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관광 친화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속초다운 무언가가 보이지 않아 토대 없이 붕 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속초다운 것은 무엇일까? 속초는 한국전쟁 당시 수복된 지역이고, 실향민이 모여 살던 마을이 도시로 성장한 경우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주변 해역에서 명태가 많이 잡혀 전국에서 뱃사람이 모여들었고,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어촌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즉, 속초는 비슷한 인지도를 지닌 다른 도시에 비해 역사가 깊지 않을뿐더러 규모가 작은 편이라 고유한 콘텐츠가 부족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속초가 주목받고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 지역만의 특색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저 한순간 반짝하고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 도시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최근 속초에 내려와서 작은 카페를 창업한 사장님과 종종 이야기를 나누는데, 원래는 서울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분이다. 이주를 고민하며 공간을 보러 다닐 때, 속초 중심가의 상가 임대료가 굉장히 저렴해서 손쉽게 이주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임대료 차이는 지방 도시에서 창업할 때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반면 도시 인프라가 하향 평준화돼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둬야 할 단점이다. 여기서 인프라란 물리적인 시설뿐만 아니라 제도와 같은 무형적인 시스템,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까지 아우른다. 이를테면 속초에 내려와 서점 운영을 시작할 무렵 도서 기획전을 준비했는데, 당시만 해도 속초 시민 대다수가 도서 기획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이처럼 수도권 및 대도시에서는 익숙한 사업 아이템이나 문화가 지방 도시에서도 보편적일 것으로 생각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Interviewee 김영건

1987년에 속초에서 태어났다. 2015년부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속초에서 동아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2017년에 책 『당신에게 말을 건다』를 썼고, 2018년에 책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공저)를 썼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도시 01: 로컬전성시대》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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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강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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