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컬리

우리는 로컬숍을 연구한다

소혜정|

어린 시절 지방에 살던 나는 9시 뉴스가 방송되는 도중에 앵커와 스튜디오 배경이 바뀌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KBS 뉴스, MBC 뉴스로 시작한 프로그램이 9시 30분쯤 전주 KBS, 전주 MBC 스튜디오로 넘어간 것이다. 전주 지역국 방송에서는 우리 지역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 등을 조명했다. 그것이 지역 방송이라는 사실은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로컬 미디어는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고 해당 지역 사회의 소식을 다뤄 그에 대한 이해를 돕는 매체를 지칭한다. 엄밀히 말해 《브로드컬리》는 로컬 미디어가 아니다. 다만 매호 특정 지역을 설정해 취재 영역을 한정하고, 그곳의 로컬숍을 가감없이 담아 소개하는 매체다. 그렇다면 로컬숍이란 무엇인가? 직역하자면 동네 가게, 1차원적으로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아닌 가게를 의미한다. 나아가 부동산 재산으로서 공간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가게를 연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개인이 기획하고 일궈나가는 가게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의미의 로컬숍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지역의 고유한 색을 만드는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역을 개성 있게 만들어주는 매력적인 공간을 조명하되, 단순히 예쁘고 작은 가게의 낭만을 벗어나 상업 공간이자 삶의 터전인 가게의 솔직한 민낯을 보여주고자 한다. 



브로드컬리는 로컬숍의 명암을 모두 담는다
ⓒ 어반플레이


취재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로컬숍이 공통적으로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먼저 대다수의 가게는 임대차 관계에서 약자에 놓여 생존을 보호받지 못한다. 가게의 개성과 매력으로 해당 지역이 주목받으면 재계약 시점에는 가게가 존폐의 위협에 놓일 만큼 월세가 오르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4호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구었는가?》에서 취재한 ‘카페 그곶’은 취재 시점인 2017년 7월에 계약 만료를 여섯 달 앞두고 있었는데, 우리가 발행을 마친 2018년 2월에는 이미 자리를 옮긴 뒤였다. 건물 주인과의 재계약 협상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었다.


다음으로 이들은 영세한 규모로 인해 산업・업종 내에서 ‘숍’으로 생존하기 어렵다. 우리가 취재한 소형 서점 중 대다수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출판사 및 총판(도매상)에서 대형 서점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거나 심지어는 계약을 거절당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이는 책을 공급받는 원가 차이를 의미하기 때문에 대형 서점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격 할인이나 적립금 등의 혜택을 소형 서점은 줄 수 없게 된다. 심지어 책은 재화 자체를 차별화할 수 없으므로 로컬 서점의 상업적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언론과 소비자의 접근 방식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다. 로컬숍은 공간의 이미지만 소비될 뿐,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은 공간의 ‘그림’만 찍어 간 다음, 낭만적인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 그 안에 로컬숍을 끼워 넣고, 실제 운영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다. 이러한 매체를 접한 소비자는 로컬숍을 유사 관광지로 여기고, 상업적 대가를 치르는 데 인색해지기 쉽다. 결과적으로 방문객이 사진만 찍고 떠나거나 소형 서점 서가에서 애써 큐레이션한 책을 촬영한 뒤 주문은 인터넷 서점으로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가 취재한 로컬숍이 겪는 어려움에는 공통분모가 있으나 해결책은 제각각이다. 이를 주로 다룬 3호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에서는 책을 판매하는 것 외에 매출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례를 다뤘다. 카페나 술집을 겸하는 서점, 상담제로 운영하는 서점 등이다. 자신만의 특기를 내세워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도서 판매 수익으로는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근원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사실상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의 인터뷰이로 참여한 초원서점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현재는 폐업했다
ⓒ 어반플레이




물론 우리가 취재한 이야기에 어려움만 담긴 것은 아니었다. 공간을 꾸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일궈가는 사람들의 기쁨이나 만족감도 존재했다. 경제적 성과보다 다른 가치를 우선시하고, 자신이 꾸려가는 삶에 대한 자부심이 담긴 단단한 철학도 엿볼 수 있었다. 때로는 직장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이 전해지기도 했다. 또, 업계 전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언론이나 소비자의 피상적인 접근마저도 관심의 시작으로 반기는 대답도 있다. 우리는 생계형 창업이 기회형 창업을 압도하는 시대에 창업의 고통을 보여주려는 것도, 소비자를 계몽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흔하게 이야기되는 낭만이 로컬숍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이 로컬숍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실질적으로 우리 책을 읽고 로컬숍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하게 돼 창업 결심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도 있다.




책바를 연 정인성 대표는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의 
인터뷰이로,  창업의 현실을  말한다. 
ⓒ 이지현



공간이란 점점 거점화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거점의 영향권 안에 있는지의 여부가 공간의 가치를 만든다. SSG배송이나 로켓배송이 가능한 지역인지, 실패 없는 소비를 제공하는 유명 프랜차이즈 지점이 주변에 있는지가 월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는 편리함과 쾌적함의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매일 다니는 공간과 골목을 더욱더 다채롭게 만드는 가게에는 그와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과 고유의 정서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노동을 통해 생활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로컬숍이 더욱 브로드 Broad하게 흔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브로드컬리》는 로컬숍을 이야기한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도시 01: 로컬전성시대》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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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소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