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이웃이 행복한 가게를 위해

스티키리키 아이스크림

조윤|


스티키리키 아이스크림 외관


후암동 주민들에게 단골 가게를 물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있다. 푸른 간판 아래,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온 주인장이 서툰 듯 유창한 한국어로 반겨주는 곳. 테이블이라곤 단 두 개뿐이지만, 오가는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곳. 바로 미국식 아이스크림을 파는 ‘스티키리키 아이스크림(Sticky Ricky’s Ice Cream)’이다.

2년 전, 제이슨 씨와 은희 씨 부부는 갈월동과 후암동 사이 어느 골목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었다. 처음 도전하는 자영업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들은 서두르는 법 없이 나름의 속도로 동네와의 관계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시작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는 어느덧 골목을 따스하게 채우고 있다.



제이슨 씨와 은희 씨 부부


팝업 스토어로 시작해 정식으로 가게를 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대학을 다니며 용돈 벌이를 위해 아이스크림 트럭을 몰았을 정도로 남편의 아이스크림 사랑은 남달랐다. 이후 학교를 졸업한 남편은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나를 만나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즐겨 먹던 미국식 아이스크림을 국내에서는 접할 수 없어 무척 그리워하더라. 그래서 가정용 기계를 사다가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들어본 것이 스티키리키 아이스크림의 시작이었다.

물론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래도 거듭해서 만들다 보니 점점 맛이 좋아졌고, 아이스크림을 맛본 친구들의 반응도 좋았다. 긍정적인 피드백에 용기를 얻어 자연스레 가게를 열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맛과 품질에 대한 확신 없이 가게를 열고 싶진 않아서, 우선 친구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 아이스크림을 판매해보기로 했다. 수제 맥주 전문점과 카페 등에서 여러 차례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한정된 기간 동안 판매하고 정리하는데도 매번 방문해주는 단골이 생기더라. 이에 자신감을 얻어 가게를 열겠노라 결심할 수 있었다.



스티키리키 아이스크림 내부


부부가 함께 가게를 운영 중인데, 결혼 생활과 함께 시작한 가게라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그렇다. 이 가게는 결혼식을 대신하여 연 것이기에 단순한 영업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은 삶을 함께 보내기로 약속해 두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관계를 공식화하는 것이 불필요한 절차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때까지 모아둔 돈을 결혼식이 아닌 둘만의 프로젝트를 위해 쓰기로 했다. 이렇게 말하니 무척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적은 금액으로 가게를 시작하다 보니 당시엔 불안한 마음이 무척 컸다.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처음엔 둘 다 원래 하던 일을 병행하며 일주일에 4일만 문을 열었다.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이후로 남편은 온전히 아이스크림 만드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본업을 이어가면서 가게 운영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들을 돕고 있다. 주로 물건 주문이나 비용 처리 등 행정적인 부분과 인테리어, 굿즈 기획 등을 담당한다.



매일 아침 만들어내는 스티키리키 아이스크림


새우깡 맛, 피자 맛 등 다른 곳에서는 접할 수 없는 맛을 개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남편과 함께 시장에 가서 재료를 둘러보고, 새로운 조합을 고민한다. 매일 메뉴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그 와중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것은 고추장 초콜릿 아이스크림이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멕시칸 칠리 초콜릿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탄생한 ‘단맵단맵’ 메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여름 시즌 메뉴였던 ‘썸머 앳더 무비 씨어터’다. 남편이 학창시절 밤늦게까지 영화를 보던 추억을 담은 아이스크림으로, 영화관을 떠올릴 수 있도록 버터 팝콘 맛을 베이스로 하고, 캔디를 넣어서 알록달록한 색을 냈다. 이처럼 새로운 맛을 개발할 때에는 단순히 계절에 맞는 메뉴를 내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지닌 소중한 기억을 맛으로 구현해내려 한다.


간판과 로고부터 인테리어까지, 파란색이 포인트가 되는 디자인이 돋보인다. 디자인 과정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나.

가게를 열면서 로고를 디자인했는데, 필라델피아 근교 동부 해안가에 위치한 휴양지인 케이프 메이를 여행했던 기억을 담고 싶었다. 그 해안가 동네에서 본 햇살과 하늘, 바다의 색깔을 담아 연노랑색과 하늘색, 짙은 파란색을 골랐고, 이를 바탕으로 간판, 로고, 인테리어 등을 작업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온 손님들이 종종 미국 휴양지의 보드 워크 느낌이 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뜻이 잘 전달된 것 같다.



스티키리키 굿즈


그 밖에도 연필과 에코백, 티셔츠 등 다양한 굿즈를 제작한 덕분에 평범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 각인되는 듯하다. 브랜딩에 큰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아이스크림은 녹으면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나. 그래서 우리의 아이스크림과 잘 어울리는 굿즈를 만들어 공유하면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의류와 문구류 등 다양한 제품을 제작했다. 누군가 스티키리키 로고가 새겨진 가방이나 스티커 등을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과는 또 다른 기쁨을 느낀다. 지금까지 마케팅 관련 일을 하며 다양한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는 작업을 해왔기에, 우리만의 브랜드를 드러내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던 것 같다.


겨울방학이 있다는 점도 특별하다. 아이스크림 가게임을 고려해도 한 달간 장사를 쉰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사실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에는 매출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배달 서비스 등과 같은 대책을 마련해볼 수도 있지만, 결국 이 일도 즐겁기 위해 하는 것인데 겨울까지 힘들게 운영하는 것보다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이 여러모로 낫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겨울방학 동안 무작정 쉬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가게를 재정비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 한다. 첫 방학에는 펜실베이니아의 아이스크림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물론 우리도 자영업자이니 한 달 새 잊힐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도 있다. 그런데도 변함없이 찾아 주시는 분들이 있어 두 배로 감사한 마음이다.



스티키리키 앞 골목


일본식 고택이 늘어선 골목에 자리 잡았다. 이 위치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4년 전, 가게에서 10분 거리인 용산동2가로 이사했는데, 인근의 후암동을 산책하다 보니 적산가옥을 비롯한 풍경과 분위기가 흥미롭더라. 그래서 만약 우리가 가게를 운영한다면 꼭 이 동네에 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가게 자리를 알아볼 때 마침 이곳에 6평 남짓한 창고 매물이 나왔길래 서둘러 계약해버렸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된 골목에 사람이 많이 올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이 무척 큰 행운이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인근의 숙명여대 학생들에게 입소문이 났는지 평일 점심이나 강의 끝나는 오후 무렵에 여대생들이 많이 온다. 또, 숙대입구역에서 후암동 내부로 들어가려면 이 길을 거쳐 가야 하는지라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참새 방앗간 들르듯이 오곤 한다. 물론 외국인 손님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술집이나 카페처럼 특정 연령대의 손님이 주로 오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우리 부부가 처음 가게를 열 당시 꿈꿨던 모습이기에 정말 기쁘다.




주변 가게나 소상공인과도 교류가 있나.

가게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주변 분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인테리어를 전문 에이전시에 맡기지 않고 우리가 직접 했는데,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되도록 동네 분들에게 맡기려 했다. 그 결과 목공 작업부터 페인트칠, 전기 증설 작업까지 모두 이웃 가게 사장님이나 기술자분들의 손길로 이뤄졌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우유와 크림은 가게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서울우유 대리점에서, 나머지 재료들은 후암시장에서 구매한다. 상권을 변화시킬 만큼 큰 가게는 아니지만, 동네 안에서 소소하게나마 돌고 도는 선순환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운영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런 방식은 시골에서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소상공인분들과 관계를 쌓다 보니 자연스레 순환 구조가 생기더라. 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그 밖에도 근처에 있는 카페 아나키 브로스, 소월길 밀영의 사장님들과도 서로 왕래하며 가깝게 지낸다. 또, 이 동네의 외국인 커뮤니티가 워낙 좁다 보니 근처에서 가게를 하는 외국인 사장님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서울에서 동네 친구를 갖기가 쉽지 않음에도 이렇게 친한 이웃이 많다는 것이 정말 든든하다.




장사하고 거주하며 느낀 후암동의 매력은 무엇인가.

여전히 이웃의 개념이 살아있는 동네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사실 아무리 자주 방문하는 가게라도 가게 주인장에게까지 관심을 두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후암동에서는 단순히 가게 주인과 손님의 관계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존재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근처에 사는 분들이 과일이나 책을 선물해주시기도 하고, 빵이나 과자를 구워서 나눠 주시곤 한다. 얼마 전 새로운 아이스크림 기계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좋지 않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소식을 접한 손님들과 이웃분들이 오가며 응원과 위로의 말을 전해주시기도 했다. 주고받는 안부 인사나 작은 선물들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앞으로 남편과 아이를 낳게 된다면 꼭 이 동네에서 키우고 싶다. 삼광초등학교를 볼 때마다 미래의 우리 아이가 다닐 학교라고 농담을 할 정도다. 이 동네가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이곳에 머물고 싶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조윤

yjo@urbanpl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