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인천 1》 미리보기 #1

신포동 바이브

이지현|

레트로 콘셉트가 유행이라지만, 오리지널 ‘빈티지(vintage)’에는 비견될 수 없다. 오래될수록 가치 있는 것이 지닌 고유의 분위기는 함부로 흉내를 낼 수도, 새로이 만들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인천 최고의 중심가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신포동. 인천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한 번쯤 그 이름은 들어봤을 이 동네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몇몇 가게가 성업 중이다. 왕년의 영광이 세월 앞에 빛바랜 지금까지도, 터줏대감 가게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과 소통하며 변함없이 사랑받아왔다. 그 비결은 켜켜이 쌓인 세월 속에서 숙성된, 빈티지한 맛에 있다.




SINCE 1926

애관극장


1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애관극장은 인천의 대표 극장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1895년에 설립된 ‘협률사(協律舍)’라는 상설 연극 공연장이 전신이며, 1926년 지금의 이름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애관극장은 당시 동인천 상권의 중심이었고, 이 일대는 ‘시네마 거리’라 불릴 정도로 영화 산업이 흥했다. 숱한 영화관 중에서 지금까지 운영을 계속해온 곳은 애관극장이 유일하다. 오늘날에는 리모델링을 거쳐 신식 시스템과 깔끔한 내・외관을 갖췄다. 그럼에도 오래전 유행했을 법한 인테리어는 여전해, 마치 과거로 시간을 되돌린 듯한 느낌이 든다. 본래 단관극장이었으나 신관 증축 후 현재 다섯 개의 상영관으로 이뤄져 있다. 물론 시설 면에서 최신식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따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성인 입장료가 7,000원이고, 조조 관람 입장료는 무려 4,000원이다.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 앞에서 그저 감사한 마음만 들 뿐이다. 신관으로 이어지는 통로 쪽에는 ‘버블보블(일명 보글보글)’, ‘철권’ 등 고전 게임을 갖춘 소규모 게임 존이 마련돼 있다.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동안 단돈 300원으로 옛 실력을 발휘하며 추억의 게임까지 즐길 수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100년 가까이 품어준 영화관은 오늘날 누군가에게는 진한 향수를, 누군가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곳이 자본의 압력에도 굳세게 버텨 오래도록 운영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애관극장은 고급 영화관으로 여겨졌다. 처음 애관극장에서 영화를 본 건 중학생 때였다. 단체 관람으로 <007> 시리즈를 보러 갔는데, 커다란 스크린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지정 좌석제가 아니다 보니 앞서 상영된 영화가 끝나기 5분 전쯤 좋은 자리를 맡으려는 사람들이 출입구로 슬금슬금 들어왔다. 결국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나가려는 사람들과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뒤섞이곤 했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장소이고 나 역시 이곳에서 수많은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는데, 정작 애관극장의 역사는 제대로 다룬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공간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애관(愛觀)-보는 것을 사랑한다>를 만들게 됐다.”

- 다큐멘터리 감독 윤기형





SINCE 1985

신포국제시장의 원조신포닭강정


신포국제시장의 대표 스타는 누가 뭐래도 ‘닭강정’이다. 일반 닭강정과 달리 뼈가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바삭하게 튀긴 닭고기를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특제 양념, 땅콩 가루, 청양고추를 넣은 후 가볍게 볶는데, 고추장 대신 고추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양념이 텁텁하지 않다. 대로변으로 통하는 시장 입구 쪽에 닭강정 가게 여럿이 몰려 있고, 그중 양대 산맥이라 할 만한 가게 두 곳이 골목을 사이에 둔 채 마주 보고 있다. 파란색 간판에 1대 사장님의 사진을 커다랗게 넣은 쪽이 원조신포닭강정으로, ‘원조’라는 타이틀 덕분인지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쏠리는 모양새다. 맞은편의 신포찬누리닭강정은 다수의 동인천 토박이가 추천하는 집이다. 관광객의 대기열이 원조신포닭강정에 비해 덜한 것도 장점이겠으나, 맛에서도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는 듯하다. 원조신포닭강정은 처음에는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고 청양고추의 얼얼함이 코와 입으로 서서히 전해진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법한 대중적인 맛이다. 다만 물엿 맛이 진한 편이라 끝까지 먹다 보면 조금 물리는 감이 있다. 그에 비해 신포찬누리닭강정은 매콤한 맛이 강하다. 입가가 은근히 얼얼해질 정도인데 뒤돌아서면 또 생각난다. 각 가게마다 특징이 다르니 취향에 따라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두 가게 모두 홀이 마련돼 있으므로 갓 튀겨낸 닭강정을 즉석에서 먹고 가는 것도 좋다.


“‘소울 푸드’라고 말하면 거창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신포국제시장의 닭강정을 즐겨 먹는다. 지인이 놀러 오면 꼭 맛보게 해주고 싶은 음식이기도 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간만에 인천 본가를 찾을 때면 늘 한 마리 포장해 먹곤 한다. 두 가게 모두 맛있지만, 대기열이 짧아 ‘찬누리’를 다니게 됐는데 입맛에 잘 맞아서 그 후로는 쭉 이곳을 찾는다.”

- 인천 연수구 토박이, 신포찬누리닭강정의 지조 있는 단골 고모 씨





SINCE 1988

맷돌칼국수


신포국제시장 인근의 미로 같은 골목에 들어서면 정겨운 벽화가 눈길을 끈다. 맷돌을 돌리고 요리를 준비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그려진 낡은 단층 건물, 그곳에 독특한 칼국수로 유명한 맷돌칼국수가 있다. 한때 ‘신포동 칼국수 골목’이라 불리며 손님으로 북적였던 골목에는, 1983년에 튀김칼국수를 처음 선보여 ‘원조집’으로 알려진 골목집칼국수와 이 근방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맷돌칼국수만 남아 영업 중이다. 원조로 꼽히는 가게가 가장 주목받기 마련이지만, 맷돌칼국수는 빈티지한 외관으로 SNS에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세월에 따라 여러 번 고쳐 쓴 흔적이 남아 있는 차림표마저 친근하다. 가장 비싼 메뉴가 6,000원에 불과할 정도로 부담 없는 가격 역시 꾸준한 인기에 한몫한다. 매콤한 국물떡볶이, 채소를 듬뿍 넣은 쫄면 등 추억의 메뉴가 총집합했다. 그중에서도 테이블마다 빠짐없이 주문하는 것은 당연히 칼국수. 칼국수 위에 수북하게 올린 튀김 고명이 매콤하고 고소한 맛을 자아낸다. 신포국제시장의 닭강정 가게에서 받아온 튀김 부스러기를 활용한다고 하니 ‘윈윈’인 격. 멸치와 채소로 우려낸 감칠맛 나는 육수, 고명으로 얹은 튀김 부스러기, 그릇 바닥에 깔린 칼칼한 특제 양념장까지 더해진 국물 맛이 자못 흥미롭다. 호기심에 방문한 관광객은 물론이고, 오래된 단골들이 참새가 방앗간에 드나들 듯 부지런히 이곳을 찾는다. 긴 세월에도 변치 않는 맛으로 곁을 지켜준 칼국수 한 그릇 덕에, 인천 시민들의 추억은 오래도록 선명하다.


“추억의 맛이 그리울 때면 찾게 되는 음식. 중년 방문객들도 오래전 추억을 곱씹기 위해 자주 방문한다. 신포동 칼국수 골목에 유일하게 남은 두 가게를 구경할 겸 찾는 것이다. 1년 전 우연히 맷돌칼국수 맞은편에 가게를 열게 됐는데, 고등학생 때까지 자주 오가던 동네와 골목은 변함이 없어서 더욱 반갑다.” 

- 카페 맑음 오맑음 대표





SINCE 1972

대전집


오래된 술병들이 진열된 입구, 편안하게 흐트러진 공기. 47년째 운영 중인 대전집은 술꾼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푸근한 분위기의 노포다. 혹자는 다복집, 신포주점과 함께 인천을 대표하는 노포로 꼽기도 한다. 대전 출신의 1대 사장님이 운영하던 식당을 아들인 2대 사장님이 이어받았다. 이 집의 주력 메뉴는 소의 힘줄을 넣고 팔팔 끓인 스지탕. 노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박찬일 셰프는 저서 『노포의 장사법』에서 대전집의 스지탕을 두고 ‘옛 인천의 영화를 추억하는 맛’이라 설명했다. 한때 이곳이 지역 문화예술인의 거점이자 아지트였기 때문이다. 스지탕의 첫인상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구수하고 칼칼한 국물은 언제 낯설었냐는 듯 입에 착 붙는 데다 짭짤해 술안주로 제격이다. 적당히 말캉하면서 쫄깃한 소 힘줄, 포슬포슬한 감자, 쫀득한 밀떡 등을 골라 먹는 즐거움도 있다. 주문 즉시 뜨끈하게 지져 내는 모둠전도 반드시 먹어야 하는데, 두부 사이에 완자를 패티처럼 넣은 두부전의 외양과 식감이 재미있다. 주문 응대를 위해 홀 내부를 부지런히 오가는 사장님은 손님들에게 “너무 맛있어도 먹다가 기절하면 안 된다”라는 농담을 심심찮게 건넨다. 한창 먹는 와중에 “아직 기절 안 했네?”라고 장난스레 묻는다면, “너무 맛있어서 기절했다가 좀 전에 깨어나 다시 먹는 중이다”라고 능구렁이처럼 받아치자. 원래 알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나누는 대화도 이곳의 문지방을 자꾸만 드나들게 만드는 매력이다.


“인천 구월동이나 부평에도 술집은 많지만, 대전집처럼 수십 년의 연륜이 제대로 느껴지는 곳은 드물다. 이곳만의 느낌이 좋아 자주 찾는다. 스지탕이란 메뉴마저 독특해 이를 먹으려면 오직 대전집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길 정도다. 신포동에 지인이 많은데, 인근의 직장인 친구들끼리 퇴근 시간에 맞춰 자연스레 모여드는 푸근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곳이다.”

- 김포 출신 8년 차 직장인, 대전집 전도사 이모 씨





SINCE 1983

버텀라인


늦은 밤, 불 켜진 건물 밖으로 재즈 사운드가 그윽하게 흘러나온다. 인천에서 제일 오래된 재즈 클럽 버텀라인(BOTTOMLINE)은 1976년 올댓재즈(ALL THAT JAZZ)와 1978년 야누스(JANUS, 지금의 ‘디바 야누스’)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문을 열었으며, 그중 유일하게 처음 개업한 자리에서 변함없이 운영 중이다. 1983년 고전양행(후루다양행)이라는 고급 양품점이 있던 건물에서 문을 연 이후, 100년이 넘은 목조주택 원형을 보존한 채 적절히 개・보수해왔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실내 공간에는 예스러운 골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연주를 위해 세팅한 악기들과 바(bar) 쪽 벽면을 가득 채운 LP판이 빈티지한 공간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일본식 목조 건물 특유의 높은 천장, 볏짚과 진흙을 섞어 두툼하게 채운 벽 덕분에 악기 소리가 벽에 튕기지 않아 연주음의 울림이 남다르다. 콘크리트 벽으로 두른 공연장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소리다. 버텀라인에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재즈 공연이 펼쳐지는데, 기획 공연을 포함해 1년에 100회 이상 재즈 콘서트가 열린다. 이곳에서 공연하고 싶어 하는 해외 뮤지션의 연락도 끊이지 않는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이 한데 어울려 재즈 무대를 즐기는 모습은 뉴욕이나 유럽의 유서 깊은 공연장을 연상케 한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버텀라인을 찾았던 허정선 대표는 이 공간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단골을 자처하던 시절을 거쳐 1994년부터 4대 주인이 됐다. 허 대표가 수십 년간 애정으로 가꾼 재즈 클럽은 오늘도 묵묵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간다.


“생각나는 일이야 너무 많다. 수많은 뮤지션 그리고 손님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이 공간이 만들어졌으니까. 굳이 하나를 꼽자면 한 부녀가 이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일이 있었다. 단골인 아버님이 친구와 방문하셨는데, 마침 그날 따님이 이곳에서 데이트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알아보고 놀랐다가 금세 네 사람이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더라. 그게 바로 버텀라인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세대가 모여 즐거움을 공유하는 공간 말이다.” 

- 버텀라인 허정선 대표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인천 1》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