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인천 1》 미리보기 #2

김주현바이각 - 김주현 대표

박지은|

테일러의 새로운 미래

여느 테일러숍과는 다르다. 김주현바이각은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패턴 개발에 힘쓰는 한편, 양복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40년 이상 경력을 보유한 지역 기술자 일곱 명과 협업한다. 김주현 대표는 ‘맞춤 양복’ 하면 인천을 떠올렸던 옛 명성을 되찾겠다며 장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긴 양복의 가치를 알린다. 그의 말대로 인천의 양복이 세계적인 양복으로 거듭날 그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 김주현바이각


테일러숍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려서부터 옷을 좋아했다. 20대 시절에는 옷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낮에 동대문종합시장 원단 매장에서 일하고, 밤에 패션전문학교를 다니면서 제작 기술을 익혔다. 그러나 교과 과정이 여성복 위주로 짜여 있어서 남성복 제작법을 배울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서울 한남동 테일러숍에서 양복을 맞출 기회가 있었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도제 방식으로 3년간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후 직접 양복을 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차 커져, 학창 시절을 보낸 제물포에 테일러숍을 차렸다.


제물포 상권이 과거에 비해 침체됐는데, 이곳에 점포를 연 이유는 무엇인가. 

제물포에 테일러숍을 차렸다고 말하면 대부분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곳은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많은 인파가 모여들던 동네였다. 하지만 부평이나 구월동 같은 신시가지가 생겨나고, 지역 상권의 기반이었던 인천대학교가 송도로 이전하면서 일대가 쇠퇴하기 시작했으니 주변 반응이 그럴 만도 했다. 그럼에도 이곳에 자리 잡은 데는 도제 생활을 했던 테일러숍의 영향이 컸다. 당시 사장은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소규모로 가게를 시작해 점차 규모를 늘려갔는데, 나 또한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에서 가게를 연 뒤 확장해나가고 싶었다. 실력이 좋다고 소문나면 사람들이 인천으로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제물포 본점뿐 아니라 송도에도 직영점을 차려 운영하고 있다. 본점의 경우 지역 주민들도 ‘제물포의 명소’라고 말씀해주신다.



상담과 양복 제작이 함께 이뤄지는 김주현바이각 제물포 본점


주로 어떤 고객이 찾아오나.

대부분 30~40대 남성으로, 맞춤 양복과 기성복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양복은 품격 있는 옷이다. 개인의 체형에 완벽히 맞춰 제작하는 양복은 착용자를 균형 잡힌 몸매와 최적의 신체 비율로 보이게끔 해준다. 기성복은 표준 체형을 기준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개인의 체형 보완이 어렵지만, 여기서는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양복을 만들어 고객이 만족할 수밖에 없다. 체형뿐 아니라 평소 옷 입는 습관까지 고려해 양복을 만든다. 고객 대부분은 비즈니스 양복을 제작하거나 결혼 예복을 맞추기 위해 이곳에 오는데, 원단 선택에 따라 가격은 60만 원대부터 400만 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한 벌 만드는 데 3~4주가량 소요되니 테일러 일곱 명이 종일 작업해도 한 달에 최대 70~90벌밖에 제작할 수 없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양복’ 하면 동인천을 떠올렸을 정도로 테일러산업이 부흥했다. 

1960~1970년대에 양장, 양화, 원단 등 신문물이 제물포로 들어오면서 자연히 양복거리가 생겨났다. 한때 동인천역 주변에 한 집 걸러 한 집이 양복점이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애관극장 인근 거리에만 40여 개가 있었다고 하니 그 위세가 정말 대단했던 것이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자유공원 근처에는 서양인의 사교 문화공간인 제물포구락부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이 제물포에서 양복을 맞추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기성복이 보편화되면서 맞춤 양복점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양복점에서 도제식으로 배운 이들이 1세대 테일러인데, 지금은 다들 연로하다 보니 찾기 힘들다.



ⓒ 김주현바이각

김주현바이각에서는 40년 경력의 테일러가 한 사람만을 위한 양복을 새롭게 제작한다


40년 이상 경력을 보유한 지역 테일러들과는 어떻게 협업하게 됐나. 

초창기에는 사업을 홀로 운영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에는 사실상 한계가 있었다. 나보다 더 전문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경동 거리의 양복점에 찾아가 기술자들에게 무작정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새파랗게 어린 청년이 찾아와 갑자기 일하자고 하니 그들도 얼마나 황당했겠나. 결국 3개월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기술자 일곱 명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도 합을 잘 맞춰 일하고 있다. 그들 덕분에 김주현바이각은 언제나 최상의 양복을 선보인다. 기술자들은 양복 제작에 집중하고, 나와 매니저는 디자이너로서 고객들과 상담하고 기술자들과 소통한다.


테일러의 경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작하니, 꽤 품격 있는 옷이 탄생할 것 같다. 

1만 번 이상의 손바느질로 만든 양복을 입어보면 바로 차이를 알 수 있다. 김주현바이각의 양복은 비스포크(bespoke,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맞춤으로 생산하는 일)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프랜차이즈 맞춤 양복과는 제작 공정이 다르다. 보통 프랜차이즈 양복은 기본 사이즈를 토대로 개인의 체형에 맞게 폭만 가감하기 때문에 세밀한 체형 보정이 불가능하다. 반면 김주현바이각은 한 사람만을 위해 새롭게 제작한다. 서른 곳의 신체 사이즈를 측정해 재단사가 고객 체형에 맞게 패턴을 그린 후, 어깨 각부터 품까지 형태를 섬세하게 잡는다. 이외에도 오래 입는 옷을 만들고자 제작 방식을 하나하나 고심한다. 원단 사이에 단단한 심지를 넣어 옷맵시를 살리고, 접착제가 아닌 손바느질로 원단을 고정해 통기성 또한 뛰어나다. 이처럼 장인의 노고가 담긴 양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전문적인 기술력뿐 아니라 김주현바이각의 젊은 감각 역시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요즘은 만듦새 못지않게 사람들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제작하는 게 중요하다. 장인들이 전문 기술을 갖췄다 하더라도, 1980년대에 유행하던 패턴의 양복을 제작하다 보니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운영 초기에는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되, 오래 입을 수 있는 양복을 만들기 위해 패턴 개발에 힘을 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고객과의 상담 내용이 디자인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재단사와 긴밀하게 소통한다. 또한 고객이 양복을 입는 목적과 배경에 맞게 전체적인 스타일링을 제안한다. 그래서인지 일반 고객뿐 아니라 연예인도 많이 방문한다. 테일러 1세대와 3세대의 협업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셔츠라 하더라도 깃 모양에 따라 사람의 인상이 달라지는 만큼, 테일러들은 사소한 부분에도 공을 들인다


테일러산업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테일러산업이 미래를 모색하려면 국내에서 전문 테일러를 양성해야 하는데, 현재는 기술자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내년 초에 체계적으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테일러 아카데미를 설립할 계획이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무보수로 일하며 도제식으로 기술을 습득해야 했지만, 이제는 더 나은 환경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인천디자인고등학교, 인천생활과학고등학교와 산학 협력을 맺어 방학마다 실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다양한 테일러를 초청해 강연을 진행하고, 실습 위주의 교육 과정을 구성해 후학을 양성하고 싶다.


앞으로도 인천에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인가. 

양복의 정통성이 인천에 있는 만큼,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려 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체인점 문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일단 송도 직영점만 운영할 생각이다. 지역 내부에서 시도할 수 있는 다른 방면의 일이 훨씬 많다. 국내 타 지역으로 사업을 넓히기보다는 해외 진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얼마 전에는 트렁크 쇼(trunk show, 소수의 상위 소비자를 위해 개최하는 행사로 고객이 현장에서 주문 제작을 의뢰한다)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이 왔는데, 여력이 있다면 하고 싶다. 인천의 양복이 세계적인 양복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여러모로 완벽한 옷을 짓고 싶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인천 1》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박지은

jepark@urbanpl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