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인천 1》 미리보기 #3

칼리가리 브루잉 - 박지훈 대표

이지현|

로컬의 잠재력으로 빚어낸 크래프트 비어

서울에 자리 잡아야만 성공이라 여기는 인식은 타 지역 출신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공고하다. 인천 토박이로서 자긍심이 남다른 칼리가리 브루잉(CALIGARI BREWING) 박지훈 대표는 이에 반기를 든다. 칼리가리 브루잉은 지난 2015년부터 인천 지역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성장해, 4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106개 업체, 540개 브랜드가 참가한 ‘2019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이들이 선보인 ‘사브작 IPA’와 ‘바나나화이트’가 당당히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맥주에 대한 열정과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이들이 일군 결실은, 인천 지역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한다.




한때 음악계에서 활동하다 지금은 인천으로 돌아와 브루어리를 운영 중이다. 크래프트 비어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재료와 주조 방식에 따라 맛이 달리 발현되는 다양성에 매료된 것 같다. 10년 전 칵테일 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다. 재료를 섞어 바로 맛보는 칵테일과 달리 발효주인 맥주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결과물을 맛볼 수 있지 않나. 그 기다림의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한편 국내에서는 2013년부터 이태원의 맥파이 브루잉(Magpie Brewing), 더부스(The Booth), 크래프트웍스(Craftworks)를 중심으로 크래프트 비어 펍이 점차 인기를 끌었다. 그들이 운영하는 탭하우스에 가야만 개성 넘치는 크래프트 비어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후 홈 브루잉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나만의 브루잉 방식을 조금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칼리가리 브루잉이라는 브랜드 명칭은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 중에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이라는 작품이 있다. 영화를 공부할 당시 인상 깊게 봤던 터라 늘 머릿속에 잔상이 남아 있었다. 브루잉 사업을 본격적으로 구상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영화의 독특한 제목과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밀실에서 밀주를 만들어 나눠 먹는다는 이미지를 상상한 뒤 브루어리 브랜딩을 시작했고, 이 콘셉트를 살려 2016년 송도국제도시에 직영 펍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먼저 론칭했다.




신포동 골목에 문을 연 칼리가리 브루잉 양조장 겸 펍은 동네에 젊은 감각을 불어넣는다


칼리가리 브루잉의 맥주 라인업을 보면 ‘신포우리맥주’, ‘차이나타운’, ‘개항장’ 등 이름에서부터 인천의 지역색이 드러난다. 

내가 인천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지역 내에서 비교적 상징성이 뚜렷한 신포동에 터전을 잡은 것도 그 때문이고.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지역을 상징하는 맥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천을 대표하는 맥주를 만들기로 한 이상, 제품 이름에 ‘인천색’을 담는 것은 당연했다. 의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했다. 신포동을 대표할 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신포동에서 개업해 전국으로 퍼져 나간 ‘신포우리만두’를 떠올렸고, 이 브랜드 이름에서 착안해 신포우리맥주를 만들었다. 마침 신포우리만두 측에서도 우리와의 컬래버레이션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현재 두 브랜드의 메뉴 페어링을 계획 중이다. 그리고 흑맥주를 만들면 꼭 붙이려 했던 이름이 바로 개항장이다. 인천의 개항장은 우리나라에서 서구 문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곳인데, 이러한 항구 도시의 이미지에는 영국의 포터처럼 흑맥주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작년에는 신포동의 낡은 창고를 개조해 자체 양조장까지 갖췄다. 

처음에는 브루잉이 가능한 두 곳의 업체에서 한 종류의 맥주만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생산했다. 그러다 크래프트 비어가 한창 흥하기 시작한 2016년쯤, 수요가 계속 늘다 보니 물량 공급 과정에 종종 문제가 생기곤 했다. 두세 개의 매장을 추가로 오픈하던 시점에는 맥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맛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소규모라도 자체 양조장을 갖추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2018년 1월, 신포동에 칼리가리 브루잉 양조장 겸 펍을 오픈했고, 같은 해 6월부터는 맥주를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년 동안 맛을 잡느라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제 갓 안정화에 접어든 단계다.



공간 한편에 마련된 칼리가리 브루잉의 양조장 설비


브루어리의 새로운 거점이 될 지역으로 신포동을 택한 이유가 있나. 

처음에는 양조장 규모 때문에 도심보다 공업단지 위주로 장소를 물색했다. 만석부두 쪽을 먼저 찾아봤는데, 그쪽이 작업 환경이나 설비 면에서는 여러모로 더 나았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고, 개인적으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신포동이 계속 눈에 밟혔다. 결국 ‘나는 인천 사람이고, 인천 하면 신포동이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동네에 들어오게 됐다. 내가 어릴 때 신포동은 지역의 중심이자 화려한 번화가였다. 현재 칼리가리 브루잉이 들어와 있는 건물 자리에도 당시 가장 트렌디했던 술집이 있었다. 이 건물을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는데, 동네를 둘러보다가 마침 같은 자리의 주류 도매 창고에 붙은 ‘임대 문의’ 쪽지를 보게 된 것이다. 큰 창고가 흔하지 않은 동네라 선택지가 많지도 않았거니와 유독 이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아예 매입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사정상 창고 한쪽만 임대해 사용 중이다. 맥주도 일종의 음식이기에 제조 공정상 위생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오래된 공간의 원형은 아쉽게도 많이 살리지 못했다. 그 대신 이 공간의 장소성에 의미를 두고 있다.


인천으로 돌아와 지역에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인천 내에는 ‘인천 사람은 안 돼’, ‘인천에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 점이 안타까웠다. 내 주위만 봐도 서울에서 멋지게 활동하는 인천 출신 친구가 많다. 실력 있는 친구가 이렇게 많은데, 왜 정작 우리 지역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움트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물론 예전에는 ‘뜨내기들이 모인 도시’라는 인식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들은 이전 세대보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크다. 때마침 원도심 신포동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데, 이는 힘과 실력을 갖춘 인천 출신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하나둘 고향으로 돌아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이곳에 터 잡은 이들이 좋은 공간과 즐길 만한 콘텐츠를 조금씩 구상하고 실현한다면, 잠재력과 가능성을 엿본 지역의 다른 청년들도 이곳으로 모여들 것이다.



바나나화이트, 신포우리맥주, 사브작 IPA는 칼리가리 브루잉의 대표 맥주 라인업이다


크래프트 비어를 매개로 지역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과정이 어렵진 않았나. 

힘들었다. 세대 간 연결고리도 약하고 텃세도 강했다. 이곳에 처음 들어와 양조장을 만들 때도 우리의 존재를 달갑지 않아 하던 주변 분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먼저 다가가기도 했다. 그렇게 몸으로 직접 터득한 방식을 통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길게 내다보자는 생각이다. 어떤 방식이든 기존의 한계를 계속 깨부수는 과정인 것 같다.


서브 브랜드인 ‘인천 브루잉’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진행 상황이 궁금하다. 

인천의 지역색을 더욱 강조한 ‘지역 주(酒)’ 같은 맥주를 구상하며 기획했다. 인천 브루잉의 론칭은 지역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인천의 로컬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생(生) 소성주’로 유명한 인천의 향토 기업 ‘인천탁주’와 협업해, 누룩을 활용한 새로운 맥주를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중이다. 하지만 누룩을 다루는 방법이 아직 익숙지 않아 제작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소규모 브루어리의 특성상 다양한 맥주 라인업을 선보이려면 신제품마다 유통 허가를 일일이 받아야 하는데, 허가 절차 자체가 워낙 복잡해 론칭이 늦어지고 있다. 한때는 너무 지역성에만 국한되는 것 같아 좀 더 대중적인 맥주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사브작 IPA와 바나나화이트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우리 브루어리만의 경쟁력과 정체성은 지역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나름의 결론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처럼 재미있는 콘셉트에 지역색을 담은 맥주를 꾸준히 만드는 게 회사 차원의 목표다. 이는 대형 주류 회사에서 구조적으로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작은 브루어리의 역할이자 숙명이며 경쟁력이라 생각한다. 홍콩이나 대만 쪽으로 해외 수출 판로도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현재 ‘크래프트 비어 브루어리’와 ‘크래프트 비어 펍’이라는 두 가지 노선으로 운영하다 보니, 우리 브랜드를 단순한 펍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에서 크래프트 비어를 만드는 브루어리로 브랜드 인지도를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꿈이 있는데, 어느 정도 회사가 안정되면 밴드를 꾸려 연주하고 싶다. 손님들이 맥주 한잔 즐기는 동안 공간 한편에서 직접 공연하는 것이다. ‘문화 콘텐츠’라고 말하면 왠지 거창해 보이지만, 맥주가 다양한 요소를 잇는 연결 고리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인천 1》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