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떤 총체나 집단 속 개인을 획일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부가 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계 인천’이라는 오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천의 면적은 광역시 중 1위로 ‘1,000만 도시’ 서울의 면적보다 1.75배 넓다. 일부 부정적인 모습으로 획일화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도시다. 예컨대 나는 인천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다녔지만, 사는 곳에서 바다까지의 거리도 먼 데다 바다와 그리 친하지도 않다. 그러나 인천에 산다고 말하면 “짠 내가 난다”라는 둥 바다와 연관 짓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인천은 1,063㎢의 거대한 면적만큼이나 각 지역이 개별적인 특성을 보인다. 인구 300만 명의 대도시를 특정 단어로 단순화하기에는 억울한 면이 있다. 이러한 인천의 속사정을, 인천 토박이의 시각으로 설명하려 한다.
ⓒ 강필호
인천은 정말로 '마계'인가
2000년대 말, 내가 사는 동네 근처인 서구 가정동에서는 ‘루원시티’라는 재개발 사업이 추진됐다. 해당 사업은 철거가 지연되는 등 사업 초기부터 여러 차례 차질을 빚었고, 동네는 순식간에 유령도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평범했던 동네가 폐허로 전락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건물에 붉은 래커 낙서가 난무하고 유리창은 엉망으로 깨져 있으며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우범지대였다. 오죽했으면 영화 <도둑들>(2012) 등 온갖 범죄물의 촬영지로 각광받을 정도였다. 비단 루원시티 재개발이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사례는 인천 곳곳에서 심심찮게 생겼다.
마계 인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한몫한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학창 시절 우리 입에 자주 오르내린 ‘도봉산’을 꼽을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서울 도봉구에 있는 산을 떠올리겠지만, 실은 비행청소년으로 악명 높던 ‘항도실업고등학교, 운봉공업고등학교, 운산기계공업고등학교(개칭 전)’를 지칭하는 은어다. 세 학교는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과거 인근 캠퍼스의 대학생들이 도봉산 학생들에게 종종 금품을 갈취당하자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는 도시 전설마저 전해 내려올 정도다.
오늘날 루원시티 재개발 사업은 상당 부분 진척돼 음산하던 예전 모습과는 달라졌다. ‘도봉산’으로 불리던 세 학교도 개칭 후 특성화고등학교로 개편되며 많이 교화된 편이다. 마계 인천이라는 별명의 유래로 가장 유력한 것은, 2005년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몇몇 대도시를 희화화한 것이 그대로 굳어졌다는 설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마계 인천과 함께 ‘고담 대구’, ‘라쿤 광주’, ‘안산드레아스’ 등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은어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만연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인천에서 벌어진 사건・사고 뉴스가 매스컴을 통해 들려올 때마다, 해당 단어를 환기하고 확대 및 재생산하는 확증 편향이 반복돼 왔다.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착화되면서 사람들은 인천의 치안을 두고 불안에 떨거나 쉽게 오해하곤 한다. 2018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이 꼽은 사회의 주된 불안 요인 1위가 범죄(20.6%)인 만큼 치안은 도시의 이미지에 직결된다. 그러나 인천이 범죄의 도시라는 편견은 사실과 다르다. 2013~2017년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7대 특별・광역시 중 인천의 총범죄 발생률은 6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기존 이미지가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것은 재개발 이전의 가정동처럼 지역 간에 낙후된 정도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2016년 SBS에서 전국 234개 지역을 대상으로 5대 강력범죄의 1만 명당 발생 건수를 비교한 결과, 미추홀구(옛 남구)와 부평구는 각각 전국 27위와 32위를 기록했다. 공단과 번화가 등이 밀집된 지역이다 보니 높은 인구 밀도 탓에 갈등이 잦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계양구(107위), 연수구(121위), 서구(147위), 강화군(157위)처럼 전국 평균보다 낮은 지역도 많았다. 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지역의 이미지가 대중에 각인됐을 뿐, 인천의 전반적인 치안이 나쁜 편은 아닌 셈이다.
단순히 도시의 외적인 모습 때문만이 아니라 재정 면에서도 마계라 불릴 법한 논란이 잦았던 것이 사실이다. 본래 인천은 대기업 본사나 산업단지가 위치하며 인구도 많은 덕에 상당한 예산 규모를 자랑한다(2019년 기준 약 10조 원). 그러나 2009년 1,300억 원이 투입된 인천세계도시축전, 이와 함께 800억 원을 들여 구축한 월미은하레일(대체 사업으로 추진된 월미바다열차가 지난 10월 8일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2014년 2조 원을 들여 8.9%를 회수한 인천아시안게임 등의 국제 행사 및 사업이 수익성 면에서 줄줄이 실패했고, 검단신도시와 영종하늘도시 같은 개발 및 SOC(Social Overhead Capital, 사회간접자본) 사업도 부채 생성에 일조했다. 수십 년 동안 무리한 사업을 거듭해 혈세를 낭비한 끝에, 2014년을 기준으로 인천의 재정(예산) 대비 부채 비율은 39.9%에 달했다. 부채 비율 40% 이상의 지방자치단체를 정부에서 재정 위기 단체로 지정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부도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예산 부족으로 한때 공무원 수당도 제때 지급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인천시가 이처럼 비이성적인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과 그들을 무분별하게 지지한 시민의 책임도 적지 않다.
2014년 39.9%에 달한 부채 비율은 다행히 2018년 말 19.9%를 기록하면서 재정 정상화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 2019년 현재 재정 자립도 또한 64.64%(4위, 전국 평균 51.35%)로 양호한 편이다. 한편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 인천은 2016년에 인구 300만 명을 돌파했다. 서울과 여섯 개 광역시 가운데 인구가 증가한 도시는 인천이 유일하다. 인천국제공항, 공항철도, GTX-B 등 교통편의 확충으로 수도의 관문이라는 이점이 두드러지고, 송도를 비롯한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인천 일부 지역의 생활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앞서 지역 격차가 치안에 대한 오해를 유발했듯, 인천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려면 지역 간 양극화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대비 2016년 인천의 GRDP(지역 내 총생산) 증감률을 비교한 결과, 1위 연수구의 경우 66.9%가 증가했다. 반면 동구는 12.5% 감소했고, 강화군은 42.4% 감소했다. 낙후 지역이 미국의 할렘과 같은 우범지대를 형성하는 등 문제가 심화되기 전에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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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지닌 다원적인 정체성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 관계가 아니라, 대중이 대상을 표면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이다. 아무리 오해라고 항변해도, 한 번 인상이 박힌 뒤로는 그것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한마디로 기존의 인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마계 인천이라는 오명은 지속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역발상을 해보자. 나는 마계라는 별명을 꼭 부정적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축구 국가대표팀 응원단의 이름은 ‘붉은 악마’이며, 이는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다. 어쩌면 마계 역시 인천만의 특색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포켓몬 마을’로 명소가 되었던 속초,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로 다수의 창착물에 영감을 준 홍콩의 구룡성채 등을 선례 삼아 부가가치 창출의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역설적이지만, 누구에게나 쉽게 각인될 만큼 대중적인 별명은 모든 도시에 주어지지 않는다.
마계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든 혹은 타파하든,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은 인천 시민 스스로 소속감과 지역 정체성을 갖추고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지역 정체성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곳이 외지나 다름없게 느껴지고, 마계 인천의 누명을 극복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음을 잘 안다. 인천은 서울보다 훨씬 거대한 면적을 갖춘 데다 남북으로 긴 형태에 도서 지역까지 포함돼 지역별 특징이 천차만별이다. 생활권은 크게 네다섯 개로 나뉘는데 권역마다 치안, 재정 등 모든 지표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각자의 생활권에 유리된 시민들은 같은 인천일지라도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의 통일된 정체성을 고취하겠다며 억지로 획일화하는 것은 무익하다. 하나 된 인천이라는 정체성을 강요하더라도 그것이 가능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성’을 통합의 기치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민자를 강제로 획일화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회에 한데 어울려 살도록 했기에, 다민족・다인종이 혼합된 도시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고취할 수 있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천 역시 지역이 지닌 다원적인 특색과 매력을 잘 파악하고, 그 잠재성을 살릴 만한 전략을 세운다면 기존 편견을 타개할 수 있다. 인천 내 양극화를 해소하고, 오늘날의 ‘마계’를 넘어서는 인천 나름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 이 별명은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인천 1》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