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인천 1》 미리보기 #5

인천-서울 통근러 탈출기 (Feat.예술가)

진나래|

서울 근교에서 문화예술인으로 산다는 것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통학 때문에 경기도와 서울을 전전하다 대학원 졸업 후 다시 인천에 살게 됐다. 딱히 살고 싶은 도시가 아니었음에도 서울의 비싼 월세에 지쳐 부모님 댁으로 들어간 경우였다. 활동은 주로 서울에서 하는데 인천에 거주하다 보니, 매일같이 두 지역을 오가느라 진이 빠져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항상 녹초가 되어버리곤 했다. ‘인천러’라면 공감할 텐데 매일같이 왕복 3~5시간 동안 대중교통에 몸을 맡기다 보면, 내가 길 위에 사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특히 경인선은 노인석에서 서로 ‘민증’을 깐 채 보기보다 늙었다고 주장하며 싸우는 어르신들부터 신실한 이동형 목사들, 매번 다른 물건을 가지고 나와 차력 쇼를 포함한 온갖 퍼포먼스를 펼치는 잡상인까지 무척이나 진귀한 풍경이 가득하다. 좋게 말하면 아주 저렴한 국민 엔터테인먼트 극장이지만, 그와 동시에 언제 어느 때고 비상식적인 테러를 당할 수 있는 스릴러 현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가족 구성원과 달리 나만 유난히 서울에 의존하는 상황이라 집이 인천인 것에 답답함을 느끼는 듯했다. 전시, 포럼, 이벤트를 포함해 내가 관심을 가지거나 참여하는 대부분의 문화예술 행사 혹은 지인과의 만남이 모두 서울에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녹초가 되어 막차를 타고 새까만 차창 밖을 바라보던 어느 날, 이 생활을 그만두고 사는 곳 가까이에 활동 터전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아직 너무 심심해 보이지만 더 이상 멀리 가기에는 지쳤고, 활동할 만한 장(場)이 없다면 내가 그 장을 만들면 그만이지, 그런 생각이었다.



ⓒ 추르추르프레스

지역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자 직접 추르추르프레스와 판판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시작한 진나래 작가


그동안 내가 바라본 인천은 참 삭막하고 재미없는 도시였다. 하지만 인천 내 여러 지역을 돌아보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동료 작가들을 만나며 생각이 달라졌다. 동네의 분위기 때문인지, 솔직 담백한 사람들의 성격 때문인지,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커뮤니티와 신에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제주 등 타 지역 작가들도 만났다. 그 만남을 통해 현대예술을 서양이나 서울 또는 큰 기관의 활동에만 주목해 파악했던 내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알게 됐다. 그동안 나와 좀 더 가까운 곳에 있는 매력들을 어째서 발견하지 못했을까 고민했다.

많은 매체가 서울의 로컬 문화에만 주목하면서 마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는 양 보여주는 점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국내 문화예술 활동의 대부분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잘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이뤄지는 일 모두가 서울의 것도 아닐뿐더러 타 지역에 있다고 해서 문화예술인의 역량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천에서는 창작과 향유의 주체인 문화예술 인구, 자본, 공간, 매체 등의 총량이 서울보다 턱없이 적어 활발한 신이 형성되거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서울에 비해 부족한 것은 훌륭한 작가나 작품 활동이 아니라, 이러한 활동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장이나 지역 문화를 다루는 미디어가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로컬의 예술 활동을 조명해 알리고, 이를 통해 더 많은 향유층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 추르추르프레스


〈새러데이 인천〉, 로컬 아트의 재발견

추르추르프레스의 로컬 아트 매거진 창간호 <새러데이 인천>은 이런 생각에서 기획한 프로젝트다. 취향이란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지는 다분히 지엽적인 부분임을 고려했고,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 문화를 비추는 렌즈 역시 지역색 또는 추르추르프레스만의 색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방식을 고민하던 중 1970~1980년대에 발행된 대중문화 잡지 <선데이 서울>이 떠올랐다. <선데이 서울>은 ‘야한’ 잡지로 알려졌으나 실제로 들여다보면 그런 면은 매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만화, 광고 등 여러 지면에 성적 농담이나 여성 대상화의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1991년 폐간 전까지 꾸준히 발행된 이 잡지는 분명 당대 대중문화의 두둑한 아카이브다. 이러한 <선데이 서울>을 차용해, 지리적 특성상 언제나 서울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되는 인천의 문화예술 신과 작가들을 더 많은 대중에게 소개하는 잡지를 만들면 흥미로울 것 같았다. 때로는 아주 작은 연예계 같기도, 놀이터 같기도, 가십의 장 같기도 한 예술계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좋은 방법처럼 느껴졌다. 또한 현실을 살아가는 예술인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솔직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는데, 그런 측면에서도 적절한 기획이었다.



ⓒ 추르추르프레스


시중의 잡지나 인터뷰를 통해 바라본 예술 혹은 예술가는 왠지 천편일률적이고 신화화된 것처럼 보였다. 예술이 무조건 특별하거나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도 아니고, 작가가 소위 ‘아뤼스트 아우라’를 뿜어내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특정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았다. 예술이란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반드시 재기 발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리도 다양한 예술과 예술인을 비춰야 할 매체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어쩐지 불편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추르추르프레스의 로컬 아트 프로젝트가 다양한 예술과 예술가를 비추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통해 작가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과 작업 활동을 일상적 고민과 함께 허심탄회하게 담아내는 게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인천에서 살거나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업은 물론이고 사생활, 취미,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찾는 프리터 또는 프리랜서로서의 모습까지 모두 담았다. 창간호에서는 특히 동인천에 주목했다. 예술가 모임인 ‘회전예술’, ‘멍 때리기 대회’를 기획한 웁쓰양컴퍼니의 웁쓰양을 비롯해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지역 예술가들을 소개했다. 또한 예술과 로컬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담아내고자 했다. 날것의 인천을 보여주고 싶어 작가들에게 장소를 추천받았고, 그 덕분에 현란한 벚꽃길, 송월동 동화마을의 그로테스크한 모습, 황량한 공단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소개하는 관광지가 아닌 실제 지역민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장소와 분위기를 전할 수 있었다. 앞으로 몇 권의 매거진을 더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향후 몇 년간은 인천의 또 다른 지역과 다양한 작가들을 인터뷰하고 소개해 매번 새로운 <새러데이 인천>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인천만이 아닌 다양한 지역의 로컬 아트를 소개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타 지역과의 협업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와 더불어 현재 운영 중인 추르추르프레스와 판판스튜디오를 현대예술 작가를 포함한 창작자의 프로젝트 소개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 강필호

오랫동안 비어 있던 양조장은 복합문화공간 인천문화양조장으로 재탄생해 오늘날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됐다


이주의 역사로 채워진 다층적인 로컬

인천은 개항장인 동시에 산업도시이며, 발전주의 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도시 개발의 각축장이었던 만큼 다양한 미감이 혼재한다. 인천역과 월미도에서 출발해 동인천・송림동・주안・송도까지 죽 둘러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월미도에는 삼선 슬리퍼를 신고 ‘디스코팡팡’을 타러 온 청소년들이나 간간이 보이는 어설픈 모양새의 놀이동산이 있고, 인천역 인근에서는 관광지로 변한 차이나타운과 일본식 적산가옥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자유공원에서는 매일같이 생화가 놓이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과 아침이면 그 앞에서 벌어지는 붉은 옷 군단의 에어로빅 댄스가 눈에 띈다. 동인천에는 과거 뱃사람들이 드나들었을 법한 위락시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송림동에는 낡고 아기자기한 다세대주택들이, 내륙 쪽으로는 군데군데 재개발된 아파트 단지들이, 그리고 남쪽으로는 조감도를 위해 조성된 빚더미의 신도시 송도‘국제’도시가 시간순으로 주르륵 펼쳐진다. 이처럼 가지각색의 주거 공간 및 건축 형태를 통해 예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의 이주가 더해져 지금의 인천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개항장 시기에는 일본・중국・네덜란드 등 다국적의 사람들이 인천으로 몰려들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피난민이 크게 늘었으며, 산업화시대에는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온 수많은 노동자가 눌러앉거나 거쳐 갔다. 이후로는 도시 재개발 사업을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북한 이탈 주민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중동 등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돈벌이를 찾아 들어온 이주민과 난민 역시 공존한다.

‘지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수많은 답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행정구역상 나뉘는 땅일 수도 있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의미하거나 사람들이 인식하는 어느 불확실한 경계 지점일 수도 있다. 커다란 땅덩어리에 사람들이 점차 밀려들며 개발과 쇠락을 반복하는 사이, 인천에는 쇠락한 산업도시에서 볼 수 있는 ‘인더스트리얼 서브라임(industrial sublime)’이라 부를 만한 풍경과 지역 공공 기관 주도의 도시 미화 사업으로 탄생한 한국적 키치함 그리고 획일적인 신도시 풍경이 혼재하게 됐다. 그 중구난방의 미감을 후후 털어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는 인천이 거쳐온 수많은 이주와 노동의 역사가 새겨져 있고, 노동운동과 풀뿌리운동, 여성운동의 자취가 남아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민중미술과 록 음악 등 다양한 현장의 정신이 살아 있다. 그러므로 ‘삭막하다’라는 인상은 인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떠들 법한 말인 것이다. 과거 ‘뜨내기들의 도시’라 불렸던 이곳에서, 산업 이주민의 2세대 청년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스스로를 ‘인천 사람’으로 규정한 뒤 혼재하는 정체 모를 요소들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하나둘 판을 벌여 열심히 ‘놀고’ 있다.

개항의 물결을 타고 들어온 타국의 문물과 사람들, 전국 각지에서 몰린 이주민, 소위 뜨내기들의 징검다리 도시인 ‘마계’ 인천. 수많은 길과 문, 각기 다른 ‘계’가 꿈틀대는 이곳에는 무언가 거친 마력이 있다. 공업도시의 뿌연 색을 지우고자 생겨난 각종 테마파크 사이에서 토끼고기, 기괴한 수집광, 구렁이가 사는 빈집과 조우하며 뒹구는 뜨내기들의 자녀와 또 다른 뜨내기들은 이제 그 ‘병맛’의 미학을 발견해 ‘살맛’ 나는 동네를 상상한다. 도시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답의 형태는 아주 다양할 것이다. 이주민의 도시라는 정체성답게 다양성을 갖춘 로컬 문화야말로 우리가 더욱 추구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성이 중요하고, 골목대장 식의 동네 휘어잡기로 지역패권주의를 고수하기보다 가지각색의 개인사와 취향을 가진 이들이 각자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수도 생활권이면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싸고, 경쟁이나 과도한 유행에서 한발 비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는 이곳 인천에서는 커뮤니티를 이루거나 각개 활동을 하며 머무는 예술인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인천을 터로 삼은 지역 예술인이 늘어나는 만큼, 이들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만한 장과 이들을 비추는 렌즈, 그리고 지역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늘어날 수 있을지. 내일의 인천이 나는 무척이나 궁금하다.


진나래(작가, 매거진 <새러데이 인천> 편집장)

인천에 거주하며 로컬 안팎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이자 문화기획자, 편집자다. 창작자의 출판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추르추르프레스’, 디지털 매체와 문화기획을 다루는 ‘판판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로컬 아트 신을 대중 잡지 형식으로 엮은 <새러데이 인천>을 발간해 전국의 독립서점에 입고했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인천 1》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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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진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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