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성의 시대에 필요한 공간 비즈니스

어반하이브리드

강필호|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여전히 대세다. 많은 청년이 돈 많은 백수, 그중에서도 건물주를 꿈꾸는 모습은 저성장시대에 돌입한 한국 사회에 소위 ‘부동산 불패 신화’가 남긴 잔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의 이상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고도성장기의 문법을 그대로 따른 대규모 개발 사업이 좌초되는 것은 물론이고, 도심 랜드마크 건축물의 공실률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양한 대안이 대두되는 와중에 어반하이브리드는 ‘합리성’과 ‘적정성’에 기초한 부동산 종합 개발을 모토로 지역 기반 부동산 사업 모델을 제시한다. 다변화되는 사회에서 일종의 가능성을 자처하는 이들의 시선은 새로운 시대를 대변하는 대중의 기호, 그리고 부동산 신화의 해체를 겨냥한다.


어반하이브리드는 어떤 회사인가.

기존 시장의 업태 분류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업 회사다. 다만 개발하고 공급하는 공간 유형이 ‘코리빙(coliving)’, ‘코워킹(coworking)’, ‘코다이닝(co-dining)’과 같이 대체로 일상에 밀접한 형태의 공유공간이란 점이 다르다. 타깃 기준으로는 소위 밀레니얼을 비롯해 지역 기반의 특정 산업 종사자에 초점을 맞춰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공유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다른 회사들이 보통 운영에 집중하는 데 반해, 우리는 펀드와 같은 자산 기획부터 조성 완료 후 자산 활용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설정하려 한다. 설계나 시공은 직접 하지 않더라도 부동산 개발의 모든 단계를 수행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으며, 사후 운영에도 신경 쓰고 있다.


스타트업은 통상 특정 시장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창업하기 마련이다. 부동산 개발업 시장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나. 

어반하이브리드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부동산 개발, 도시, 건축 등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회사다. 창업 당시에는 국내 부동산 개발이나 공급 시장 자체가 낙후된 시스템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정석적인 디벨로퍼라면 임대와 운영 모두 포괄적으로 담당하면서 장기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맞는 공간을 도시에 공급하고자 한다. 그러나 국내 부동산 시장의 메커니즘은 시장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짧은 호흡으로 공간 개발과 운영을 이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공간 내 콘텐츠가 형성되거나 주목받을 기회가 전무했다.


공장 같은 분업화가 일반적이었던 기존 부동산 시장의 성격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총체적인 운영, 이른바 마스터플랜을 고민하기는 현실적인 여건상 어렵지 않았겠나.

그렇다. 밑바탕에 그러한 문제의식을 지녔다고 볼 수 있고, 상황을 어떻게 바꿔볼까 고민하면서 몇 가지 현상에 주목했다. 우선 창업 무렵인 2012~2014년쯤에는 뉴타운 사업,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사업 등 대규모 개발 사업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른 대안을 여러 주체에서 다각도로 모색했는데, 우리는 지역을 개발하거나 도시를 재개발할 때 해당 지역 거주민의 정주성이 등한시되는 문제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뉴타운 사업 시행 과정에서 임차인의 이해관계를 배제하는 문제가 있다. 청년 주거 관련 이슈도 같은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주거 관련 부동산 개발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재개발 사업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면, 기존에는 지역의 콘텐츠나 특성을 배제한 채로 기계적인 절차를 수행해왔다. 오직 사업성만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영미권에서는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 이와 같은 현상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상황을 개선할 모델로 대두된 것이 바로 ‘지역개발회사(CDC)’다. 해외의 지역개발회사는 대체로 두 가지 목표를 지니고 있다. 첫 번째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적정주택(affordable housing)◼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에 영감을 받아 우리도 같은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 적정주택

도심부에서 사무용 빌딩의 개발에 맞추어 저·중 소득자를 위해 공급하는 주택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주거 난민, 도심 공동화, 불균형 개발 등 도시 문제 해결의 효율적인 수단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지역개발회사는 사업성의 관점에서 기계적인 개발에 매진하는 것을 넘어 지역경제와 도시 기능을 고려한 부동산 개발을 지향한다

ⓒ 어반하이브리드(주식회사 쉐어원프로퍼티)


공유경제 관련 공간이나 서비스 중 몇몇은 새롭고 매력적인 상품 정도로 여겨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코워킹 스페이스, 코리빙 하우스 등의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비용, 사용성 등 실질적인 서비스 완성도 항목은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유형의 공간을 선보이며 겪는 어려움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합리성이 중요한 덕목인데, 결국 우리가 목표로 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의 공급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즉, 부동산 개발 구조나 부동산 금융 구조 등에 걸친 변화에 따라 기존 시장의 혁신이 이뤄져야만 구상 중인 사업 모델을 장기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 구조 혁신과 새로운 유형의 공간 개발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위워크(WeWork)의 사례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위워크가 글로벌 시장에서 저조한 실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까닭은, 결국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기존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인 틀 안에서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기존 서비스업과 임대업의 공식을 차용했기에 혁신적인 방향성을 실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처럼 사업 모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시장 여건과 변수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반하이브리드는 부동산 시장의 혁신 가능성을 어떤 형태로 제안하고 있나. 

우리의 코리빙 공간 개발 사례를 보면 지주공동사◼와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해 일종의 비용 구조를 만들고 있다. 3년 정도 장기간 공실 상태였던 건물의 리노베이션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자산을 소유한 이들은 자산 가치를 개선할 수 있는 사업 방식을 통해 장기적인 현금 흐름(cash flow)◼◼ 속에서도 이익을 보전하게 된다. 이러한 자산을 잘 활용하면 신규 토지를 확보하거나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초기 투자 비용이 조금이나마 줄어드니, 이는 곧 비용을 절약할 방안이 된다.

적절한 금융 프로그램이나 지원 정책을 활용하면 금융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임대주택을 개발할 때 시중 담보 대출 금리가 4%라고 가정하면, 우리가 활용하는 공공 기금은 2% 정도의 금리로 자금을 충당할 수 있다. 여기에서 2%p의 차이가 발생하므로, 10억 원 기준으로 2,000만 원 정도의 금융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다. 그만큼을 임대료를 낮추거나 이용 가격을 내리는 데 활용해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본인의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니 반대할 이유가 없다. 시중 금융 상품을 이용했다면 은행으로 흘러갔을 자금을 임차인에게 돌려주는 혜택 개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적정 비용 구조를 고민하면서 상품을 개발한 뒤 적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광범위한 시장을 대상으로 자산을 운용하거나 투자하는 메커니즘을 제시하며, 그것이 결국 디벨로퍼의 핵심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주공동사

기존에 토지를 소유한 주체를 의미한다.


◼◼현금 흐름

기업 또는 개인의 영업・투자・재무 관련 활동을 통해

현금성 자산 유입과 유출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현금 흐름을 가리킨다.



쉐어원은 지역의 입지적인 특성과 청년 수요자의 성향을 고려해 공간 및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공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한다

ⓒ 어반하이브리드(주식회사 쉐어원프로퍼티)


신림동, 역삼동 지역에서는 코리빙 공간을 운영하는 데 반해, 창신동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선보였다. 

창신동에서는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 ‘생활’이라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접근했다. 앞서 언급했듯 창신동은 동대문시장과 연계된 국내에서 매우 중요한 패션 산업 밀집 지역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판매하는 의류는 대체로 중저가 상품이고 여러 요인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며, 최근 산업적으로나 지역 공동체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여건, 특히 패션 산업 관련 환경을 개선해나가면서 해당 산업을 지역 산업으로 정착할 방법을 고민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창신동의 지역 산업이 제조업에 머물러 있었다면, 우리는 이러한 제조업 기반을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신진 디자이너나 디자인 회사와 적극적으로 협업하고자 노력 중이다. 물론 이미 창신동 일대에서 작업 중인 젊은 디자이너도 많다. 다만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 지역에서 다른 산업 모델까지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창신아지트’라는 공간을 ‘코워킹 디자인 스튜디오’로 정의한다. 이곳은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봉제업에 종사해온 제작자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신진 디자이너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코워킹 공간이며, 협업을 통해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새로운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제작할 수 있는 공간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지역에서 생산하던 상품보다 부가가치 높은 상품을 개발하고, 패션 관련 시장 개척의 기반으로서 공간을 제공하는 개념이다.



수십 년 경력을 지닌 봉제 기술자와 신진 디자이너가 공간을 공유하며 협업을 모색하는 창신아지트

ⓒ 어반하이브리드(주식회사 쉐어원프로퍼티)


창신아지트 내부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이 있나.

코워킹 오피스, 코워킹 디자인 스튜디오의 형태를 기본으로 100여 명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또한 입주자들이 생활할 때 필요한 먹거리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코다이닝 성격의 리테일 공간도 조성했다. 향후에는 이곳에 새롭게 입주할 젊은이들이 거주할 수 있는 코리빙 공간을 복합적으로 개발하고자 한다. 다만 기존 코워킹・코리빙 공간은 특정 대규모 건물 내에 집약적으로 개발되는 사례가 많았는데, 우리는 다양한 기능을 수평적인 방향으로 주변 지역 곳곳에 분배해 개발했다. 또한 이를 통해 그 기능들이 각 공간에서 거주민, 입주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자연스럽게 지역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특정 건물이나 공간에만 사람이 몰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 전체를 활성화해 모두가 상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과거에는 공간을 기능에 따라 분리하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나아가 그러한 형태를 효율적인 것으로 간주해왔다. 반면 요즘은 업무공간의 일부를 휴게공간으로 사용하는 등 복합적인 용도와 성격을 띤 공간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개개인의 다양성이 확대되는 흐름을 공간에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삶 속에서도 일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데, 요즘은 ‘긱 이코노미(gig economy)◼’를 위시한 프리랜서 형태의 업무 수행 방식이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업무공간과 생활공간의 경계가 이전처럼 정형화돼 있지 않은 경향이 공간 유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특히 조직 관리 메커니즘에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예전에는 감시 위주로 인력 관리가 이뤄졌던 반면 요즘은 자율성에 기반한 업무 방식이 보편화됐다. 물론 제조업공장의 경우 생산 라인을 멈추지 않고 효율적으로 가동해야 하니 부득이하게 출퇴근 시간을 비롯한 규율이 엄격히 적용되지만, 일반적인 사무직 또는 서비스 직군에서는 더 이상 동일한 관리 체계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기업 운영이나 조직 문화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는 것은, 대단한 시대적 변화라기보다 오히려 ‘합리성’에 대한 재인식의 결과라고 본다.


◼긱 이코노미

기업이 정규직보다 필요에 따라

비정규 프리랜서 고용을 선호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는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여건 속에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다.


스스로를 퍼블릭 디벨로퍼로 규정하고 있다. 향후 활동이 사회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금과 같은 저성장시대에 중요한 것은 결국 ‘적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사용자나 공급자 모두에게 과하지 않아야 하고, 지급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지속 가능함을 유지하는 게 모든 경제 분야의 화두로 올라설 것이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매년 얼마씩 오르리라는 것을 전제하고 임대가를 높이면서 자산을 관리·유지·유통하지만, 그러한 방식도 언젠가는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결국 자산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가 중요해질 텐데, 5년 단위의 단기적인 안목으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부동산을 운용하는 방법론이 필요할 듯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부동산 시장 내 우리의 활동이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부동산이나 공간 사업을 통해 사회적인 지속 가능성과 개인적인 일상의 지속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 적정성을 유지하고 향상해나가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도시 02: 도시생활혁명》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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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강필호

stopkang108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