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명성을 되살리다

광신제면

박지은|

쫄면의 원조로 알려진 광신제면의 시작은 평범한 제면소였다. 우연한 실수로 만들어진 쫄면 덕분에 가게는 명성을 얻었지만, 이후 찾아온 상권 쇠퇴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18년 전 하경우, 이영조 부부는 낡은 제면소를 인수해 쫄면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정직하게 만든다는 일념 하나로 꿋꿋이 가게를 지켰고, 그 결과 광신제면은 50년 역사를 지닌 인천의 명물로 거듭났다. 두 사람의 치열한 노력이 없었다면 광신제면은 그저 역사 속의 이름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쫄면의 탄생지가 바로 이곳이라고 들었다.

맞다. 우리는 나중에 사업을 인수한 터라, 창업주 할머니에게서 일화만 전해 들었다. 1969년 개업한 광신제면은 동인천 번화가에 있어 장사가 매우 잘됐다고 한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면을 사려고 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고 하더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다 보니 직원들은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직원이 냉면 면발을 뽑으려다 실수로 우동 굵기의 사출기를 끼우는 바람에 굵은 면발이 나왔다.

재료가 귀한 시절이라 버리긴 아까워 우동 가게에 면을 거저 줬는데, 다른 면보다 쫄깃해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 결국 그 식당에서 '쫄면'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상당한 인기를 얻어 지금까지 계속 만들게 됐다. 



사출기에서 각 나온 쫄면의 모습 


가게를 인수한 과정이 궁금하다. 

가게의 명맥을 잇겠다는 거창한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다. IMF 사태가 터지고 원래 운영하던 사업이 망하면서 뭐라도 해야만 했는데, 그떄 지인이 광신제면을 인수하면 어떻겠느냐고 소개해줬다. 당시 동인천은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터라 가게 운영이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장사를 시작했으니 어떻게든 가게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창업주로부터 건네받은 조리법으로 면을 만들어보고, 재료의 배합 비율을 다르게 바꿔보기도 했다. 지금의 면발을 만들기 위해 수십 번 다르게 시도하며 고생한 기억이 난다. 8~9년 간신히 버티다 보니 2005년부터 상황이 점차 나아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18년이 흘렀다. 나중에서야 포기하지 않고 가게를 지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쫄면은 어떤 공정을 거쳐 제조되나.

반죽기에 밀가루, 물, 소금을 알맞게 배합하고 쫄깃함을 더하기 위해 전분과 소다수를 약간 첨가한다. 반죽 후 1시간 정도 숙성하고 팔뚝만 한 반죽을 떼어 성형기에 넣으면 사출기에서 쫄면이 나온다. 과정이 간단해 보이지만, 날씨나 습도에 따라 반죽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매번 배합 비율을 조절해야 한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건조되고 있는 쫄면


제면소를 인수하기 전에도 종종 동인천에 드나들었다고 들었다. 동인천의 과거는 어떤 모습이었나. 

1970~1980년대에는 주변이 모두 시장이었다. 청과물 도소매 시장부터 건어물 가게, 옛날 과자 가게는 물론이고 목욕탕도 곳곳에 있었다. 한마디로 사람들로 북적였던 동네다. 당시 광신제면은 지역 주민만 상대하기에도 바빴다. 연안부두나 월미도에서 음식 장사하는 이들이 재료를 직접 구매하러 오기도 하고, 직원들이 차량에 한가득 짐을 실은 뒤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배달하기도 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에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상권이 급속도로 침체하더니, 가게들이 하나둘 동인천을 떠나 신시가지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공영 주차장 자리에는 원래 청과물 경매 시장이 있었고, 기름집으로 바뀐 자리에도 유명한 목욕탕이 있었다. 지금은 상권이 제 기능을 잃어 행인이 많이 줄었다. 음식 장사하는 이들이 제면소에 찾아오거나, 그저 옛 생각이 나서 가끔 들르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광신제면 쫄면을 찾는 이들은 여전히 적지 않을 듯한데.

맞다. 입소문이 퍼져 인천뿐 아니라 서울·충청·경상·부산·제주 지역 등 전국 각지의 50곳 넘는 식당에 납품한다. 인천에 있는 식당은 그중 열댓 개 정도인데, 계산동·작전동·송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가져간다. 송현만두와 명동분식은 우리 부부가 운영하기 이전부터 납품했으니까 20년 넘게 거래한 셈이다. 최근에 생긴 국숫집 개항면도 장사가 잘되는지 하루에 30kg씩 가져간다. 서울에서 시작한 쫄면 전문적 자성당도 광신제면의 면을 사용한다. 5~6년 전에 자성당의 창업자들이 쫄면을 공급해달라고 찾아왔었다. 여러 가게의 쫄면을 사용해봤는데, 우리 것이 제일 맛있다고 하더라. 자성당 쫄면이 맛있다고 소문나면서 덩달아 광신제면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 쫄면을 취급하는 가게들은 대부분 장사가 잘된다고 들었다. 사람들이 잊지 않고 지금까지 찾아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도매뿐 아니라 소매 직거래도 이뤄지나. 

시중에서 판매되는 다른 쫄면에 비해 가격이 조금 높다 보니, 유통업체를 거치면 마진이 거의 남지 않아 우리가 직접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주로 미식가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거나 전화 주문을 통해 택배로 받는 식이다. 온라인으로 판매하려고 했지만, 시스템 구축부터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 취득까지 복잡한 검증 절차를 밟아야 하더라. 그래서 개별 구매 문의가 들어올 때만 판매한다. 


광신제면이 이토록 오래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믿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옛날 방식 그대로 정직하게 만든다. 다른 비결은 없다.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방부제를 쓰지 않는 것 뿐이다. 과거에 저렴한 밀가루를 써보기도 했지만, 완성된 면발의 품질이 성에 차지 않더라. 방부제를 넣으면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보관하기 편할 것이다. 하지만 불편해도 지금처럼 만드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정직하게 만든다는 원칙은 지키되, 사람들 입맛은 변하기 마련이니 맛에는 조금씩 변화를 준다. 최근에는 계산동에서 쫄면 장사를 하는 아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받기도 한다. 



1시간 가량 건조된 쫄면은 포장용 비닐에 담긴다


앞으로의 운영 계획이 궁금하다. 

내년부터 아들이 인천 가좌동에 있는 공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지금의 제면소는 시설이 낡은 데다 우리 부부가 수작업으로 생산하다 보니, 수요가 많아도 공급량을 맞추기 어려워 주문을 거절하는 일이 빈번하다. 앞으로는 공장 가동을 통해 물량 공급을 늘려 본격적인 온라인 판매에 돌입하려 한다. 현재는 위생 관리, 보관 및 운송 관리 등 시스템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여기에서 체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변함없이 일할 것이다. 거친 풍파를 건딘 제면소인 만큼,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성수>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에디터

박지은

jepark@urbanpl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