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로 뉴트로 로드 톺아보기

싸리나무 고개의 이유 있는 변신

조윤|

애관극장에서 배다리사거리를 향해 걷다 보면 완만한 언덕길이 이어진다. 예로부터 싸리나무가 많아 ‘싸리재’라 불리던 이곳은 개항 이래 서울로 향하는 길목으로서 서구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동네 중 하나였다. 최신 유행의 집결지였던 과거를 뒤로하고 토박이의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싸리재는 최근 ‘개항로’라는 이름 아래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 오랜 시간 이 길 위에 숨죽인 채 남아 있던 과거의 파편들은 오늘날 찬란한 유산으로 거듭난다. 




개항로 뉴트로 로드

개항로의 공간들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서울의 핫플레이스에서 으레 보이는 천편일률적인 유행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꽃무늬 벽지와 형광 네온사인 등 정체불명의 요소가 혼재된 뉴트로 콘셉트에서 벗어나 ‘개항로 뉴트로’를 개척한 공간들이 있다.






플레이스 막 인천
인천시 중구 개항로 75-1


오래된 양복점 사이에 자리 잡은 플레이스막(PLACE MAK) 인천은 신진 작가를 위한 전시 공간이다. 간판 위 창문에 붙은 ‘잉글랜드’라는 글자를 통해 한때 이곳 또한 양복점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담한 규모이지만 회화, 영상, 행위예술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로 알차게 채워진다. 일반적으로 갤러리 내부가 하얗고 깔끔한 모습인 것과 달리, 이곳은 표면이 불규칙하게 닳은 벽돌과 칠이 벗겨진 시멘트 기둥을 훤히 내보이고 있다. 그 솔직한 투박함이야말로 예술과 대중 사이의 경계를 지우려는 플레이스막의 지향점에 꼭 들어맞는다.







메콩사롱
인천시 중구 참외전로158번길 14


골목이 많은 개항로에서 앞만 보고 걷다가는 숨은 보석을 놓치기 십상이다. 개항로 옆 어느 골목, 화사한 분홍빛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이곳은 베트남 음식점 메콩사롱이다. 한때 점집이었던 공간에 노란색 벽과 물빛 테이블, 동인천 곳곳에서 수집한 골동품을 더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특히 햇살과 식물에 둘러싸인 테라스 자리는 마치 작은 정원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에 앉아 산뜻한 향을 머금은 베트남 요리를 즐기고 있노라면 머나먼 여행지에 온 듯 시간이 한가롭게 흘러간다.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
인천시 중구 참외전로174번길 8-1


개항로 끝자락에서 밤낮으로 빛을 발하는 이곳은 백열전구 제조사 일광전구의 쇼룸 겸 갤러리 카페인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다. ‘빛의 집’이라는 이름답게 이곳의 주인공은 단연 조명이다. 1층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전구 제조 기계와 더불어 각 방의 특성에 따라 형태와 밝기를 달리하는 조명은 라이트하우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산부인과였던 앞 건물과 사택이었던 뒤 건물의 구조를 살려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공간을 연출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세심히 꾸민 공간에 매일 직접 구워내는 디저트가 더해져 눈과 입을 넉넉히 만족시킨다.







개항로통닭
인천시 중구 참외전로 164


최근 가장 개항로다운 공간을 꼽는다면 이곳이 아닐까. 개항로통닭은 1937년에 지은 건물의 대폿집, 악기상, 통닭집 그리고 2층의 다방을 터서 완성한 공간이다. 인천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누군가의 손때 묻은 물건으로 실내 곳곳을 채워 촌스러운 듯 정겨운 모습이다. 양배추 샐러드를 곁들인 옛날식 전기구이 통닭은 공간의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이런 매력 덕분인지 개항로통닭은 개점 3개월 만에 인근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해가저물면 어르신과 젊은이가 한데 둘러앉아 맥주잔을 부딪치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인천 1》 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보러가기

에디터

조윤

yjo@urbanpl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