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강남》 미리보기 #4

욕망이 춤추는 땅, 강남 엑소더스는 가능할까?

경신원|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5,107만 9,400명)의 약 3%, 서울 인구(990만 9,400명)의 약 16%가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 살고 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과밀화된 구시가지의 인구 분산과 서울의 균형 발전을 위해 개발되기 시작한 ‘강남’은 세인의 많은 관심과 비판을 동시에 받는, 사회적으로 경계화된 독특한 공간이다. 개발 과정에서부터 이미 집중적인 투기의 대상이 됐던 이곳은 ‘복부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의 욕망이 춤추는 공간이다.




빨간 바지의 그녀들

강남구는 정부의 남서울 개발계획에 따라 1975년 탄생했다. 당시 강남구의 면적은 상당히 커서 오늘날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모두 포함했다. 이듬해인 1976년 반포동, 압구정동, 청담동, 도곡동이 ‘아파트 지구’로 지정됐다. 1970년대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하게 됐고, 집다운 집에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팽배해 있었다.

이 일대의 토지는 집중적인 투기의 대상이 됐다. 일부 상류층 가정주부도 강남 개발 열풍에 합류했다. ‘투기를 위해 복덕방을 수시로 출입하는 상류층 부인’을 의미하는 ‘복부인’이라는 신조어가 언론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1978년 특혜 분양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가 투기의 상징적인 대상이 되면서 복부인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됐다(정기수, 1990). 현대아파트는 분양과 동시에 5,000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당시 분양가가 1평당(3.3m²) 44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30평 이상의 아파트 한 채 가격에 해당하는 금액이 프리미엄으로 붙은 것이다.

이 무렵 임권택 감독은 사회고발 블랙 코미디 영화 ‘복부인’을 제작해 광복절날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주연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한혜숙이 맡았고, 서울에서만 1만 5,761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는 생활비 문제로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던 주인공(한여사)이 운 좋게 아파트 입주 청약에 당첨돼 하루아침에 오백만 원이라는 큰돈을 벌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복부인이 된 한여사는 토지사기단과 함께 부동산 투기에 가담해 거액의 재산을 모으게 되지만, 결국 사기단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경찰에 연행된다.

영화의 결말과는 달리 우리 사회의 복부인은 빨간 바지를 입고 별다른 제약 없이 강남의 투기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복부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빨간 바지’는 연희동의 그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씨를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복부인들이 휩쓸고 간 지역은 어김없이 땅값이 올랐고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겼다.




식을 줄 모르는 욕망의 결집체

강남이라는 지역에 대한 세인의 관심과 비판은 점점 더 벌어지는 강남과 비강남 지역, 혹은 강남과 강북 간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2018년 서울연구원에서 발표한 ‘2016 서울서베이’ 자료를 살펴보면, 부동산 가치뿐만 아니라 소득수준, 가구주의 학력, 주거환경 만족도 등에서도 두 지역 간의 차이가 뚜렷이 나타난다.

월평균 가구소득이 가장 높은 서초구(500~550만 원)와 가장 낮은 중구(345만 원)와의 소득 격차는 약 170만 원이고, 4년제 대졸 이상 학력의 가구주 비율이 가장 높은 강남구(56%)는 가장 낮은 강북구(30.8%)보다 약 25% 정도 높다. 또한 자치구별 주거환경 만족도 결과, 만족도 10점 만점에 서초구가 6.5점으로 가장 높고 중랑구가 5.77점으로 가장 낮다.

강남과 강북의 격차는 부동산 가치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20년 1월 19일 부동산 114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강남 3구 지역의 아파트 가구당 평균 매매가는 약 17억 2천만 원(2019년 12월 기준)으로 강북 3구(노원, 도봉, 강북) 지역(약 4억 3,300만 원~5억 10만 원)의 최대 4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사회적 욕망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곳의 과열된 주택시장을 규제하기 위해 역대 정부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강남의 주택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더구나 정부의 대출 규제로 이제는 현금 부자가 아닌 이상 강남에 주택을 매입할 수도 없게 됐다. 정부의 규제가 강화될수록 소수에게만 자가 보유의 기회가 주어지는 강남 주택의 자산적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강남 엑소더스는 가능할까?

강남에는, 특히 아파트에는 절대로 살고 싶지 않다던 지인이 최근 들어 ‘강남에 아파트가 한 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이야기했다. 지인은 강남의 아파트를 ‘돈을 찍어내는 기계’ 같다는 표현을 하면서 그걸 담보로 뭐라도 – 나이 드신 부모님을 돌보는 일부터, 사업 자금, 자신의 노후 생활 등-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너도 나도 삭막한 아파트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아파트라는 주택 형태가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다. 아파트가 지닌 환금성과 재산증식 효과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아파트의 수익률은 60%로 주식과 정기예금보다 2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재학, 2018). 더구나 강북의 아파트 4채와 맞먹는 강남의 아파트 한 채가 지닌 자산적 가치는 오죽할까! 1970년대 서울의 균형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강남’이라는 공간은 오늘날 오직 3%만이 거주할 수 있는, 사회적 양극화의 대표적인 공간이 됐다. 강남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사회적 욕망을 어떻게 분산시킬 수 있을까?



1990년대 초반 사람들은 강남의 낡은 아파트를 버리고 너도 나도 꿈의 신도시, 특히 제2의 강남인 분당으로 향했다. 1년 이상 앞당겨져 완성된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으로 우리나라 총 주택(1989년 기준 645만 호)의 33%가 지어졌다. 연평균 10% 이상의 높은 인구성장률을 기록하던 서울의 인구가 1990년에서 1995년 사이에 -3.6%로 처음으로 감소했다. 주택 가격도 1991년을 기점으로 처음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주택 가격 상승률은 -2.1%, 서울은 -0.5%를 기록했다. 주택보급률도 1991년 74.2%에서 1997년 92%로 꾸준히 상승했다.

이는 비단 주택 공급의 확대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신도시에 대한 사회적 욕망은 강남을 버릴 만큼 강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규제뿐만 아니라 ‘전국의 돈을 끌어들이는(고재학, 2018)’ 강남이 지닌 지역적 가치를 비강남권이, 비수도권 지역이 갖도록 하는 것이다. ‘제2, 제3의 강남 만들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신조어)’까지 해가며 강남 진입을 서두르는 밀레니얼에게 굳이 강남에 살지 않아도 될 이유가, 그들을 설득할 근거가 필요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관점의 전환이다. ‘강남 바라기’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대한민국의 중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1990년대 초반과 같은 출강남의 엑소더스(exodus)를 다시 한 번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강남》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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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아는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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