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연희》 미리보기 #1

함께 즐기는 느긋한 테이블 - 나카가와 히데코

고현, 김남주|

연희동의 아늑한 주택에 살면서 14년째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을 운영하는 나카가와 히데코. 그를 닮아 정갈하고 아늑한 요리 공간에서는 감칠맛 나는 음식과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요리하고 완성된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마음을 열고 위안을 얻는다.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여유롭고 느긋한 삶이 연희동에 있다.




미식가의 생강 쿠키

연희동 골목 깊숙이 자리한 파란색 담장의 이층집 대문을 열자, 남프랑스의 어느 집에 놀러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마당에는 각종 허브와 잔잔한 들꽃이 활짝 피어 있다. 나카가와 히데코가 운영하는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이다. 생강 쿠키란 뜻의 독일어 ‘레브쿠헨’과 미식가란 의미의 ‘구르메’가 요리 교실 이름이다. 그에게 맛의 놀라움을 깨닫게 해준 생강 쿠키처럼 사람들과 색다른 재료로 만든 다양한 레시피를 나누고 싶은 히데코의 마음이 엿보인다. 

수업이 시작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요리 교실에는 벌써 한두 명이 도착해 히데코와 이야기를 나누며 재료를 다듬고 있다. 파프리카를 불에 굽는 능숙한 손길을 보며 ‘오늘 수업을 도와주러 온 제자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수강생이었다. 그에겐 이번이 두 번째 수업이었다.


히데코는 일찍 오는 수강생과 재료를 다듬고 설거지를 함께 한다. 설거지를 할 때는 와인잔과 나무 도마 닦는 법도 하나하나 알려준다. “요리의 비법만 알려주기보다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익혀 스스로 요리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재료를 다듬고 도구를 정리하는 것 모두가 요리의 과정이라는 히데코 특유의 철학이 수업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조리대를 둘러싸고 왁자지껄하게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 무척이나 활기차 보였다. 냉동 음식을 조리해 먹는 횟수가 늘어가던 차에 새삼 ‘요리가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는 살아가는 데 필요하잖아요.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소중함, 요리 자체에 대한 도전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이 요리 교실을 계속하게 하는 것 같아요.”



 나카가와 히데코가 운영하는 구르메 레브쿠헨 간판


연희동의 ‘킨포크’

성별 관계없이, 20대부터 70대까지, 일반 직장인부터 요리사까지 다양한 사람이 찾아오는 히데코의 요리 교실은 한 달 수강생만 150명이 넘는다. 수강생 대부분이 한 번 수업을 들으면 짧게는 2년, 길게는 7~8년간 듣는다고 하니, 대체 빈 자리가 나지 않는 이곳의 특별한 매력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요리 교실에 참여해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간의 궁금증이 단번에 풀렸다.

히데코가 어느 정도 설명을 하고 적당히 시범을 보이면 4~6명의 수강생이 레시피를 보며 각자 음식을 만든다. 문어나 꽃게 등의 재료를 손질하며 서너 가지 요리를 단시간에 만들어 낸다. 메인 디시 한두 가지에 샐러드, 디저트까지. 여러 개의 요리를 메인 부엌과 거실의 아일랜드 테이블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요리 교실의 시간은 꽤나 정신없이 흘러간다. 신기한 것은 분주함 속에서도 여유로운 리듬이 수업의 중심을 잡는다는 점이다. 

수강생들은 재료를 다듬으며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요리하는 중간중간 종이에 꼼꼼히 메모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요리가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뿌듯한 성취감이 밀려온다. 다 된 요리는 그릇에 예쁘게 담아 식탁으로 가져가고, 히데코가 요리와 잘 맞는 와인을 가져와 각자의 잔에 따르면 요리 교실의 백미, 오붓한 파티가 시작된다. 

“요즘 혼밥, 혼술의 시대라고 하지만 다들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아요.”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는 걸 좋아하던 히데코는 지인의 권유로 2008년 요리 교실을 열었다. 계절이 13번 바뀌는 동안에도 요리 교실의 유쾌한 리듬은 변함없다. 여름에는 허브가 가득한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고, 겨울에는 따듯한 전골 요리와 잘 데운 사케를 사람들과 나눈다. 전 세계를 여행하듯 다양한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소박한 일상 속에서 요리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함께 즐기는 멋이 가득한 공간, 주민들은 이곳을 연희동의 킨포크(kinfolk)라고 부른다.


히데코의 행복한 마법

정성껏 만든 요리는 모두를 평온하고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누면 배가 된다. 히데코의 구르메 레브쿠헨에서는 모두가 행복한 마법에 걸린다. 느리지만 천천히, 그가 정성껏 가꾼 요리 교실과 연희동 일상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과정이 즐거워요. 초반에는 거의 주말마다 대형 바비큐 그릴에 숯불을 피우고 냉장고에서 있는 모든 재료를 꺼내 와 구워 먹었어요. 고기와 채소를 굽는 고소한 냄새와 와인에 취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가득한 분위기를 좋아해요.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빙글빙글 춤을 추기도 하죠. 가끔은 시비가 붙기도 하고, 묻지도 않은 실연담에 울음을 터뜨리는 이도 있고요. 바깥공기와 함께 즐기는 시끌벅적한 시간들을 공유하는 매력 때문에 바비큐 파티를 계속하는 것 같아요. 



                                   구르메 레브쿠헨에서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쿠킹 클래스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다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20년 넘게 서울에 살고 있어요. 연희동에서만 13년째고요. 연희동은 어떤 동네인가요?

스페인에 살다가 1994년에 한국에 왔어요. 당시 연세대 유학생으로 연희동에서 하숙한 적이 있으니, 연희동은 추억이 많은 장소지요. 그래서 가끔 우리 집 옥상이나 동네 뒷산인 궁동산 정상에 올라 연희동을 바라볼 때마다 동화 속 나라처럼 보이기도 해요.

동네 커뮤니티도 잘되어 있어서 좋아요. 연희동 사진관이 있는 오거리 쪽에 라 부아진 플라워 스튜디오라는 꽃집이 있는데 연희동 사랑방으로 통해요. 연희동 토박이인 예술가와 작가, 이웃 상인들이 만나 다양하게 교류하죠. 또 요리 교실에 필요한 재료를 사러 하루 한 번은 사러가 마트에 가는데요, 이곳은 원래 시장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을 입점시켜 재래시장과 공존하도록 꾀한 곳이에요. 오래된 상인이 많아 편해요. 이국적인 상품도 잘 구비돼 있어 요리 교실에서 자주 쓰는 각종 허브, 희귀한 채소, 디종 머스터드 같은 수입품을 언제든 구할 수 있죠.


20년 전의연희동과 지금의 연희동은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굳이 강남까지 가지 않더라도 연희동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화덕에 구운 피자를 먹을 수 있게 되었죠. 오래된 집이 새집으로 바뀌거나 개조되어 1층에 세련된 갤러리가 들어서기도 했고요. 많은 게 달라졌다고 볼 수 있죠.


연희동, 구르메 레브쿠헨, 히데코는 하나의 리듬처럼 삼박자가 딱 맞아요. 어떻게 연희동에 자리 잡게 됐나요?

아들 둘이 초등학생 무렵일 때였어요. 아이들은 매일 함께 산책하는 대형견을 키우고 싶어 했고, 남편은 남들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바비큐를 하고 싶어 했죠. 저는 정원에 꽃과 허브를 심고, 맑게 갠 날에는 바깥에 이불과 빨래를 널고 싶었고요. 가족 모두의 꿈을 이루고자 아파트 생활을 접고 작고 낡은 집이라도 독채로 이사하기로 결심했죠. 그렇게 연희동 주택으로 오게 됐어요.

연희동 독채로 이사 오고 3년이 지나면 바비큐를 하지 않는다는 연희동 징크스를 들었어요. 그런데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바비큐가 계속된다고요. 제가 워낙 손님을 초대해 음식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손님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어떤 요리가 좋을지 생각하고, 어떤 안주를 만들지 궁리하는 이런 변화가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있어요. 아파트 문화에서 탈출해 연희동으로 온 만큼 맑은 날 마음껏 이불을 널 수 있는 동네,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는 동네의 모습이 오래오래 유지되었으면 해요.



 히데코는 쿠킹 클래스에 참여한 수강생에게 언제나 세심하게  요리의 즐거움을 전한다


요리 교실에서 수강생에게 전달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요리하는 즐거움요. 수업 메뉴를 구성할 때도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즐거움에 중점을 둬요. 언제나 애피타이저와 수프, 메인 디시, 샐러드, 디저트의 기본 코스를 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제철 음식 재료와 그때그때 몰두하고 있는 재료를 응용한 메뉴를 여러 가지 형태로 제안하죠. 다양한 레시피로 식자재 간 궁합을 맞추는 법 등을 알려주니 수강생분들도 흥미롭게 배우는 것 같아요. 단, 레시피는 레시피일 뿐. 사용하는 음식 재료와 만드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향이 배고, 먹는 사람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요. 누군가를 위해 만드는 즐거움, 함께 먹는 즐거움을 전하고 싶어요.


요리에 대한 애정이 따듯하게 전해져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해요.

저는 셰프, 요리 연구가보다 ‘키친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어요. 유명한 요리학교를 나온 셰프는 아니지만 제가 일하고 생각하는 많은 것이 부엌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요리를 통해 다양한 분과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새로 시도하려고 계획 중인 일들을 소개해주세요.

코로나19로 못 하고 있는 계획이 너무 많은데요, 20대에게 요리에 대한 즐거움을 알려주는 공개 요리 수업을 진행하고 싶어요. 적지 않은 사람이 그렇지만, 특히 20대 청년의 경우 여러 이유로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잖아요. 직접 요리하고 함께 나누는 당연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더라고요. 프라이팬과 가스레인지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다양한 요리법과 요리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요.

지금 에세이도 한 권 준비하고 있어요. 강의나 책 쓰기 외에 각 분야의 친구들이나 다른 나라 문화와 음식으로 컬래버레이션하는 작업도 계획하고 있고요. 음식에 관한 모든 일을 경계 없이 해나가고 싶어요.


에디터

* 편집자: 고현

고현

김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