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존재감만 놓고 보자면 매튜 다우마를 빼놓을 수 없겠다. 미디어에서 주로 아이돌 스타 전소미의 아버지로 소환되곤 하지만, 연희동 주민들은 도리어 매튜의 딸 전소미라 부를 때가 많으니 말이다. 동네 이웃들과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나누는 그의 한국 거주 이력은 자그마치 30년. 캐나다 태권도 시범단으로 한국을 처음 찾았고,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며 정착했다고. 한때는 가족들과 캐나다로 돌아가는 계획을 세웠다가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하고 마음을 바꿨다. 산이 포개진 고즈넉한 주택가의 이층집. 그렇게 10년 차 연희동 주민이 된 그는 최근 이국적 미식 문화를 동네 주민들에게 전하고 있다.
파란만장 직업 연대기
매튜 다우마는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조부는 네덜란드계 이민자였다. 여기에 한국까지 3개국에 걸친 국적만큼 그의 직업 연대기도 꽤 복잡다단하다. 한국에서 시작한 직업은 태권도 시범단 선수였으나 그가 어릴 적부터 선망하던 직업은 사진기자였다. 어느 날 아내에게 보험 해약금을 건네 받은 그는 당장 카메라부터 샀다. 다음 날 <LA 타임스> 서울 지국장을 만나면서 사진기자가 된 것은 운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무보수로 시작했지만, 곧 정식 고용되어 4년 가까이 일하면서 1면 톱기사 사진을 5차례나 실을 만큼 실력도 인정받았다. 국제 면을 다루는 <LA 타임스>에서 한국 뉴스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데, 그가 외국인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아이템을 제안해 취재한 기사들이 채택된 것이라고. 이후 교황 방한, 네덜란드 여왕 방한 등 굵직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기록 촬영을 도맡기도 했다.
사진기자 외에도 매튜 다우마는 모델, 메이크업 아티스트, 영어 교재 집필자 등 자신의 능력과 왕성한 호기심을 살린 직업을 두루 거쳤다. 또한 <태양의 후예> <국제시장> <창궐> 등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영역을 확장했다. TV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 <정글의 법칙> 등에서는 특유의 강인한 체력을 자랑하며 방송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연희동의 연어 아저씨
아무리 ‘부캐의 시대’라 해도, 매튜 다우마의 행보는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할 만큼 폭넓은 분야를 아우른다. 한동안 그를 방송인으로 여기는 이도 적지 않았지만, 현재 매튜의 진짜 ‘본캐’는 훈제 연어 마스터다. 2020년 연희동 집 근처에서 운영을 시작한 훈제 연어 전문점 롱보트 스모커가 그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훈제 연어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음식 문화다. 바이킹의 ‘롱보트’에서 착안한 이름처럼, 북유럽과 캐나다 등 북극권 국가에서 흔하게 즐기는 메뉴지만 말이다. 매튜 역시 캐나다에 살 때 즐겨 먹던 훈제 연어를 오랜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레시피로 완성했고, 혼자만 알기 아까운 훈제 연어의 매력을 방문객에게 차근차근 알리는 중이다. 좁은 작업실에서 연어를 훈연하고 최적의 온도에서 숙성시키며 다양한 맛의 훈제 연어를 만드는 일은 그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어떤 분야에서든 늘 열정을 쏟아내는 매튜 다우마의 끝없는 에너지와 호기심이 이제 연희동의 롱보트 스모커의 훈제 연어로 옮겨가는 중이다.
매튜 다우마가 운영하는 롱보트 스모커의 훈제 어란(위)과 연어(아래).
매튜 다우마의 분주한 주말
한산한 일요일 오전, 매튜 다우마는 롱보트 스모커의 작업실과 훈연실을 바쁘게 오르내리고 있다. 매주 노르웨이에서 직수입한 최상급 생연어를 직접 훈제하고, 포장하는 작업만으로도 반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작업을 마친 오후에는 딸 소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로 한 촬영 스케줄이 기다리는 중이다. 그렇게 휴일의 빈틈을 내 매튜 다우마와 만나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 정착한 지 30년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연희동에는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딸 소미가 6학년 때 이사했으니 연희동에 거주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사실 캐나다로 돌아가는 걸 고민하던 중 연희동의 한 주택에 반해 계획을 바꿨어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건을 모두 갖춘 단독주택이었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언제든 새소리가 들리는 자연이 무척 마음에 들었거든요. 연희동은 대학병원도 근처에 있고, 서울 중심부와도 가깝고, 교외로 나가기에도 좋은 동네예요.
실제 연희동에 살아보니 어떤가요?
처음 이사왔을 때부터 앞집 사람과 인사를 나눴어요. 외국처럼 서로 음식도 나눠 먹고, 눈 오면 대신 쓸어주기도 하며 친밀한 사이가 됐죠. 연희동은 이웃들이 한 동네에 사는 동질감이 강해서 좋아요.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기꺼이 서로 돕는 문화가 있지요.
그간 한국에서 다양한 직업을 거쳤는데요, 가장 애착이 남는 일을 꼽는다면요?
어릴 적 꿈인 사진기자 시절이 기억에 남아요. 정말 즐겁게 일했는데, 고정 수입이 없으니 늘 불안했죠. 게다가 딸 소미가 유명해지면서 어느 순간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기 시작하더라고요. 점차 촬영에 집중할 수 없게 되어 미련 없이 그만두었어요. 그 대신 지금은 취미로 사진 촬영을 즐기고 있어요. 여행을 떠날 때 어떤 촬영 장비를 챙기면 좋을지 고민부터 하죠.
2020년 연희동에 훈제 연어 전문점 롱보트 스모커를 열었어요.
사실 10년 전부터 집에서 취미 삼아 훈제 연어를 만들었어요. 어릴 때 캐나다 이리호(Lake Erie) 근처에 살면서 가족들이랑 훈제 연어를 즐겨 먹었거든요.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캐나다에서 훈제 연어를 맛봤는데, 짠맛에 깜짝 놀랐어요. 저도 한국인 입맛이 다된 것죠.(웃음) 사실 한국인은 미각이 굉장히 발달했다고 생각해요. 짠맛과 단맛, 신맛을 예민하게 구별해내니까요.
취미처럼 시작한 훈제 연어를 만들면서 차츰 한국인 입맛에 맞게 양념과 숙성 시간을 바꿔가며 테스트했어요. 그리고 독학으로 훈제한 연어 사진을 SNS에 올리다 보니, 외국에서 저처럼 훈제 연어를 만드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됐고요. 그렇게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며 집에서 만들다가 한국에는 생소한 훈제 연어 전문 상점을 열어보기로 결심했죠.
메뉴판을 보니 훈제 연어의 세계가 굉장히 넓은 것 같아요.
사실 훈제 연어는 일종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적 요소가 내재돼 있고, 무엇보다 열정이 있어야 하죠. 쉬운 일이면 누구나 시도하겠지만,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에요. 일단 저는 냉동이 아닌 생연어를 노르웨이에서 직접 수입해요. 열훈제는 캐나다식이고, 냉훈제는 바이킹식이에 가까운데 훈연하는 온도와 양념, 숙성 과정 자체가 달라요. 무엇보다 훈제 연어의 맛은 연기의 풍미가 좌우하죠. 연어는 과일 나무와 잘 맞아서 훈연할 때 미국산 검은체리나무를 사용하는데, 조만간 한국 과수원의 배나무를 사용해볼 계획이에요.
훈제 연어 전문점이라니 다소 생소한데, 동네 주민들 반응은 어떤가요?
의외로 훈제 연어를 좋아하는 마니아가 꽤 있어요. 한번은 프랑스 출신 소믈리에가 와서 저희 훈제 연어를 맛보고는 잘 어울리는 페어링 와인을 추천해주기도 했죠. 언젠가 남은 재료로 연어포를 만들어봤는데, 마침 연희동에는 반려견과 산책하는 주민이 많잖아요? 그래서 함께 온 강아지에게 연어포를 간식으로 줬는데 너무 좋아해서 아예 강아지별 간식 그릇을 마련해뒀어요. 이제는 반려견이 산책할 때 일부러 저희 가게 방향으로 주인을 끌고 올 정도라고 해요.
매튜는 자신이 연구한 스파이스로 절인 연어를 최적의 온도에서 훈연한다.
이웃 상점과 교류를 하기도 하나요?
에브리띵베이글에서 저희 훈제 연어를 사용한 샌드위치 메뉴를 내고 있어요. 가까운 뉘블랑쉬의 사워도우 빵 또한 저희 연어랑 잘 어울려서 즐겨 먹는 편이에요. 길 건너 막거리 양조장 같이 대표님과도 친하게 지내고, 링키지 버거도 자주 찾는 곳 중 하나죠.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열정을 갖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 반가워요.
앞으로 롱보트 스모커에서 해보고 싶은 계획이 있나요?
매주 연어를 훈제하면서 꼼꼼하게 기록을 남겨뒀어요. 저만의 비밀 레시피를 만들어낸 셈이죠. 곧 새로운 기계를 들여 훈제 시스템을 좀 더 업그레이드할 계획이에요. 사실 한국에서 시중에 파는 연어는 특유의 비린 맛 때문에 평소 잘 먹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훈제한 연어는 비린 맛이 없어 질리지 않죠. 많은 사람이 훈제 연어의 매력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롱보트 스모커를 운영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