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전주》 미리보기 #1

슬기로운 음주 문화 '가맥 생활'

박소율|

작은 슈퍼에서 탁자와 의자 몇 개를 놓고 맥주를 팔며, 가게에서 맥주를 판다고 해 ‘가게맥주'라 불렀다. ‘가맥’ 또는 ‘가맥집’이라 통했고, 태동 시기는 1980년대 완산구 경원동 일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태나 마른 오징어 따위의 손쉬운 안주를 제공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맥주를 즐길 수 있어 전주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여기까지는 가맥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 <피아골>의 시나리오를 쓴 김종환의 자서전을 보면 1950년에 공신상회에서 하반영 화백과 맥주 몇 병을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공신상회는 가족회관 옆에 있었고, 도일상회로 상호를 바꾸었다. 이후 도일슈퍼로 개칭했고, 1980년대 들어서는 가족회관에서 비빔밥을 먹고 도일슈퍼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은 하나의 코스가 됐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도일슈퍼를 기억하는 전주 시민은 여전히 많다.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전주가 낳고 이제는 문화 콘텐츠가 된 가게맥주의 근본을 따라서.


전주 가맥의 근본 '전일갑오'


가게 한편에는 ‘전일수퍼’라 적힌 간판이, 다른 한편에는 ‘전일갑오’라 적힌 간판이 달려있다. 전일수퍼는 가게 사업자의 명칭이고, 전일갑오는 일반 음식점 사업자의 명칭이다. 벽면에는 방문한 이들이 남겨 놓은 흔적이 빼곡하고,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에서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분다. 

메뉴판이 없는 이곳에서 주문할 수 있는 안주는 황태구이, 갑오징어, 계란말이, 세 개가지다. 전일수퍼에서 과자를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일갑오의 대표 메뉴라면 단연 황태구이를 떠올릴테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황태는 강원도에 소재한 황태 덕장에서 자연 건조한 것으로, 크기가 크고, 바짝 말렸음에도 두툼한 두께를 자랑한다. 주인장이 연탄불에 노릇하게 구운 황태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가게 구석에 차곡차곡 쌓인 황태의 유혹적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주문하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다. 그러나 ‘전일갑오’의 ‘갑오’가 ‘갑오징어’에서 비룻됐다는 사실을 아는지. 이곳에서 이름값을 하는 메뉴는 갑오징어인 것이다. 다만 이는 물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 구워 놓지 않고, 주문과 동시에 조리를 시작한다. 오징어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여수산 갑오징어는 6~8월에 많이 잡히기 때문에 이때 방문하면 질 좋은 갑오징어 구이를 맛볼 수 있다.


전대생의 가맥 성지 '슬기네 가맥'


1991년 덕진동에서 개업한 ‘슬기슈퍼’는 햄전과 특제 양념 소스가 입소문 나며 동네 가맥집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슬기휴게실’을 지나 2007년 현재 전북대 앞 ‘슬기네 가맥(이하 슬기네)’에 이르렀다. 슬기네 외벽 한쪽에는 여태까지의 슬기네 역사가 훈장처럼 적혀 있다. 오후 4시, 아직 가게를 오픈하기 전이지만 한두 팀의 손님이 가게에서 들어서더니 익숙하게 맥주를 꺼내 자리를 잡는다. 5시가 가까워오자 주인장과 인사를 나누고 메뉴를 주문한다. 아직 안주가 나오지 않았지만 노란 조명 아래 분위기와 함께 얼굴도 붉게 익어간다. 해 질 녘의 슬기네는 남들보다 하루를 일찍 마무리하는 젊은이로 가득하다.

슬기네는 다양한 안주 메뉴를 자랑한다. 그러나 전북대생이 꼽는 ‘최애’ 안주는 단연 참치전이다. 햄, 양파, 당근을 비롯해 다양한 채소와 참치, 그리고 밥을 넣어 부쳐낸다. 대, 소 사이즈 중 고를 수 있으며, 기름에 지글지글 구워낸 참치전은 푸짐한 양배추 샐러드, 양념장과 함께 제공된다. 양념장을 고루 섞어 도톰한 참치전을 푹 찍어 먹되 양념장에 있는 청양고추를 얹는 것도 잊지 말자. 느끼한 맛을 싹 잡아준다. 


객사에서 제일 잘 나가 '달팽이슈퍼'


객사 한복판에 자리잡은 ‘달팽이슈퍼’는 노상의 포장마차에서 보이는 빨간 테이블, 의자로 매장을 가맥집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게다가 실제로 일반 음식점과 가게 사업자를 다 갖고 있는, 몇 없는 진짜 가게맥주 집이다. 간단하게 과자 한 봉지에 맥주 한 병만 먹고 가는 동네 손님부터 널찍한 가게를 꽉 채우는 단체까지 다양한 손님층이 찾는다. 

입구로 들어서면 주당을 위한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가게 한편에는 버너와 석쇠가 있고, 쥐포, 쫀드기 등 구워먹기 좋은 간단한 안주를 판매하니 이용해보자. 맥주는 먹을만큼 냉장고에서 꺼내 얼음 바스켓에 두고 차갑게 즐길 수 있다. 안주로는 가맥의 대표 메뉴인 ‘황태구이’를 추천한다. 바삭하게 구운 큼지막한 황태와 특별한 양념장, 그리고 시원한 맥주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 가위와 집게를 제공하지만, 손으로 직접 황태를 죽죽 찢어 결을 살려야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황태구이로 텁텁해진 입안을 맥주 한 모금으로 깔끔하게 하다 보면 금세 새 안주와 술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황태 아니고 촉태 '임실슈퍼가맥'


2대째 이어오는 ‘임실슈퍼가맥(이하 임실슈퍼)’는 김민경 주인장이 운영 중이다. 대표 메뉴는 황태에 수분을 추가해 일주일간 숙성한 황태포다. 맛과 재질이 촉촉해 손님들이 ‘촉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고소하고 쫀득한 식감으로 황태구이와는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임실슈퍼의 단골 손님이 촉태를 즐기는 방법은 색다르다. 촉태를 시켜 반쯤 먹고 난 뒤 남은 촉태를 구워달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촉태 구이를 임실슈퍼표 특제 소스에 푹 찍어 먹어보자. 주인장이 직접 만든 이 양념장은 일반 가맥집의 양념장보다 간이 삼삼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임실슈퍼의 진정한 백미는 안주를 시키면 기본으로 나오는 ‘술국’에 있다. 황태포 대가리와 콩나물, 두부, 수제비를 넣어 맑고 시원하게 끓였는데,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한 맛이 중독적이다. 아직 식사 전이라면 조심스레 “사장님, 수제비 많이요”라고 요청해보자. 가게에서 판매하는 햇반을 사서 말아먹는 것도 방법이다. 


※ 본 콘텐츠는 《아는동네 아는전주》 의 수록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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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최정순

박소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