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경기≫ 웹진 #1

지금, 다섯 가지 수원의 VIEW

이지현|

<아는동네 아는경기> 첫 번째 골목. 수원 화성 행리단길


모든 여행의 시작과 끝은 골목으로 통합니다. 어느 낯선 골목에서 누군가는 잠자던 호기심을 일깨우는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하고, 누군가는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잠시 로그아웃한 채 한갓진 골목을 걸으며 여유를 즐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래된 골목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더듬어가며 흥미로운 이야기 속을 탐험합니다. 경기도는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골목길이 될 수 있도록 관광테마골목 육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는동네가 소개할 경기도 골목 14곳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껏 몰랐던 경기도 구석구석의 매력을 경험하는 골목 여행자가 되어보세요. <아는동네 아는경기>는 10번에 걸쳐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여러분을 찾아옵니다.




지금, 다섯 가지 수원의 VIEW


“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시 한 구절은 도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대개 도시의 매력이란 구석구석을 살피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매력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수고로움 끝에 찾을 수 있는 결실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저 발길 따라 걷고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매력이 한껏 느껴지는 곳이 있다. 수원이 바로 그렇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곽이 산의 능선처럼 도시 위를 굽이굽이 흐르고, 오래된 문화유산이 시민들의 일상 속 일부로 자리하는 곳. 마치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의 줄기가 이어져 하나의 나무가 된 연리목처럼, 과거의 오랜 유산은 현재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한 몸을 이루며 오늘의 수원을 완성한다. 수원 행리단길을 걷다 마주칠 수 있는 다섯 가지의 뷰는 수원의 지금을 말해준다. 그 속에 수원이 지나온 시간과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한데 담겨 있다.


VIEW 1. 방화수류정의 용연 뷰






수원 중심부에 자리한 '수원화성'은 수원이라는 도시의 독보적인 인상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당대 동서양의 과학·기술을 결집해 만들었다는 이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건축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닌 동시에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수원화성의 동문인 창룡문과 북문인 장안문 사이에 있어 '동북각루(東北角樓)'라고도 불리는 ‘방화수류정’에 오르면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우선 방화수류정 아래 용연이라는 이름의 아담한 연못이 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멀리 수원시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특히 여름철이면 만발하는 연꽃이 연못 한편에 군집을 이루고, 연못 가장자리에 식생하는 오래된 능수버들이 수면 위로 가지와 이파리를 늘어뜨린 모양새는 공짜로 두 눈에 담는 것이 호사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수려한 풍경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용연 근처 나무 그늘에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한가로운 한낮의 피크닉을 즐긴다. 한낮의 풍경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곳은 SNS에서 야경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보름달이 용연 수면 위를 비추는 풍경이 수원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밤의 방화수류정은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퍽 궁금해진다. 본래 높은 지대에서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장소로 만들어졌지만, 동북각루라는 공식 명칭 대신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낭만적인 의미의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는 누각. 그건 아마도 예나 지금이나 누구든 이 위에 올라서면 나도 모르는 새 자연이 자아내는 흥취에 흠뻑 빠져들기 때문일 것이다.


VIEW 2. 화홍문의 수원천 뷰





방화수류정에서 걸어 내려온 걸음은 ‘화홍문’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화홍문은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수원천과 북쪽 성벽이 만나는 지점에 설치된 수문이다. 이때 ‘화(華)’는 화성을 뜻하고 ‘홍(虹)’은 무지개를 의미하는데, 이는 화홍문 하부에 무지개 모양처럼 둥근 아치형 수문 일곱 개가 설치되어 있는 까닭이다. 화홍문 또한 적군으로부터의 방어 및 감시 기능을 주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오늘날에는 잠시 걸음을 쉬어가며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누각의 역할에 충실하다. 사람들은 익숙한 듯 돌계단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둔 채 널따란 누마루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창틀에 걸터앉아 내려다 보이는 수원천 일대를 구경한다.





네모난 창틀 너머로 보이는 싱그러운 수원천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액자 같다. 봄이 되면 알록달록한 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무성해진 수풀과 잎사귀가 싱그러움을 더하고, 가을이면 곳곳이 단풍으로 물들며, 겨울이면 사위에 고요함이 깃들 풍경.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풍경 덕분에 자연이 선물한 한 폭의 그림은 언제 봐도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다. 화홍문에서 감상하는 수원천 뷰만큼이나 수원천을 따라 조금 걸어 나와 바라보는 화홍문의 모습도 근사하다. 비가 온 뒤 수원천의 물의 양이 많으면 물보라로 인해 무지개가 생겨나곤 한다는데, 이 모습 또한 옛사람들이 꼽은 수원팔경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정갈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더없이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게 공간을 채우며 풍경의 일부가 된 사람들의 존재가 아닐까 싶다.


VIEW 3. 라프터커피바의 장안문 뷰





‘임금이 행차하는 문’인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정문이자 북문이다. 보통 사대문 중에서는 남문이 중시되기 마련이지만, 수원화성을 축조한 정조가 지금의 서울인 한양에서 수원으로 행차할 때 첫 번째로 만나는 문이 바로 북문이었기 때문에 이를 정문으로 삼았다고 한다. 정조가 직접 지었다는 ‘장안(長安)’이란 이름에는 앞으로 더욱 융성한 도시가 되어 이 지역의 백성들이 영원토록 태평성대를 누리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마음처럼 성문 앞에 서면 거대한 크기와 웅장한 모양새에서 남다른 위세를 느낄 수 있는데, 실제로 장안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꼽힌다.







한때 이 거리는 좌우 성곽이 끊어진 채 성문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로터리 형태를 취하고 있어 안쪽으로의 접근이 어려웠다. 이후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성곽 복원 공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로터리의 일부가 남아 있는 지금의 변형된 십자 형태 교차로가 되었다. 덕분에 이제는 성곽길을 따라 장안문 위를 걸어볼 수도 있고, 원한다면 장안문으로 들어가 내부를 감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힘들여 걷지 않아도 장안문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장안문 앞에 자리한 ‘라프터커피바’는 날씨에 상관없이 성문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명당자리다. 볕 잘 드는 공간 내부에 앉으면 전면의 통창 가득 장안문이 담긴다. 평소 쉽게 보기 힘든 거대한 성문을 눈앞에 두고 음료 한 잔을 즐기고 있노라면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조차 하나의 특별한 경험이 된다.


VIEW 4. 정지영커피로스터즈의 성곽 뷰





최근 젊은 층을 수원으로 이끄는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행리단길’의 힙한 가게들이다. 행리단길은 화서문에서 성곽을 따라 장안문까지, 그리고 장안문에서 정조로를 따라 화성행궁까지를 둘레로 하는 행궁동 일대를 말한다. 본래 화성행궁 주변은 개발 제한 구역으로 지정되어 노후화된 주택과 한옥이 많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요즘 힙하다고 불리는 대부분의 지역이 그렇듯, 이를 리모델링하거나 재건축한 공간에 젊은 층의 취향을 사로잡는 카페, 음식점, 공방, 편집숍 등이 차례로 생겨나면서 어느새 수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골목이 되었다. 골목 구석구석에 보석 같은 가게들이 숨어 있지만, 이 중에서도 멋진 뷰를 원한다면 ‘정지영커피로스터즈’ 장안문점이 최고의 선택지다. 카페 루프탑에서 길게 뻗은 성곽 뷰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궁동을 지금의 행리단길로 만든 시초격으로 잘 알려진 정지영커피로스터즈는 장안문점을 시작으로 행궁동 내에만 여러 지점을 둘 정도로 수원 내에서 영향력 있는 로컬 브랜드 카페다. 로스터리 전문점을 표방하는 만큼 퀄리티 높은 커피를 선보이는 곳이다. 장안문점 역시 2층짜리 낡은 주택을 개조해 사용 중인데, 새 건물로 매끈하게 바꾸는 대신 리모델링 과정에서 구옥 특유의 빈티지한 분위기를 적당히 살린 감각이 멋스럽다. 층별 공간마다 독특한 건물 구조를 살린 매력적인 좌석들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명당 중의 명당은 단연 루프탑이다. 루프탑에 오르면 주변의 낮은 건물 너머로 성곽 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5.7㎞에 달하는 기다란 성곽을 따라 찬찬히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경사 없이 완만한 언덕을 따라 일(一) 자로 축조된 성벽의 단정한 모습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자꾸만 바라보고 싶어진다. 그야말로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풍경이다.


VIEW 5. 카페 초안의 수원천 버드나무 뷰




수원 곳곳을 걷다 보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있다. 바로 버드나무다. 수원천 주변은 물론이고 방화수류정 아래 용연 일대에도 도시의 긴 세월만큼 울창하게 자란 버드나무를 볼 수 있다. 수원에 버드나무가 많은 까닭은 ‘수원(水原)’이라는 도시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수원(水原)은 ‘물의 근원’을 의미하는데, 이는 예로부터 이곳이 물이 많은 지역이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었던 것. 이처럼 본래 버드나무가 많았던 이곳에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더 많은 버드나무를 가져다 심어 지반을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버드나무는 정조가 사랑하는 나무이기도 했다. 정조가 ‘버들 류(柳)’ 자를 써서 수원화성을 ‘유천성(柳川城)’이라 불렀으며, 수원천변에도 버드나무가 많아 이를 ‘유천(柳川)’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실제로 남아 있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버드나무가 수원을 대표하는 나무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인다.






특히 물 위로 가지와 이파리를 휘늘어뜨린 수양버들이 천변 양측에 즐비한 모습은 예로부터 수원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풍경이다. 수원천 앞에 자리한 카페 초안은 이처럼 운치 있는 풍경을 즐기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버들잎을 눈으로 즐기며 커피 한 잔과 디저트를 곁들여 본다. 맛 좋은 음식과 술을 벗 삼아 버드나무 잎을 불며 풍류를 즐기는 것이 옛 선조들이 낭만을 즐기는 방식이었다면, 바로 이 시간이 오늘날 우리가 낭만을 즐기는 방식일 것이다.


사진. 황지현

에디터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