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경기≫ 웹진 #2

양평 숲으로 떠난 도시생활자

이지현|

<아는동네 아는경기> 두 번째 골목. 양평 경기천년 테마골목


모든 여행의 시작과 끝은 골목으로 통합니다. 어느 낯선 골목에서 누군가는 잠자던 호기심을 일깨우는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하고, 누군가는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잠시 로그아웃한 채 한갓진 골목을 걸으며 여유를 즐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래된 골목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더듬어가며 흥미로운 이야기 속을 탐험합니다. 경기도는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골목길이 될 수 있도록 관광테마골목 육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는동네가 소개할 경기도 골목 15곳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껏 몰랐던 경기도 구석구석의 매력을 경험하는 골목 여행자가 되어보세요. <아는동네 아는경기>는 10번에 걸쳐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여러분을 찾아옵니다.



양평 숲으로 떠난 도시생활자


도시생활자는 종종, 아니 생각보다 자주 도시를 떠나는 꿈을 꾼다. 일분일초가 바쁘게 흐르는 도시의 삶은 일상에 편리함을 더해주는 것들로 가득하지만, 때로는 이들로부터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아는 탓이다. 온갖 복잡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목적지로 삼는 곳은 양평이다. 지역의 절반 이상이 산지로 이루어진 양평은 어느 곳을 향해 달려도 드넓은 숲을 만날 수 있다. 맑은 공기와 푸르른 자연의 것들로 가득 찬 숲속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답답했던 가슴께는 가벼워지고 쓸데없는 생각을 비워낸 머릿속은 한결 단순해진다. 숲속에서는 도시에서 중요하게 보이던 것들이 사소해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잠시 잊고 지낸 것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건 양평의 맑은 하늘 아래, 어느 깊은 숲속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이다.


나만의 정원을 찾아서



체코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카렐 차페크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건물들로 빽빽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정원이 딸린 집이란 꿈에서나 그리는 이상향에 가깝고, 나만의 화단을 갖는 것조차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가 많다. 이를 대신해 집안 공간 한편에 작은 화분이라도 들이고자 하는 노력은, 자연을 일상으로 끌어들이려는 인간 의지의 발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만약 그러한 노력조차 여의찮다면 선택지는 단 하나다. 자연 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이때 자연을 여행하는 가장 멋진 방법 중 하나가 캠핑이다. 2년여 전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시작된 캠핑 열풍은 전국의 산과 들 그리고 바다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조명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자연이 만든 천연 정원이나 다름없는 숲은, 그 외양에서부터 사계의 변화가 뚜렷해 계절감을 음미하기 좋은 장소다. 사방이 푸르고 싱그러운 생기로 가득한 때에도 단풍이 지고 낙엽이 떨어질 때에도, 숲은 언제나 계절이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아 준다.



용문산, 청계산 등 등산가들이 즐겨 찾는 명산이 산재한 양평은 전체 면적의 75%가 산림으로 이뤄져 있는 지역이다. 그렇다 보니 긴 세월 동안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188만 평의 거대한 국유림 내에 조성된 국립양평치유의숲과 같은 국공립 휴양림부터 BTS의 화보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진 서후리숲을 필두로 한 개인 소유의 숲까지, 다양한 형태의 숲을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다. 이처럼 산림 자원이 풍부한 양평에는 숲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다수의 캠핑장도 많다. 칠보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양평수목원캠핑장’은 광활한 8만 평 부지의 수목원을 캠핑장으로 개조한 곳이다. 느티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미루나무, 계수나무 등 수목원을 구성하는 여러 종류의 나무 군락에 따라 각 구역이 나뉜 100여 개의 캠핑 사이트는, 주변을 둘러싼 나무의 특성에 따라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중에서도 숲의 경사면을 따라 띄엄띄엄 자리 잡을 수 있는 데크 사이트는 숲속 특유의 한적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려는 이들이 선호하는 자리다. 각 데크 사이트는 경사지에 자연스레 형성된 단차를 두고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다. 어느 자리를 선택하든 녹음 짙은 숲속 뷰가 시야에 한가득 들어찬다.


산과 물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



양평수목원캠핑장은 꽤 산속 깊숙이 자리해 있는 편이지만, 차로 10분여 거리에 용문 시내가 인접해 있어 시장이나 마트에 들러 장을 보기에도 수월하다. 게다가 시장 탐방은 여행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인 법. 용문역과 가까이 붙어 있는 ‘용문천년시장’은 양평을 대표하는 4대 전통시장 중 하나로, 매달 끝자리가 5와 0으로 끝나는 날이면 용문역과 시장 사이에 지역 내 활기를 더하는 오일장이 크게 열린다. 이와 더불어 매달 마지막 주 오일장날에는 지역의 청년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과 가공식품 등을 판매하는 청년농부마켓장터가 꾸준히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시장에 청년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변화가 더해질 앞으로의 모습이 퍽 궁금해진다.



용문역 2번 출구에서 길을 건너 조금만 걸으면 시장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있다. 은행잎을 닮은 노란색으로 담벼락을 화사하게 채색한 벽화 골목은 ‘양평 경기천년 테마골목’의 시작점으로, 평범한 골목길에 스토리를 덧입히고 시장을 중심으로 먹거리 특화 거리를 조성한 것이다. 수령이 1100년을 훌쩍 넘는다는 용문사 은행나무와 이에 얽힌 마의태자 이야기를 읽으며 골목길을 잠시 따라 걷다 보면 시장 중심부인 등용문 광장으로 금세 이어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천장에 닿을 듯한 은행나무 조형물이다. 예로부터 ‘용이 드나드는 산’이라고 불렸다는 용문산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인지, 용문사 은행나무를 그대로 본떠 만든 조형물 둘레를 여의주를 문 용 조각이 휘감고 있다. 은행나무 조형물 위에 붙여놓은 은행잎 모양의 쪽지에는 제각각 다른 필체로 적힌 문구가 빼곡하다. 오늘날 수많은 방문객이 천년 수령의 영험한 은행나무를 찾아 작은 소망을 빌듯, 시장에 오가는 사람들이 쪽지에 소원과 바람을 적어 둔 모양이다. 이를 가만가만 읽고 있자니 정성껏 눌러쓴 글자 위로 소중한 사람의 성공과 건강을 기원했을 누군가의 얼굴이 스치는 듯하다.



시장에는 정겨운 주막촌 형태의 음식점 네다섯 곳이 길을 따라 나란히 장사 중이다. ‘버섯국밥거리’라는 명칭답게 음식점에서 주력으로 선보이는 메뉴는 지역 특산물인 버섯을 주재료로 팔팔 끓여낸 국밥이다. 찬찬히 살펴본 메뉴판에서 다른 음식 하나가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름에서부터 어떤 식재료가 들어가는지 알 수 있는 ‘다슬기산나물부침개’가 그 주인공이다. 주문하는 즉시 사장님이 부쳐주는 부침개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포장을 받아 들고 캠핑지로 돌아와 아직 따끈한 전에 시원한 막걸리를 곁들인다. 이왕 즐기는 김에 양평의 특산물로 손꼽히는 은행을 넣어 만든 은행막걸리까지 제대로 맛본다. 여타 부침개보다 쫀득한 찰기가 느껴지는 부침개는 중간중간 탱글하게 씹히는 다슬기의 식감과 입안에 은은한 향과 맛을 자아내는 산나물의 조합이 매력적이다. 별달리 진귀한 식재료가 들어간 것도, 그 맛이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색다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수수하기 그지없는 음식이 더없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한 접시에 용문산과 남한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의 소박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숲속에서 보내는 하루


틈틈이 스트레칭으로 뭉친 근육을 이완하지 않으면 내 몸이 지금 얼마나 굳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법이다. 일상 속 느긋한 휴식은 긴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스트레칭과도 같다. 이 시간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길 수 없다. 캠핑은 생각보다 온종일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체가 일종의 휴식처럼 느껴진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나 삼시세끼를 손수 챙겨 먹고, 해가 지면 불을 피운 채 한참을 바라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하루를 단정하게 마무리하는 것. 삶의 본질적인 행위를 단순 반복하다 보면, 순간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내가 먹고 마시는 음식, 내 눈앞의 풍경, 내 곁의 사람과 나 자신. 그렇게 흘러가는 하루와 삶의 소중함을 문득 체감한다.



풀 냄새와 흙내음이 서린 숲속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원시림처럼 풀이 무성하게 자란 산책로를 걸으며 주변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기도 한다. 지저귀는 새소리, 지척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 메마른 잎사귀가 떨어지는 소리. 평소 자주 귀 기울이지 못한 것들을 생생하게 듣고 느낀다. 그렇게 나를 둘러싼 주변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여름이 가고 가을 색이 짙어져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보내고 있는 계절이 선명해진다. 그건 잃어버렸던 내 삶의 중심축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계절을 느낀다는 말은 곧 주변의 변화를 잘 인지한다는 것이고, 주변의 변화를 인지하는 능력은 내면이 건강할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명 강연자로 활동하는 김창옥 교수는 한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땅이 넓은 유럽이나 미국은 정원을 자신의 땅으로 만들어 가꾸는 개념이라면, 한국의 정원은 마음의 창을 열어 자연을 자신의 정원으로 가져오는 것"이라고. “자연은 살 수도 없고 살 필요도 없이 마음을 여는 것만으로 '영원한 나의 것'이 된다”고. 우리는 모두 자연이 만든 넓고도 넓은 정원을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늘 우리에게 기꺼이 품을 내어주는 정원 속으로 그저 걸어 들어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Editor’s Spot

청개구리 이야기가 있는 양평물맑은시장


양평에는 용문천년시장을 비롯해 총 4개의 전통시장이 있다. 그중에서 남한강 인근에 자리 잡은 '양평물맑은시장'은 약 천 평 규모의 전통시장으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상인회와 주민들의 꾸준한 애정 아래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활성화된 전통시장으로 손꼽힌다. 특히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청개구리마켓’이 운영되는데, 양평 지역 주민들이 셀러로 참여해 산지 농산물과 핸드메이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 차 없는 보행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보는 것만으로 군침이 고이는 각종 먹거리는 물론이고, 버스킹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양평물맑은시장과 오일장이 열리는 공영주차장 사이 골목에는 ‘청개구리 이야기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어릴 적에 자주 들었던 청개구리 설화의 근원지가 양평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모티브로 삼아 청개구리 이야기 거리와 청개구리마켓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당 설화는 양평읍 강가에 있는 작은 바위섬인 떠드렁산에 서식하는 청개구리의 울음소리와 조선 중기 무신 이괄의 이야기가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청개구리 설화를 그려놓은 벽화를 따라 골목길을 걸으며 어릴 적 동심을 떠올려봐도 좋을 것이다.


사진. 황지현

에디터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