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아는경기≫ 웹진 #8

WHAT A AWESOME MIX!

이지현|

<아는동네 아는경기> 여덟 번째 골목. 평택 신장쇼핑로 솜씨로 맵씨로


모든 여행의 시작과 끝은 골목으로 통합니다. 어느 낯선 골목에서 누군가는 잠자던 호기심을 일깨우는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하고, 누군가는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잠시 로그아웃한 채 한갓진 골목을 걸으며 여유를 즐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래된 골목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더듬어가며 흥미로운 이야기 속을 탐험합니다. 경기도는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골목길이 될 수 있도록 관광테마골목 육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는동네가 소개할 경기도 골목 15곳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껏 몰랐던 경기도 구석구석의 매력을 경험하는 골목 여행자가 되어보세요. <아는동네 아는경기>는 10번에 걸쳐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여러분을 찾아옵니다.





WHAT A AWESOME MIX!

누군가가 말하길 한 사람의 정체성은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 특정한 방향성을 가질 때 형성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사람을 이루는 요소를 하나하나 파악해 나가면 된다. 이 방법은 평택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형성된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비행장이 만들어지고 인근에 기지촌이 들어서며 군사도시로 급격히 성장한 이 지역은, 미군 부대와 오랫동안 동고동락해 온 만큼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가 한데 뒤섞인 독특한 모습으로 공존해왔다. 낯선 듯 익숙하고, 익숙한 듯 낯선 이곳을 이루는 요소들을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택이라는 도시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그건 한마디로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것들의 ‘끝내주는 모음집(Awesome Mix)’이다.



Item 1. 미국 스타일 패스트푸드, 타코




이국적인 평택의 바이브를 제대로 느끼려면 송탄역 인근의 신장2동으로 향해야 한다.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K-55 오산 공군기지와 가장 인접한 지역인 만큼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상권이 여전히 성업 중인 지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장쇼핑로 솜씨로 맵씨로는 평택 국제 중앙시장의 중심가로, 오산 공군기지 정문 앞쪽에 길게 형성된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미군을 비롯해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길거리를 일상처럼 활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군과 그들의 가족이 주 고객이다 보니 미국인의 입맛에 맞는 현지 스타일의 음식점이 많은 것도 이 거리의 특징.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출출할 때 떡볶이, 어묵, 호떡 등의 길거리 음식을 포장마차에서 사 먹는 것처럼, 미국 사람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으로는 타코가 있다.



사실 타코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소울 푸드이지만, 미국 남부의 국경 지대를 시작점으로 널리 퍼져나가며 어느새 미국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타코가 멕시코 출신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다. 미국의 길거리 타코는 대략 5불(약 7천 원) 정도로 푸짐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미국식 타코를 맛보고 싶다면 신장쇼핑로 초입에서 오전 11시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는 ‘킹햄버거’를 방문해보자. 이곳에서는 타코는 물론이고, 거대한 크기의 아메리칸 스타일 버거와 나초, 부리또볼 등을 판매한다. 매대 한편에 팁 박스가 놓여 있는 모습이나 경찰관에게 무료 음료를 제공한다는 안내문에서도 미국식 문화가 슬쩍 엿보인다. 직원 대부분이 영어로만 의사 소통이 가능하고 매대 상단의 간판에는 각종 메뉴가 영어로 잔뜩 쓰여 있어 마치 미국 현지에서 주문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어 메뉴판도 별도로 구비되어 있으며 직원들도 친절히 주문 받아주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받아든 타코 한 접시는 그 양과 크기가 대단하다. 외양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호쾌한 미국 스타일 그 자체다.



Item 2. 반가운 추억의 맛, 한국식 햄버거 3대장



유명 관광지의 길거리를 오가는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손에 동일한 쇼핑백을 쥐고 있곤 한다. 조금 뻔해 보일 수는 있어도 해당 관광지의 명물을 사지 않으면 여행이 괜히 아쉬워지는 탓이다. 이처럼 신장쇼핑로에도 얇고 반투명한 비닐봉지를 들고 가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닐봉지 안에 든 주인공은 평택의 명물, 은빛 쿠킹호일에 곱게 감싸인 ‘한국식 햄버거’다. 늘 원조를 다투는 ‘미스리 햄버거’와 ‘미스진 햄버거’, 그리고 여기에 후발주자인 ‘송쓰버거’까지 포함해 신장쇼핑로에서 맛볼 수 있는 한국식 햄버거 3대장으로 불린다. 간식거리가 얼마 없던 시절, 푸짐하면서도 저렴한 한국식 햄버거는 금방 인기를 끌었고, 당시 미군들 사이에 한국식 햄버거의 인기가 높아지자 엇비슷한 햄버거 좌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기도 했다. 그중에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영업 중인 가게는 손에 꼽힌다. 1982년 미군 부대 앞에서 햄버거 좌판으로 시작했다는 미스리햄버거는 지역 주민들이 인정하는 원조집인 동시에 40년 동안 장사를 지속해온 가게 중 하나다. 미스리 햄버거의 경우, 현재는 두 번째 사장님이 원조 사장님으로부터 가게를 인수하여 2010년 초반부터 10년 넘게 운영 중이다.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며 깔끔해진 가게의 모습을 보면 ‘원조’라는 타이틀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햄버거의 맛만큼은 원조 사장님만의 레시피 그대로 따르고 있어 옛날 그 시절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외관부터 오랜 세월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미스진 햄버거는 1985년부터 장사를 시작한 곳이다. 가게 내부에 들어서면 패티를 굽고, 다른 속 재료를 넣어 햄버거를 완성하는 과정이 소규모 공장처럼 분업화되어 이뤄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돼지고기 패티가 들어가느냐, 소고기 패티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메뉴가 구분되어 있으니 주문 시 원하는 패티가 들어간 메뉴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한국식 햄버거의 특징은 직접 다져 만든 패티에 계란과 채 썬 양배추가 듬뿍 들어간다는 점인데, 이는 미국 사람에게 익숙한 햄버거를 당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넣어 한국식으로 변형한 것이다. 직접 먹어본 그 맛은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의 맛보다는, 어린 시절 급식소에서 나오던 추억 속 햄버거의 맛과 흡사하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야채가 훨씬 많이 들어가고 상큼한 케찹이 느끼함을 잡아주기 때문에 미국식 햄버거가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명성을 듣고 방문하는 새로운 손님도 많지만, 아련한 추억의 맛을 찾아 머나먼 해외나 타지역에서 이들 햄버거 가게를 일부러 찾는 단골도 많다. 예나 지금이나 친숙하면서도 낯선 한국식 햄버거는 많은 이들에게 변함없는 별미가 되어주고 있다.



Item 3. 찐 외국 바이브의 펍, 블루오페라




누구든 신장쇼핑로 중심부에 자리한 ‘블루오페라’의 모습을 본다면 눈길을 떼기 힘들 것이다. 우선은 사탄 혹은 악마의 모습을 형상화한 독특하면서도 웅장한 조형물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낮이고 밤이고 볕 잘 드는 테라스에 앉아 술 한 잔을 즐기는 외국인들의 모습 때문이다. 미군 부대의 영향으로 미국 현지 스타일의 가게를 많이 볼 수 있는 탓에 많은 이들이 송탄역 일대를 ‘송프란시스코(‘송탄’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합성어)’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러한 별명답게 블루오페라의 손님 대다수는 외국인이 차지한다. 방문객의 특성에 맞게 매대 한쪽에 판매용 시가가 구비된 모습도 흥미롭다. 특히 야외 테라스에 앉아 맥주나 칵테일 한 잔을 즐기고 있노라면 사방에서 들리는 영어와 자유분방한 분위기 덕분에 미국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은 다양한 종류의 생맥주와 술을 판매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그중에서도 손님이 많은 가게답게 관리 잘 된 깔끔한 맛의 생맥주는 안 마시기에 아쉬울 정도. 펍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원한다면 레스토랑이나 카페처럼 이곳에서 식사를 즐길 수도 간단히 커피를 즐길 수도 있다.



블루오페라는 이 지역에서 30년 정도 가게를 운영해온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한때 이곳은 미군 부대 앞에서 잘 나가던 클럽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클럽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이곳 역시 오늘날 많은 사람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펍 형태로 바뀐 것이라고. 블루오페라에서 군부대 정문 쪽으로 좀 더 걸어가다 보면 바닥에 ‘엘간 골목(Aragon Alley)’이라고 적힌 골목을 찾을 수 있다. 이곳에는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포켓볼 당구대와 스틸 다트 등을 설치해 술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스포츠 바 형태의 펍이 여전히 남아있다. 과거 미군 부대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기지촌이 형성되고 미군을 위한 위락시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 골목을 중심으로 다양한 술집이 생겨났던 것. 한때 오키나와나 필리핀 등지에 주둔하던 미군들까지 전세기를 타고 몰려들었을 만큼 번성하던 시절에는 미군이 편히 출입하고 즐길 수 있도록 대부분의 가게에 ‘한국인 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걸려있었단다. 현재는 환경 개선 사업을 통해 거리 전체적으로 유흥가 특유의 퇴폐적인 분위기도 많이 옅어지고, 오히려 엘간 골목은 다소 쇠락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로변에 위치한 블루오페라만큼은 오늘날에도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가 되어주고 있다.


Item 4. 알아주는 한국산, 밍크 이불 & 맞춤 양복



1~2년 전 일명 ‘할머니 담요’라 불리는 밍크 이불이 SNS 상에서 한 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나 볼 수 있던, 오늘날에는 쉽게 보기 힘든 그 두툼하고 부드러운 밍크 이불이 해외 가정집에 떡하니 깔려 있는 사진은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알고 보니 우리에게 익숙한 밍크 담요가 글로벌 쇼핑 사이트인 아마존에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그 결과 해외 사이트에서 '한국 할머니 담요(Korean grandma blanket)'에 대한 간증글이 쏟아졌던 것. 외국인들을 사로잡은 한국식 밍크 담요의 매력은 바로 특유의 포근함과 부드러움. 해외 리뷰를 보면 “추울 때 침대에 들어가는 게 환상적으로 느껴진다”라거나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깊은 숙면을 할 수 있다”는 리뷰를 찾아볼 수 있다. 화려한 장미나 강렬한 호랑이 이미지 등 다양한 디자인 중에서 취향껏 고를 수 있다는 게 한국식 밍크 담요의 특징인데, 이때 저가의 중국산 제품과 달리 한국산 이불은 훨씬 두껍고 밀도가 높아 극강의 보온성과 포근함을 자랑한다고. 동아일보 1983년 7월 21일 자 신문에서도 “국산 밍크 담요는 일본이나 대만보다 값이 4분의 1 또는 3분의 1 정도로 싸고 질도 좋기 때문에 외국인 특히 미국 선원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신장쇼핑로 골목 곳곳에는 이처럼 추억의 밍크 이불을 판매 중인 가게를 발견할 수 있다. 37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했다는 ‘경주이불’ 사장님에 의하면 이곳에서 본인이 사용할 이불과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선물로 보낼 이불까지 바리바리 사 가는 미군들이 많았단다. 현재 가게에서 판매 중인 밍크 이불은 대부분 부산에서 올라온 것인데, 부산항 역시 미군 기지촌이 들어서 미군과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상권이 크게 형성되었던 지역인 만큼 이들의 주요 쇼핑 품목인 이불 물량 다수가 부산에서 만들어졌으리라 추측된다. 사장님은 “과거에는 이불 만드는 기술이 있어 천을 떼어다 이곳에서 이불을 직접 만들어 팔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리 수요가 많지 않아 생산하는 공장도 문을 닫고 도매상도 유통하려 하지 않아 현재 가게 내에 남아있는 재고가 전부”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말인즉 오늘날 품질 좋은 밍크 이불이 사고 싶다면 이곳에 올 수밖에 없는 셈.



이처럼 상권의 호황기는 어느새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이 지역의 맞춤 양복점에는 그 실력을 믿고 꾸준히 찾는 단골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 맞춤 양복을 한 벌 마련하려면 훨씬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것과 달리, 한국인 특유의 재빠르고 꼼꼼한 손기술로 완성된 한국산 맞춤 양복은 훨씬 저렴한 가격에 맞출 수 있어 인기다. 과거 한 방송에서 50년 경력의 맞춤 양복 장인은 “막걸리 한 되의 가격이 15원이고 양복 한 벌을 만들어 500원을 받던 시절,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일하기 싫어 도망을 다니고 쫓아온 주인 때문에 다시 일하러 가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수많은 손님이 매일같이 몰려들어 흥성거렸을 거리, “길바닥에 떨어진 달러를 개도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화려했던 옛 시절의 모습을 오늘 이 거리 위에 겹쳐본다. 모습만큼은 어느새 많이 바뀌었지만, 분명한 건 이곳에는 여전히 누군가에겐 정말 끝내주게 멋진 것들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사진. 황지현

에디터

이지현

삶을 음미하며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