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라이프를 즐기는 공유 공간

로컬스티치

정다솜|

M을 만난 건 지난여름, 더위를 피해 달아난 인도 북부 어느 마을에서였다. 구릿빛 피부와 레게머리, 그리고 다부진 인상.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장기여행자의 아우라를 발산하는 남자는 노트북을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오른손으로는 마우스를 바삐 놀리면서. 항공권을 찾는가 싶어 정보나 주워들으려고 말을 건넸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 업무 중이에요. 오늘 안으로 보내줘야 해서."


M의 직업은 IT 디자이너다. 재밌는 점은 소속을 둔 회사가 따로 없고 하물며 집도 없단다. 그저 맘에 드는 곳에서 먹고 자고 일할 뿐. 그는 메일을 통해 일감을 받고 마감에 맞춰 넘긴다. 취미나 개인용 작업이 아닌 '업무'를 어디서나 하고 또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떠나는 삶이라. 저녁이 있는 삶조차 버거운 우리에게 그가 특별한 경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와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다.



©로컬스티치


'디지털 노마드 Digital Nomad'는 M과 같이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행하듯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가 처음 제시한 용어로, 업무에 필요한 도구만 챙겨 들고 어디든 유랑하는 모습이 마치 유목민의 생활양식과 닮은 데에서 유래했다. 이 신생 유목민들은 최근 몇 년간 새로운 삶의 유형으로 부상해왔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서비스가 웹과 모바일에서 앞다투어 출시되는가 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컨퍼런스 같은 행사나 맞춤형 공간인 코워킹 스페이스 Co-Working space가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에도 노마드를 위한 공간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로컬스티치’는 어딘가 독특한 면이 있다. 첫째로 코워킹과 셰어하우스가 결합한 형태라는 점, 둘째로는 동네 가게들과 교류하며 ‘동네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 다른 곳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늦은 3월의 어느 날, 로컬스티치의 김수민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로컬스티치


처음에는 ‘동네 호텔’을 상정하고 만든 공간이라 들었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동네 주민과 동네 콘텐츠들을 조금 더 밀접하게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이를 테면 세탁서비스는 동네 세탁소, 조식은 동네 식당, 커피 원두는 동네 카페에서 조달하는 식으로. 공간 운영 측면에서는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이곳에 머무는 여행자들은 오직 이 동네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동네 사람처럼 살아보는 색다른 호텔을 생각했었다.




로컬스티치라는 이름도 그러한 의미로 지어진 것이겠다.

스티치 Stitch란 단어 자체가 바느질, 꿰어서 연결하다 등의 뜻이 있다. 또, 제가 건축과 디자인 일을 하고 있지 않나. 동네의 유휴공간을 예쁘게 리모델링해서 여기에 여러 동네 콘텐츠들을 붙이고 지역 소상공인들을 연결한, 지속가능한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로컬스티치


그러나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이 숙박업 시장에 적응하기란 쉽지만은 않았다. 초기에는 서울 외곽을 염두에 뒀는데, 뜻하지 않게 홍대 근처에 자리 잡으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도 발생했다.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로컬스티치는 주거와 사무공간을 유연하게 결합한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지금은 동네 호텔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공간, 그러니까 코워킹-셰어하우스로 변화했다. 방향을 전환한 계기가 있었나.

사실 처음부터 뚜렷한 고객층을 설정했다. 공간도 그에 맞게 디자인했는데, 국내 시스템으로는 원하는 고객층만 예약받기가 어렵더라. 그러다 보니 연령대나 취향에 따라 만족도가 천차만별이고. 안 되겠다, 개편해야 겠다 싶어서 만족도가 높은 군을 살펴봤더니 주로 한 곳에서 중장기로 머물고 일하면서 동네를 즐기는 노마드들이었다. 그러면서 이들과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을 가진 국내의 청년 창작자들, 스타트업 기획자도 한데 어울려 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어울려 살면서 실제로 교류들이 일어나나. 서로 작업에 도움이 된다든지.

고정된 시스템 같은 것을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서로 PR 해주면서 협업을 이끌어낸다든가, 각자의 노하우를 주고받는다. 내게도 그런 모습이 여러모로 도움되고. 특히 공간 개편을 한창 고민하던 무렵에 여기 머물렀던 노마드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키건 보이어라고 미국 출신의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였는데, 그 친구를 일종의 페르소나로 생각하면서 공간 컨셉을 다시 잡았다. 그때 함께 머물던 프리키라는 국내 아티스트들도 키건과 서로 교류하면서 나중에 그가 떠날 때 홈페이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 입주해 있나.

지금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 로컬디자인무브먼트를 비롯해 프리랜서 영상 디자이너들과 영화 시나리오 콘티 작가, 책을 집필 중인 작가, 그리고 노마드 뮤지션 커플이 있다.




노마드들을 위한 공유공간이 부쩍 늘어나고 있고, 공유경제 개념 자체도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로컬스티치가 생각하는 바는 무엇인가.

지금은 걸음마 단계라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판이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입주자들이 편하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비용과 질 좋은 서비스가 뒷받침돼야 한다. 또 입주한 창작자들끼리의 느슨한 파트너십과 네트워크 공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로컬스티치가 그 네트워킹 플랫폼으로서 기능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고 싶다. 사실 소규모의 스타트업이나 창작자들이 몇 년 정도 일하다 보면, 스스로 전문성을 향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정체된다고 해야 할까? 슬럼프도 오고. 그 단계를 뛰어넘고 다음 커리어를 쌓으려면 네트워킹 플랫폼 안에서 같이 일하며 영감을 주고받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계획을 살짝 알려준다면.

우선 상반기 내로 인근 지역에 새로운 공간을 열 예정이다. 여태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운영이라든가 전반적인 시스템을 조금 더 정돈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이곳과 연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로컬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사이클을 안정적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래서 창작자-로컬스티치(공유공간)-동네 콘텐츠, 동네 문화의 지속가능한 선순환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로컬스티치가 생각하는 로컬라이프란 무엇인지 듣고 싶다. 앞으로 바라는 로컬스티치의 모습도.

내가 사는 동네의 로컬콘텐츠를 충분히 보장받고 그로 인해 주거와 일터에서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로컬라이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새 그런 삶을 살기에는 청년들의 환경과 여건이 어렵지 않나. 나는 로컬스티치가 공간에 대한 걱정 없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로컬문화를 즐기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내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




©로컬스티치




로컬스티치

  • 주소 : 서울특별시 서교동 465-7, 2-3F (잔다리로 70)
  • 시간 : 24 OPEN
  • Phone number : 02 322 8601
  • 홈페이지 : http://localstitch.kr/
* 예약시 공간 방문도 가능

* 방문신청 logic.de.mov@gmail.com


에디터

* 편집자: 박혜주

정다솜

피터팬 콤플렉스를 한 꼬집 정도 가진, 방랑벽이 있는 용의주도한 와식생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