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궁중 납품용 채소를 재배하던 밭 ‘내농포'가 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한 권농동. 창덕궁, 그리고 종묘와도 바로 맞닿아있어 여러모로 역사와 깊은 관계를 지닌 이 동네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길은 ‘순라길’이다. 살필 순(巡)에 순행할 라(邏)가 합쳐진 순라길은 종묘 담장 바깥 길을 가리키는데, 종묘를 지키는 순찰꾼들이 화재와 도적을 경계하며 야간 순찰을 하던 길이라 그렇게 불렸다. 이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과 일제강점기의 순사, 봇짐 행상들이 줄기차게 오가던 이 길은 1950년대 후반에 통제되었다가 1990년대 종로구가 도로를 재정비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순라길은 동순라길과 서순라길로 나뉜다. 특히 종묘 공원 입구부터 창덕궁 앞길에 이르는 서순라길은 ‘사람 냄새’가 남아있다. 높이 솟은 참나무와 고즈넉한 주택가, 잔술집에 서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 오래된 이발소와 구멍가게 사이로 얼굴을 내민 귀금속 공방 등 길의 모든 요소가 돌담이 자아내는 운치와 어우러져 묘한 풍경을 만든다.
01
잔술집
종묘 정문에서 서순라길로 막 접어드는 지점에, 조선 말부터 기록을 찾을 수 있는 ‘선술 목롯집’ 형태를 여전히 간직한 가게가 몇 있다. 천막 간판이 폭삭 삭아 ‘훈이네 집’이란 글씨마저 희미한 ‘도레미’나 대충 간이 간판을 단 '뚱순네' 등의 ‘잔술집'들이다. 여기선 종이컵 가득 따른 막걸리가 잔당 1000원, 소주도 1000원이다. 안주는 따로 없고 간단한 씹을 거리 정도만 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길거리 평상에 둘러앉거나 선 채로 술잔을 기울이는 풍경이 정답다.
Curator’s Tip
가게에 선뜻 들어가기가 어렵거나 술이 부담스럽다면 단돈 삼백 원짜리 ‘잔커피’도 있다. 익숙한 커피믹스 맛을 즐기며 순라길을 산책하는 것도 일종의 묘미.
*상세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서순라길 23 일대
02
SCUDO
샛길 모퉁이에 위치한 스쿠도는 방패와 중세 유럽 문양을 모티브로 삼아 은공예품을 만드는 쇼룸 겸 작업실이다. 이곳 대표 김성리 작가는 서순라길 일대에서 활동하는 11명의 금속공예작가가 뭉친 디자인그룹 ‘순라꾼’의 멤버이기도 하다. ‘순라꾼’은 옛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주얼리 작품 전시와 판매는 물론 지역민과 작가가 상생할 수 있는 마을 만들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 중이다.
Curator’s Tip
관심자라면 봄가을 시즌에 열리는 ‘서울핸드메이드마켓 HMMA; 흠마’에 들러볼 것. 그룹 ’순라꾼’을 포함한 주얼리 공예가들과 그들의 개성 가득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운영시간 : 문의 필요
*상세주소 :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10길 27-1
03
스페이스 42
현재 서울시는 종로 귀금속 거리와 가까운 서순라길을 '귀금속 공예창작특화거리'로 조성하려 발 빠른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서순라길 중반 즈음 자리한 ‘스페이스 42’도 그중 하나다. 유망한 디자이너 발굴과 지원을 위해 탄생한 이곳은 주얼리 편집숍과 전시장, 플라워숍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옥을 개보수한 공간답게 전통미가 살아있고, 세련된 귀금속과의 조화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Curator’s Tip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으며 2층 플라워숍에서는 클래스 등의 이벤트도 자주 열린다. SNS를 눈여겨보자.
*운영시간 : 월-토 10:00~19:00
*상세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서순라길 83
04
갤러리카페 소연
길 끄트머리에는 갤러리카페 소연이 있다. 본디 작은 자연이란 뜻의 ‘小然’은 작은 힘들이 모여서 큰일을 이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금속공예가 김승희 교수와 100여 명의 작가가 함께 만든 이곳은 소소한 옛 소품과 빼어난 작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심지어 화장실에 부착된 빗방울 모양 장식품마저 정식 작품일 정도. 정기적으로 장신구 전시를 선보이며, 지하에서는 종종 세미나도 열린다.
Curator’s Tip
겨울에 찾은 이라면 단팥죽을 꼭 맛보길. 양평산 햇팥으로 오랜 시간 직접 끓여냈다는 그 맛이 진실하다. 직접 담근 모과차도 언 몸을 녹이기 좋다.
*운영시간 : 월-토 10:30~21:00
*상세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서순라길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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