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land Story

3. Food Cart Pod

최정윤|

음식이 소비되는 방식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동안의 음식은 생존을 위한 식생활을 중심으로 소비가 되었던 반면, 오늘날의 음식은 후각이나 미각이 아닌 시각을 통해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하다. 음식점에 대한 소개나 음식 조리법과 관련하여 맛있어 보이는 음식의 비주얼을 집중 조명하는 ‘푸드 포르노’ 방송이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각광을 받고 있으며, 음식을 주제로 세계 일주를 하는 ‘먹방 여행’은 대중의 여행 방식에 있어서도 보편화되고 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삶을 실천하는 식도락가, 일명 ‘푸디(foodie)’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음식을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에게 포틀랜드는 그야말로 (음식)‘천국’과도 같다. 단적인 예로, 나는 포틀랜드에 머무르는 2주 동안 먹고 마시기만 했던 대학 생활 3년에도 꿈쩍하지 않던 몸무게의 앞자리가 변했다. 하지만 급격히 불어난 살의 원인을 맛있으면서도 넉넉한 양을 갖춘 포틀랜드의 음식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포틀랜드의 음식이 특별한 이유, 그것은 사람들이 음식을 찾도록 하는 일종의 멋스러움과 남다르게 ‘힙’한 감각에서 기인한다.

(물론 ‘힙스터’라는 개념에서 파생된 ‘힙하다’는 수식어는 그 개념이 굉장히 모호하다. 그렇기에 이번 글에서는 힙하다는 개념을 큰 유행에 따르지 않고 음식에 대한 확고하면서도 개인적인 성향을 지칭하는 수식어로 사용할 것이다.)




식문화에서의 ‘힙’은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음식과 관련된 관점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모습은, 대중문화와 주류의 폭력에 대한 저항적 태도에서 시작된 비주류 계층의 생활상 속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1차 대전 이후, 유럽의 다다이스트들은 식사를 거른 채 커피만을 마셔가며 예술을 모색했고, 70년대부터 반전(反戰)과 펑크 문화에 경도된 인디밴드들은 술과 마약에 젖어들었고 불량한 영양 상태 속에서 창작활동을 해나갔다. 과거 힙한이들의 식문화는 그들이 선을 긋고자 했던 물질적인 풍요와 풍족한 식생활을 동일 선상에 두고 배고픔을 벗으로 두는 모습을 보여왔다.

반면 오늘날의 힙스터는 인근지역에서 재배된 유기농 음식을 고집하고 직접 조리해 먹는 ‘집밥’을 선호하며 ‘건강한 생활양식’을 추구한다. 이는 21세기 힙스터들의 가치관이 과거와는 다르게 저항과 경계가 아닌 자족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삶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이며, 그 결과 대량생산이 아닌 작은 단위로 만들어지는 음식과 음료, 건강한 가공 방식을 거친 음식들이 자연스럽게 힙한 아이템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킨포크 라이프가 시작된 이곳 포틀랜드 사람들은 식문화를 즐기는 태도가 남다르다. 그들이 사랑하는 음식의 대부분은 지역 거주민의 손에서 소량으로 정성껏 만들어진 음식이며, 독특한 조리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다채로운 메뉴의 음식들이 눈에 띈다. 전세계 대부분의 평범한 도시 시민들이 스타벅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반면, 포틀랜드 시민들은 커피와 맥주가 흐르는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로스터리에서 커피를 마신다. 또한 커피숍 안에서는 커피에 대한 자부심과 철학을 갖추고 있는 바리스타들에게 언제든지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커피를 음미할 수 있다. 포틀랜드에서 스타벅스란 잘 터지는 와이파이를 위해 찾는 곳에 불과한데, 그러한 배경에는 매뉴얼화 되어있지 않은 식생활에 대한 포틀랜드 사람들의 선호가 짙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겉으로 보기에는 포틀랜드 곳곳에서 보이는 여느 평범한 마트에 불과하지만, 각각의 마트에는 50가지는 족히 넘을 소규모 양조장의 맥주들이 가득하다. 맥주를 구매하여 한 모금 들이키는 맛을 상상하는 것이 물론 최고의 행복이겠지만, 맛을 제외하더라도 다채로운 상표 라벨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시각적인 재미 역시도 꽤나 쏠쏠하다. 포틀랜드의 먹을 것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는 이 뿐만이 아니다.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부두도넛(Voodoo Doughnut)은 매일매일 다른 모습과 맛으로 소비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세상의 단 맛을 모두 모아 놓은 모습을 갖춘 형형색색의 도넛부터 남성 성기 모양을 형상화 한 도넛을 베어 물었을 때 터지는 달콤한 레몬즙의 발칙한 상상까지...... 포틀랜드의 음식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가진 모든 종류의 감각과 감정, 상상을 충족시키는 복합적인 존재에 가까운 것이다.




포틀랜드를 이상한 곳으로 만든 네 바퀴 위 음식들

포틀랜드의 힙스러운 식문화는 ‘포틀랜드를 이상하게 유지하자(Keep Portland Weird)’는 지역 단위의 사회적인 운동과도 일맥상통 한다. ‘이상함’이 환영 받는 포틀랜드의 일상적인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리를 가득 채운 수많은 푸드카트다. (이곳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푸드트럭’이란 단어 대신 ‘푸드카트(food cart)’란 용어를 더욱 많이 사용한다.) 그럴듯한 구색을 갖춘 음악이 흐르고 거친 질감의 콘크리트 벽으로 건물이 구성되어야만 하는 서울의 힙스러움과는 달리, 포틀랜드의 푸드카트는 서울의 힙플레이스가 무안할 정도로 별다른 구색을 갖추고 있지 않다.

포틀랜드 푸드카트의 힙스러움은 시각적인 멋스러움이 아닌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다양성에서 출발한다.무려 600개가 넘는 포틀랜드의 푸드카트는 제각기 흩어져있지 않고 대부분 ‘포드(pod-집단)’를 형성하고 있다. 각각의 포드는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의 자유를 주는 동시에 개별 푸드카트의 영업을 활성화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내가 찾아간 곳은 도시에서 가장 큰 포드인 다운타운에 위치한 ‘Alder pod’였다. 이탈리아에서 포틀랜드로 푸드카트를 하기 위해 이주한 부부, 인기가 많은 한국 요리사 외에도 베트남, 인도, 태국, 독일, 그리스, 이집트 등 다양한 국적의 요리사들이 있기에 푸드카트 포드는 힙스터의 기본자세라 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생각과 개성을 존중한다”는 덕목을 여유롭게 실현한다.




식당이 갖추어야 하는 ‘공간’이라는 제약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푸드카트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여유를 가지고 맛있는 한 끼를 ‘고를’ 수 있다. 넘쳐나는 선택지에 압도당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푸드카트 사이에서 조급해 하지 않고 여유롭게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푸드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리를 안내 받고 메뉴판을 본 뒤 주문을 기다리는 직원의 눈초리에 쩔쩔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푸드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따뜻한 햇살과 코를 자극하는 음식의 향을 한껏 즐기며 블록 한 바퀴를 쭉 둘러보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향할 수 있다. 선택장애가 있어 한 번에 고르지 못했다면, 길을 잃은 척을 하거나 지나가는 행인인 마냥 블록을 다시 거닐며 마음을 다잡으면 된다.




본인 소유의 카트를 운영하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각자가 내놓는 음식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매우 크다. 또한 새롭게 시도되는 메뉴들도 상당히 다채로운 편이다. 경직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요리에 전념하는 요리사와 음식의 진가를 아는 소비자들이 만드는 시너지는 ‘이상한’ 포틀랜드의 거리를 가득 채운다.

내가 선택한 메뉴는 ‘Whole Bowl’이라는 이름을 지닌 음식으로 밥, 아보카도, 사워크림, 바질, 콩, 신선한 치즈와 소스를 한 그릇에 정성스레 담아낸 건강식품이었다. 처음 본 사이지만 함께 공원에 앉아 각자가 선택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메뉴를 고르는 즐거운 시간과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진 음식을 음미하는 시간까지, 한 그릇에 담긴 것은 말 그대로 꽉 찬(whole) 식사였다.









'Portland Story' 연재글 리스트

1. Farmer's Market
2. Portland Zine Symposium
3. Food Cart Pod (현재글)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최정윤

아름다운 세상을 소소하게 보고, 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