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Human Scale in Japan

1. 나의 살던 고향은 오바마

곽재원|


예정에 없었던 시마바라 반도의 소도시 오바마를 방문하게 되었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도중 옆에 앉았던 할아버지들이 자꾸 오바마 이야기를 하셨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에 관해 말하는 건지? 오바마가 그 마을에 왔다 간 건지는 확실히 알 수 없어서...... 흘려듣던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던 도시 ‘小浜’(오바마)는 작은 바다란 뜻을 지니고 있다.

오바마 출신의 디자이너 ‘시로타니 코우세이’씨가 중심이 되어 오래되고 버려진 빈집들을 리모델링하여 마을을 카페, 공방, 상점 등으로 재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름하여 ‘카리미즈(刈水)에코빌리지 구상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청년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에 이끌려 그곳을 향하게 된다. 시외버스 정류장에선 나의 큰 가방이 코인 로커에 들어가지 않자, 마음 좋은 시골 직원이 17시까지 시간을 지키라고 말하며 저렴한 가격에 선뜻 사무실에 맡아 주겠다고 말을 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음 전체를 감싸고 있는 희뿌연 증기들이다. 옥수수며 고구마나 감자, 배추, 달걀 같은 것들을 대바구니에 쪄낼 수 있는 공동 찜 가마가 사람들로 하여금 구미를 당기게 한다.

바로 옆에는 바다를 보며 족욕을 즐길 수 있는 일본에서 가장 길다는 105m 규모의 ‘홋토붓토 105’ ('홋토붓토'는 'Hot foot'을 일본식으로 읽은 말) 족욕탕이 있다. 규모가 작은 마을인데도 일본을 대표할만한 요소가 있단 사실이 인상적이다. 다른 한쪽에는 사람들이 앉는 의자가 없는데, 이는 반려 동물을 위한 공간이다.





300엔이면 다치바나 만을 바라보며 알몸으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공중 노천탕도 있다. 마을 전체에 온천수를 이용한 시설이 가득하고 그 증기가 또 하나의 기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지하에서 퍼 올린 온천수를 자연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막 끌어올린 온천수는 펄펄 끓는 약 105°C로 너무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열을 내리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 족욕탕에서는 인공적으로 기계를 이용하여 물을 식히지 않는다. 자연적으로 계단식 지층에 물을 흘려보내 온천수의 온도를 낮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마바라 반도는 후쿠시마와도 멀고 일본 내에서 가장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나가사키, 아마쿠사, 그리고 이곳 오바마까지 통틀어 일본을 대표하는 3대 짬뽕의 고장이라 부른다. 시마바라 반도 어디에서나 하나같이 신선하면서도 건강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오바마 짬뽕의 풍미를 말해보자면 한국에서 유명한 고깃국물이 들어간 나가사키 짬뽕보다 해산물이 더 많으면서도 담백하고 깊은 맛이랄까?




바다 면에 위치한 여행자 안내소 앞에 가면 환하게 웃고 있는 버락 오바마의 마네킹이 반겨준다. 피식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이곳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마을 전체가 잔치 분위기였다고 한다. 일본 후쿠이 현에도 또 다른 오바마라는 이름의 마을이 존재한다.




마을 언덕 뒤편에 자리한 시로타니씨가 운영하는 카리미즈안 (刈水庵)을 중심으로 자연주의 요리를 지향하며 쿠킹클래스를 여는 ‘테라 하우스’와 계절마다 염색 재료가 바뀌는 천연 염색 공방 ‘아이아카네’도 들어섰다. 오바마에서 태어나 도쿄와 밀라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엔조 마리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시로타니 코우세이 Shirotani Kosei씨는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스튜디오 시로타니를 열었다. 사가현의 사가대학에서 5년간 학생들을 가르던 그는 '마을 만들기'를 주제로 design workshop을 진행했다. 그것을 계기로 역사, 경관, 자연 등의 다양한 조건을 갖췄지만,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한 마을의 현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자연스럽게 참여자들과 자신의 고향인 오바마에서 '카리미즈안 에코 빌리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카리미즈안 지구의 경관, 실제 거주하는 사람, 빈집 조사 등 구석구석 매력조사를 실시한 후, 지역의 경관과 빈집을 활용하여 오바마의 매력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구상에 착수했다. 드디어 2013년 3월엔 카리미즈안(刈水庵)이 오픈하게 된다.

그는 디자인 분야만이 아니라 공예, 건축 설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일본의 다른 지역과 이탈리아, 한국 등 국제적인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만들어진 그의 인맥과 감각이 프로젝트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 일개 대학의 프로젝트성 workshop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사회에 애착을 기반으로 하여 실재적으로 일을 추진하였다. 아울러 같이 참여했던 젊은 디자이너들은 프로젝트에 이끌려 자발적으로 삶의 터전을 꾸리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현재는 도예가, 요리사, 농업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 등 다양한 인재들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방문했을 당시에도 마당 안 건물에 새로운 ‘coffee lab’이 생겨 청년들은 연구에 몰두해 있었다.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 ‘카리미즈 에코빌리지’는 단순히 빈집을 개조해 상점으로 이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존 요소들이 변형되지 않도록 보존하고 지역 고유의 독특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매력이 효과적으로 표현 되도록 노력하는 것을 주된 컨셉으로 삼는다. "지역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숙성시킨 일본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변형되지 않으면서도 유럽의 여타 도시들처럼 소도시에서도 대도시와 같은 수준의 문화적 자산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한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남아있는 빈집이나 공간도 자연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창의적인 용도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벚꽃이 만개하는 4월에는 ‘카리미즈안 디자인 마켓’이 열려 이 한적한 작은 마을 역시도 화려한 꽃잎들 사이로 인파가 북적인다.




시로타니 씨는 디자인 작업을 하고 아내가 카페를 운영한다. 1층에는 부부가 세계 각지에서 모은 수집품과 직접 제작한 도예 작품 또는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며져 있다. ‘kinto’ 같은 모던한 디자인 생활 소품을 판매하는 전시장과 카운터로도 활용되고 있다. 한 층을 더 올라가면 고전미와 모던함이 공존하는 가구들로 꾸며진 문인이나 디자이너의 아뜰리에를 연상케하는 다다미 공간이 등장한다. 간혹 한국의 소품도 눈에 띄지만 모든 것은 하나의 정서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유독 튀는 구석은 없다. 오래도록 디자인에 몰두한 그의 공력이 느껴진다. 느리게 내려진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시고 있자면 잠시 마일드 데이비스의 달콤하지만 메마른 음악이 귓가에 흐르는 착각에 잠긴다. 햇빛이 비치는 오래된 창가로 기대면 부서지는 파도가 나지막하게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배기를 담은 그림 같은 전경이 펼쳐진다. 그가 공부했던 유럽의 아름다운 고전적 미의식과 풋풋한 소년시절의 추억, 그리고 현재의 감각이 공존하고 있는 것만 같다.

다양한 차원의 시간들이 만나 아늑하면서도 창의적이며 이상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삭막한 대도시를 방문하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그가 의도한 공감각적 시간 안에서 존재하며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나의 살던 고향은 ‘오바마’...... 문득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 카리미즈안 카페는 오전 10:00 – 17:00까지 운영하며 화요일과 수요일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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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살던 고향은 오바마 (현재글)
2. 자전거를 타고 온 '오노미치'
3. 교토는 교토다
4. 도쿄 - 츠타야의 신화 그리고 열광하는 사람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곽재원

Digital Nomad, 우주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지구별을 탐험하는 여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