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동네 큐레이션

건널목을 딛고 서서

미근동 땡땡거리 서소문

온통 푸른 미나리밭이었단다. 미나리(芹)가 물결(渼)치는 마을이라 해서 '미근동'이란 이름이 붙었을 정도니까. 미나리밭의 한가로운 운명은 일제강점기 경의선이 등장하며 바뀌었다. 동네와 꼭 붙어있던 서소문이 헐린 자리에 '서소문역'이 들어섰고, 일본의 군수물자를 나르는 기차가 하루에도 수백 번을 오갔다. 수송 수단 중 철도가 최고로 여겨지던 시대에 서울역과 서소문역을 끼고 앉았으니 동네는 단숨에 '초역세권'으로 거듭났다. 기차 통과를 알리는 경보음을 따서 '땡땡거리'라고 불린 건널목 부근은 중심가가 되어 밤낮없이 붐볐다. 이후 역은 철거되었지만, 이미 형성된 상권은 꾸준히 자리를 넓혔다. 1960~70년대에는 이곳에서 서울 최대의 수산시장이 열렸고 당시 기준 최신식 주상복합단지 서소문아파트가 문을 열어 장안의 명소로 떠올랐다. 그러나 빛나던 영광의 시절도 거기까지. 이후 동네 일대가 특별계획구역으로 묶였다. 개발이 제한된 탓에 변화로부터도 멀어졌다. 주변을 둘러싼 채 위용을 과시 중인 고층빌딩과 다르게 미근동이 1990년대 초반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이유다. 누군가는 이제 남은 것이라곤 기찻소리 뿐이라 말하지만, 그러나 차분히 들여다보면 미근동 땡땡거리는 여전히 흥미로운 곳이다.



01

서소문 건널목

땡땡거리의 시작점이자 중심인 철도 건널목. 한양 도성을 두른 4개의 작은 성문 중 하나, ‘서소문’이 위치했던 바로 그 터다. 하루 열차 통과 횟수가 약 500회로 전국 철도 건널목 중 하루 평균교통량이 가장 많다. '땡땡땡' 경보음이 울리면 어디선가 역무원 아저씨가 나타나고 붉은색의 길쭉한 차단기가 내려온다. 건널목에 선 모두가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오는 기차에 시선을 둔다. 기차가 스치며 뺨에 와닿는 바람과 서울의 가장 중심 격에 해당하는 하늘 아래서 듣는 종소리가 정겹다. 

Curator's Tip

모든 열차의 경유지인 서울역과 가까워서 KTX, 새마을·무궁화호, 1호선 국철과 화물 기차 등 다양한 종류의 열차가 지난다. 열차 전시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시시각각 다른 기차를 보는 재미가 있다.

*상세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6길 

02

서소문아파트

충정로역과 서대문역, 시청역이 그리는 삼각형 구도의 중심에 선 서소문아파트는 곡선으로 길게 휘어진 모양새다. 땅 밑으로 흐르는 하천을 덮고 지어져서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까닭에 40년이 넘었음에도 재건축을 할 수 없다고. 9개 동의 8층 건물이 연결되어 있으며 주상복합단지답게 1층은 각종 상가로 빼곡하다. 아파트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밥집과 카페, 세탁소 등이 있다.

Curator's Tip 

내부를 슬쩍 구경하는 건 괜찮지만 여전히 사람이 사는 주거공간임을 명심하자. 7동과 8동 사이에 위치한 통로는 아파트 뒷골목인 충정로6안길로 이어진다. 내공 높은 맛집이 옹기종기 모인 데다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오히려 이 골목을 거니는 것도 좋다.

*상세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6길 59


03

땡땡거리 형제옥

64년 동안 미근동 기찻길의 역사를 지켜본 설렁탕·해장국집. 동북아역사재단이 있는 임광빌딩 모퉁이 철길 옆에서 1993년까지 영업하다 안쪽 골목인 충정로6안길로 자리를 옮겼다. 무쇠 가마솥에 푹 고아낸 설렁탕과 수육, 해장국이 맛있다. 찬은 김치, 깍두기뿐이지만 찬과 탕 모두 맛의 내공이 깊다. 코앞에 위치한 중앙일보 기자들이 반주를 곁들여 식사하던 단골집으로도 유명하다.

Curator's Tip

설렁탕 육수에 된장을 풀고 두툼한 살이 붙은 소 등뼈와 선지, 우거지를 가득 넣어 끓인 해장국은 한 냄비가 다 팔리면 다음 날에나 먹을 수 있다. 보통 점심시간 내에 떨어진다.

*운영시간 : 월-금 07:00~21:00

*상세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6안길 3

04

한 뼘 가게

연식이 오래된 노포만 있던 땡땡거리에 최근 세련되고 아기자기한 상점이 늘어나는 중이다. 기찻길 옆에 나란히 늘어선 '한 뼘 가게'들은 저마다 젊은 감성의 인테리어를 뽐낸다. 일본식 카레와 함박스테이크, 파스타와 베트남 쌀국수 등 메뉴가 다양해 새로움을 좇는 직장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후문. 쌀 상회와 얼음집, 여관처럼 낡은 건물과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Curator's Tip

저녁이 되면 가게 대부분이 주류를 판매한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맥주 맛이 한결 매력적이다.

*상세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6길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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