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의 형성
지금이야 제주도가 낭만이 가득한 섬으로 여겨진다지만, 뭍에서 먼 제주는 오랜 세월 고독하고 척박한 땅이었다. 그러나 고립무원 척박한 땅에서도 섬사람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삶을 이어갔고, 탐라국으로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가 쌓여 왔다. 그리고 그러한 자산 축적은 자연스럽게 부락과 도시의 성장으로 이어졌는데, 물자를 조달하고 문물을 수용하는 항구가 있고 용천, 하천을 통해 식수를 얻기 용이했던 해안가에서 그런 움직임이 활발했다. 그 결과 제주항과 가깝고 제주읍성 경내에 있던 산지천 주변으로는 자연스럽게 시장과 원도심이 발달했다.
원도심의 눈물
오랜 기간 제주시, 나아가 제주도의 중심이었던 원도심의 입지는 신제주 개발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 1958년, 정식 공항으로 정부의 인가를 받은 이래 제주국제공항의 취향 편수는 점차 증가하였다. 1968년에는 제주국제공항으로 승격되었으며, 이에 발맞춰 박정희 정권은 제주도를 관광지로 만들기 위한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그 연장선에서 1980년대 들어 공항과 인접한 노형동, 연동 일대에는 새로운 도심이 개발되었으며 도민들을 옛 도심을 구제주, 새로 개발된 도심을 신제주라 부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제주시의 도심 기능이 신제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공공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 중 상당수가 신제주로 이전하였으며, 택지 개발이 완료된 뒤로는 쾌적한 주거 여건에 매료된 중산층 일부가 거주지를 옮겼다. 이는 뒤이어 많은 학교가 신제주로 이전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공항과 가까운 입지적 장점으로 인해 새롭게 들어서는 관광, 숙박 시설 중 상당수가 신제주에 밀집하였고, 이는 신제주 상권의 급속한 성장을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신제주는 제주 시내의 행정, 교통, 상업, 주거, 교육 등 기능 전반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으며 그 과정에서 제주 원도심은 품고 있던 기능 대부분을 신제주에 넘겨주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항공편이 제주와 육지를 잇는 보편적인 운송 수단으로 정착한 뒤에는 제주항의 배후지로 번성하였던 산지천 주변 원도심이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다수의 빈집이 생겼고, 유동인구가 급감한 거리는 더없이 적막해졌다. 동문시장 주변 상권이 지역 중장년층 주민과 관광객의 방문에 힘입어 분투하고 있지만, 그런 흐름이 일도동, 이도동, 건입동에 이르는 주변 지역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진 않고 있다.
창업 생태계 조성 + 도시재생 = 리노베이션
물론 제주 원도심을 살리기 위한 공공, 민간 차원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중 몇몇은 일부 사안에만 초점을 맞춰 거시적 맥락을 보지 못했고, 또 일부는 지나치게 거시적인 맥락에서 접근한 나머지 지역의 현실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때로는 물리적인 하드웨어 및 시설 조성에 치중하여 정작 그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시설물은 방치되기 일쑤였다.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제주시 원도심의 공동화 문제를 두고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색다른 관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바로 ‘창업 생태계 조성을 통한 원도심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이 원대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제주 도시재생지원센터, 일본 지역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리노베링, 도시재생 컨설팅을 전개하는 메타기획컨설팅, 그리고 국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1세대 크립톤도 뜻을 모았다.
매우 복합적인 맥락에서 기획된 프로젝트이지만, 프로젝트 전반의 배경과 목적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삶터, 일터로서 제주시 원도심은 매력이 있다.
– 생활•문화적인 자원이 풍부하다.
– 저층 건물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정취가 매력적이다.
– 공항 접근성을 비롯한 교통 편의성이 좋다.
– 신제주에 비하면 임대료가 저렴한 편이다.
● 그러나 삶터, 일터로 삼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 노후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 건물 소유주가 지역에 상주하지 않아 방치한 건물이 많다.
– 도심 공동화 현상이 두드러져 치안, 범죄 문제가 빈번하다.
● 제주시 원도심에서 깨진 유리창 법칙처럼, 유휴공간으로 인해 연쇄적 문제가 발생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 건물 소유주가 경제적 부담이 없어 적극적인 공간 운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 건축물 관련 법적, 행정적 제약으로 인해 공간 운영의 다양성이 제한된다.
● 결론
– 노후 건축물 및 유휴 공간의 용도를 찾아야 한다.
– 도심에 정주하거나 근무하는 인구를 확보해야 한다.
– 원도심 구성원 사이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
창업 생태계 조성을 통해 다수의 스타트업이 제주시 원도심에 들어서면 유휴 공간은 새로운 용도를 찾게 될 것이며 도심에서 근무하거나 거주하는 젊은 인구가 늘어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타트업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으로는 풍부한 문화 자원, 편리한 교통,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 등이 있다. 젊은 창업자들과 직원들이 원도심을 오가며 업무에 매진하면 공동화 현상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고, 범죄, 치안 문제 등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뒤이어 스타트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권이 싹트고 일종의 문화로 정착한다면, 자연스럽게 도시재생이 이뤄지게 된다.
이와 같은 장밋빛 청사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다방면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창업 생태계 조성과 도시재생의 결합이란 비전을 소개하는 콜로키움이 성황리에 진행되었으며, 리노베링과의 콜라보를 통해 7월에 진행한 <리노베이션 스쿨 in Jeju>는 원도심 내 유휴공간을 대상으로 하여 창업x도시재생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까지 마련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이와 같은 굵직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건물주와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비롯해 실질적이면서도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원책을 여러 방면에서 강구하고 있다.
아는동네는 2018년 7월에 진행된 리노베이션 스쿨 in Jeju의 모든 과정을 참관하고 취재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리노베이션 스쿨의 개념과 진행 방식, 성과 등을 조명하는 동시에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얻을 수 있었던 도시재생 관련 인사이트를 요약 및 정리하여 소개할 예정이다.
2편에서 계속
'창업 생태계 조성을 통해 도시재생을 꿈꾸다' 연재글 리스트
1. 리노베이션 스쿨 in Jeju - Context(현재글)
2. 리노베이션 스쿨 in Jeju – Pro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