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길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많고 많은 시간이 흘러 젊은 모습을 갖게 된 그 남자는 이런 말을 한다.
모든 이는 스스로 한 가지 혹은 또 다른 방법에 대해 다르게 느낀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단지 가는 데 각자 다른 길을 택할 뿐이다.
너는 너의 길에 있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
이 이야기는 단순히 기이한 삶을 살게 된 한 남자의 일대기라기보다는 그가 어떻게 살아갔을지를 보여주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삶이 일반인들처럼 갓난아기로 태어나 점점 꼬부랑 노인이 되는 평범한 삶이었더라면 우리는 그에게서 우리와 같은 익숙한 삶을 보았을 것이다. 한편, 익숙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 속에서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과거로 돌아가보자. 어느새 서대문구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01
영천시장
모 프로그램에서 혼자 사는 연예인이 동네 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장을 보고 구경을 다니는 모습이 방영되자, 그 일대는 순식간에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전통시장들은 매체에 소개되기 전부터 언제나 그 자리에 지켰던 동네의 산증인과도 같은 존재다. 그곳에 가면 오늘도 온종일 날씨와 관계없이, 오랜 시간 시장을 지켰을 상인들을 만날 수 있다. 오늘만큼은 휴대폰은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기왕 가까이 마주하게 된 상인분들과 눈을 마주치고 한두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이야기 중에 나온 비법들은 조미료가 되어 사 온 재료에 더 좋은 풍미를 추가해줄 것이다.
*상세주소 : 서대문구 성산로 704
02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서대문형무소의 붉은 담장을 따라 걸으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감되었던 주인공이 풀려나던 날 꼭 이 담장을 빠져나왔다. 단골 촬영지가 된 서대문형무소는 그 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받아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장소다.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한 서대문형무소에는 해방 전까지 수많은 독립투사가 투옥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수감자들의 기록과 고문 방법, 사형장 등이 전시되어있다. 우리 가까이에 있어 지나치기 쉽지만,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역사를 마주하기 위해 이번 주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상세주소: 서대문구 통일로 251
03
유진상가
'유진상가'는 벌써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고령의 건물이다. 상가와 주거공간이 합쳐진 주상복합건물계의 할아버지 즈음 된달까. 안에는 여느 상가처럼 마트, 문구점, 신발가게, 꽃가게 등 다양한 가게들이 입점해있다. 옆으로는 주거용으로 '유진맨숀'이라는 이름이 따로 적혀있다. 아파트의 원조 격인 맨숀은 아파트가 없던 시절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살던 고급주택의 상징적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건물은 사실 유사시 적군의 진입을 막는 방어벽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친구상가인 '세운상가'나 낙원상가'와는 태생부터가 달랐던 건물인 셈이다. 설계자가 미상인 탓에 철거위기 속에 놓여있다. 하지만 이 상가 역시 나름으로 아름다움이 있고 남아있어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
*상세주소: 서대문구 통일로 484
04
문화촌
'문화촌'이라는 이름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갈밭을 정리해 반듯한 골목과 집터를 만들고 새로 건축한 신식주택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에도 문화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해방 전후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었던 문화주택은 자연스럽게 비난의 대상이자 욕망의 대상으로, 끝내는 사람들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보다 많은 사람이 문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문화'라는 단어는 욕망보다는 예술의 의미로 변해갔다. 문화촌의 의미 또한 변했다. 신식주택보다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이유로 문화촌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문화예술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살았던 동네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취지에서 '향기 나는 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 중이다.
여전히 홍제3동이라는 이름보다 문화촌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고, 더 많이 불리는 공간이다. 문화라는 이름과 의미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지만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이 문화촌은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
*상세주소: 서대문구 문화촌길
05
개미마을
영화 <7번방의 선물>을 한 번쯤 본 사람이라면, 홍제동 '개미마을'의 정취가 낯익을 것이다. 주인공 부녀가 살던, 포근한 마을을 그대로 전해주던 그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개미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마을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골목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 마을버스의 종점에 내려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보자. 차가 다닐 수 있는 큰길을 중심으로 작은 골목에까지 벽화가 구석구석 피어있어 동네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개미마을은 6·25 전쟁 이후 갈 곳 없던 사람들이 모여 천막을 두르고 살던 동네다. 아직도 이 마을에는 기와지붕과 판자 지붕이 곳곳에서 보인다. 개미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이름만큼이나 부지런하게 살아가고 있다. 개미마을은 사람 내음이 나는 동네다. 마을 곳곳에 보이는 옛날의 흔적이 가져다주는 따뜻함과 벽화가 주는 포근함이 만나 온기로 가득 찰 것이다.
*상세주소: 서대문구 세검정로 4길 1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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